며칠 전에 어떤 TV 프로그램에서 썰렁한 개그를 보았었는데, 큰 재미는 없었으나 약간의 아찔한 느낌은 받았었다. 시인이신 고 은 선생님께 늙은 제자들이 찾아 와서는 하도 ‘선생님! 선생님!’이라 부르니까, 그 선생님께서 ‘요즘 아이들은 나이가 너무 많아’라고 말씀을 하시더라는 내용이었다. 분명히 농담하는 소리였다. 그러나 그 말씀 속에는 나이만 먹었을 뿐 어른답지 못하고, 아이처럼 철없이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아프게 지적하고 나무라는 것이 있었다. 또한 나이 많다고 어른이 되는 것이 아니라, 어른다운 어른이 되어야 ‘참 어른’이 된다는 뜻으로도 이해가 되었다. 지금 우리 사회는 다양한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어른들의 지혜가 꼭 필요하다. 나이만 많은 어른보다는 젊은이들에게 ‘인생’을 말해줄 수 있는 어른이 필요한 것이다. 사랑이 무엇인가를 알게 해주고, 어떻게 사는 것이 훌륭한 것인지를 알게 해주어야 한다.

인간의 존엄성이 무너지고 정의가 짓밟히는 암담한 현실세계에서도 용기를 주고 정의롭게 사는 것이 무가치하거나 결코 의미 없는 삶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해주어야 한다. 많이 배우기만 하고 많이 가지기만 하는 어른이 되기보다는 그렇지 못한 사람들에게 의지가 되어 주고 공감과 감동으로 희망적인 변화를 줄 수 있는 그런 어른이 되어야 한다. 겸손한 것이 비굴해지는 것이 아니며, 억울하거나 잘못된 삶의 방법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해주어야 한다.

배려와 나눔이 손해가 아니며, 풍요로운 가치를 새롭게 실현해주는 것임을 알게 해주어야 한다. 더불어 사는 것이 행복하다는 것을 알게 해주는 것이 어른의 바른 역할이고 모습인 것이다. 그래서 우리들은 인격적인 교감을 통해서 많은 사람들이 저절로 따르고 존경할 수 있는 어른의 모습을 기대하고 필요로 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완전한 어른의 모습을 요구하는 것은 아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부족할 수밖에 없는 조건을 갖고 있기 때문에, 그것을 극복하고 해결하기 위하여 진심으로 고민하고 최선의 노력을 다하는 아름다운 어른의 모습을 기대하고 요구하는 것이다.

어른이란 반듯한 의지를 갖고 끊임없이 노력하는 자를 말하는 것이다. 예전에는 집안의 문제는 집안의 어른이 해결하였고, 마을의 문제는 마을의 어른이 해결해왔었다. 어른들은 자신이 속한 사회의 정신적인 지도자로서 그 사회가 직면한 문제들을 정확하게 꿰뚫고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해주었던 것이다. 사회적 지도자인 어른들은 두려운 공포의 문제들을 따뜻한 위로로 해결해주었고, 대립과 투쟁의 문제들은 소통과 화합으로 평화롭게 하였으며, 파괴적이고 절망적인 문제들은 긍정적인 견해를 갖게 만들어서 유익하고 희망적으로 변화를 시켜주었던 것이다.

정신적인 지도력을 바탕으로 개인이나 공동체에 미치는 영향은 매우 크고 중요했던 것이다. 사회적 지도자로서 사람들에게 인간의 바른 생활을 위해서 인생 전체를 살아가는 방식이나 방향을 정하는데 많은 교훈을 주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안정된 질서를 유지하고 평화로운 사회 환경을 만들었으며, 사회 구성원들에게는 행복지수를 높여 절대다수가 잘 수 있도록 물질적인 환경과 정신적인 환경을 갖게 해주었었다.

그런데, 혼돈의 시대인 현대사회에서 어른다운 어른들이 과연 어떤 모습으로 어디쯤에 있을까? 군 폭력사건의 가해자가 된 아들을 때문에 대국민 사과를 하던 한 정치인이 스스로 자신을 ‘사회지도층’이라고 표현하여 비난을 받았었다. 돈이 많으면 ‘부유층’이라 하고 학식이 높으면 ‘지식층’이라고도 하지만, 권력을 가졌다고 ‘지도층’이라할 수 없고 그저 ‘권력층’이라 부른다. 더군다나 스스로 그렇게 부른다면, 혼자만의 대단한 착각인 것이다. ‘지도(指導)’라는 것은 의지(依支)가 필요한 사람에게 의지가 되어줄 때라야 ‘지도’가 이루어고, 그 역할을 잘 하는 사람이 ‘지도자’가 되는 것이다. 가진 자들이 가지지 못한 자들을 어떻게 지도할 수가 있겠는가? 가진 자들이 그들의 ‘층(層)’을 고집하면서, 그렇지 못한 자들의 ‘층’을 대하면 ‘지도’가 되지 않는다.

만인(萬人)이 평등하고 평등하다는 생각과 역지사지(易地思之)하는 마음으로 서로 대할 때, 그 속에서 교감이 생겨나고 소통이 이루어지면서 ‘지도’가 된다. 가진 자들이 우선 자신의 ‘층’을 내려놓거나 낮출 수 있을 때, 이 사회를 지도할 수 있는 기회와 자격을 갖게 되는 것이다.

지난주에 우리나라를 방문하셨던 프란치스코 교종(敎宗)의 소탈하면서도 따뜻한 모습들은 우리들을 감동시켰고, 충분히 아름다웠었다. 낮은 자세로 사회의 약자들을 돌보는 그 분의 진실한 모습에서는, 군국시대의 권위의 뜻을 담은 ‘교황(敎皇)’의 느낌보다는 종교의 최고지도자라는 ‘교종(敎宗)’이라는 느낌을 더욱 확실하게 보여주었던 것 같다. ‘눈물을 흘리는 사람들을 내쫓고는 예수님과 사랑의 미사를 거행할 수 없다.’라는 강우일 주교의 분명한 메시지는 너무나 훌륭한 가치를 보여줬었다.

반면에 세월호 희생자들의 고통을 함께 하지 못하고 굳이 외면하거나 오히려 더욱 아프게 하면서, 오로지 자신의 안위만 챙기고 쫓아가는 권력자들과 종교인들을 우리 사회의 지도자라고 어찌 말할 수가 있겠는가?

석가모니 부처님을 삼계(三界)의 대도사(大導師)요, 천인사(天人師)라고 칭하기도 한다. 모든 존재들에게 의지가 되고, 불가사의(不可思議)한 것까지도 알게 해주는 ‘큰 스승’이라는 뜻이다. 물질문명의 발달로 정신문명이 황폐해지는 현시대에는 지혜의 빛으로 무지의 어둠을 없애주는 ‘큰 스승’ 같은 ‘큰 어른’들이 더욱 필요해진다. 예고도 없이 천둥치고 폭우가 내리는 이런 날에는 그런 큰 어른들이 간절히 그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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