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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호(號), 링반데룽에 빠지다윤지영 /국제펜한국본부 이사

학창시절 등하굣길이 바다였다고 하면 미경험자들은 갈매기, 해조음, 수평선 등의 서정성으로 그 말을 이해한다. 하지만 서사의 중심축을 이루는 나의 언어는 그리 낭만적이지 않다. 즐거움, 기쁨보다 폭풍우, 거센 파도 같은 단어들로 엮어진 공포체험 탓이다.

한 달 치 배 삯을 선불로 받은 도선이 폭풍우를 마다않고 출항을 감행하면 통학선이 생사의 귀로에서 표류했다. 노도에 휩쓸려 고공으로 치솟다가 천길 나락으로 떨어지고 거대한 물보라가 갑판 위 승객(학생)들의 비명을 후려쳤다. 하교 때 막배나 버스를 놓쳐 신작로로 귀가 할 경우, 공동묘지 통과는 십대에게 큰 부담이었다. 음침한 밤기류를 타고 기괴하게 울던 부엉이 소리, 줄행랑 칠 때 원귀를 깨우던 빈 도시락 소리, 하지만 겨우 뫼떵 근처 상여집 앞에서 까무라치곤 하던 시절이었다.

세월호 침몰 사건이 야기시킨 문제들로 인해 침체된 사회상에서 문득 그날의 링반데룽을 생각하게 된다.
리반데룽(링Ring 둥근원, 반데룽Wan-derung 걷는것), 이는 일정 구간을 벗어나기 위해 안간힘을 쓰지만 결국 같은 장소에서 맴도는 상태를 말한다. 독일 막스 플랑크 연구소 실험에 의해 서 붙여진 이름이다. 실험자들은 피실험자들 몸에 GPS를 부착하여 숲 속에 떨어뜨려 놓고, 그들이 ‘어떻게 길을 찾는가’를 관찰했다. 놀랍게도 실험 참가자들은 방향을 잃은 채 한 자리에서 뱅뱅 돌며 방황한다는 결과가 나왔다. 그러나 한 방향으로 나아간다고 착각한다는 흥미로운 사실도 밝혀졌다.

등산 조난용어이지만 흔히 짙은 안개나 폭풍우 속에서 방향 감각을 잃고 같은 지점을 맴도는 상태일 때를 가리킨다. 그러고 보면 마치 작금 우리나라 분위기를 대변하는 것 같기도 한다.
세월호가 침몰하던 날부터 한국호는 최악의 폭풍우를 만나 난파 직전에 놓인 모양새를 하고 있다. 먹구름이 잔뜩 끼여 시야는 어둑하고 최대풍속 수 십 미터 강풍이 연일 몰아치면서 선체를 뒤흔들고 있다. 정치적ㆍ이념적 편향과 집단 이기심, 진영 논리며 당파성의 너울성 파고가 몰려오고, 익명의 자유를 이용한 사이버 공간 악천후가 위험 수위를 넘는다.

그 사이로 봄이 가고 여름이 왔다.
선장은 나름 선체의 무사고 운행을 위해 발버둥 친다. 엔진이나 스쿠루, 탑재화물 이탈, 주변 선박이나 부유물, 암초 등, 다각도에서 문제의 근원을 진단해 보고, 승무원들에게 그곳을 집중 검토할 것을 지시한다. 그러나 승객들은 선주측인 국가기관을 믿지 못한다. 재난 예방 대응 시스템의 후진성을 확인한 후부터 퇴행과 왜곡의 역사를 떠올릴 뿐이다.

민중은 이제 어수룩하지 않다. 선주측을 향해 맹비난을 퍼부으며 좌현 우현으로 나눠져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고 성토하기에 바쁘다. 그 중심에서 승무원 격인 위정자들이 있다. 이들은 선장을 도와 배의 좌초를 막기 위해 일사불란하게 움직여야 하는 입장임에도 승객의 불만에 합세하여 충동질을 일삼는다. 선주를 공생의 파트너가 아닌 불신과 저주의 대상으로 여기면서, 대형참사에 자신들을 엮지 않으려는 속셈을 보이고 있다.

그들이 덧들이는 소리는 불신의 언어로 도배되어 있다. 진상규명 과정에서 필요한 안티테제가 아닌, 반대를 위한 반대 일색이다. 의견으로 사실을 비틀고, 사실을 그들의 프레임에 구겨넣어 왜곡하고 변형시킨다. 자신의 집단과 다른 집단에 반대하기 위해 생성된 언어에는 명확한 근거가 없다.

그 주장은 정말로 반대할 만한 의견인가 찬성할만한 의견인가 먼저 판단하지 않는다. 권력의 언어로써 추상화된 언어는 자신이 속한 정당이나 패거리의 이익을 위한 것이다. 그들은 주장이 어깃장인 줄 알아도 오류를 수정하지 않는 속성이 있다. 오히려 거짓을 위해 진실을 폐기처분해 버린다. 이는 외부세계가 아닌 인간의 뇌 속에서 일어나는 링반데웅 현상이다.

기실 세월호 참사의 시발점은 십여 년 전으로 보아야 한다. 이 사실을 배재한 야당의 한 인사가 근일에 한 “민가에 사는 할머니에게 물어보니 개도 안 짖었고 냄새도 안 났다고 한다"는 발언을 했다. 유병언 사체가 짝퉁이 아님이 밝혀지자 촌로의 유언(流言)을 과학수사대에 비견한 대목이다. 사견을 의견으로 포장하여 비틀는 것이다.

언어의 가치는 풍문과 싸운 실화가 올바로 규명될 때 생기는 것이지 사실을 사견으로 비튼다고 해서 생기는 것이 아니다. 그(들)는 살인 교사범 김형식을 키운 자당(自黨)의 도의적인 책임에 관련하여 일언반구도 없다. 천문학적인 빛을 진 유병언을 예수처럼 부활시켜 준 정권에 대해서도 전혀 언급을 아니 한다. 정보 접근성과 사고력을 둔화시킨 노화로 인해 자신이 올바로 걷고 있다는 착각에 빠진 탓일까. 언어의 모순성을 시계 제로 속 링반데룽으로 이해하게 된다.

반대를 위한 반대, 그 숱한 불가능한 이유들과 부정의 언어 속에서 세월호 특례법을 찬성하는 언설이 진보이며 그 법을 반대하는 언설이 보수의 깃발로 나부끼는 오늘도, 한국호는 여전히 폭풍우 속에서 표류하고 있다.

이 위기 극복은 유병언 리스트 속 인사들을 밝히는데서 출발해야 한다. 승객들의 화는 ‘유’에게 부(富)를 준 비리의 몸통들이 마땅한 죄 값을 받을 때 풀릴 수 있으니까. 올해의 역사가 허무한 공포로 기록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새거제신문  saegeoje9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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