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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통신망 = 거제의 봉수대체계적인 봉수제도 - 외적 방어 및 통신수단으로 중요한 역할

▲ 경상남도 기념물 제243호 와현봉수대

현대사회에서 통신수단은 곧 정보다. 그렇다면 현대사회 이전의 통신수단은 어떠했을까? 파발이나 역마, 전서구 등 다양한 옛 통신 방법도 많았지만, 고대 통신방식 중 가장 과학적이고 체계적으로 사용됐던 것은 봉수제도다.

봉화를 올릴 수 있게 만들어 놓은 곳을 봉수대, 봉대, 봉화대, 연대라고 부른다. 봉수대는 보통 높은 산마루에 설치됐는데, 국토의 70%가 산지로 이뤄진 우리나라 지형의 특징상 봉화만큼 효율적인 통신 수단도 없었다.

봉수는 필요에 따라 신호를 할 때에는 밤에는 불빛으로, 낮에는 연기로 전달했다. 밤에 피워 올리는 것을 봉(烽, 횃불)이라 하고, 낮에 피워 올리는 것을 수(燧, 연기)라고 한다.

1485년 간행된 경국대전에 따르면 조선 시대 전기 전국에 650여 개의 봉수대가 있었고, 신호 방법은 횃불의 수로 달리했다.

평상시에는 횃불 1개, 적 출현 시 횃불 2개, 국경 접근(근접) 시 횃불 3개, 국경 돌파(침범) 시에는 4개, 적과 접전 시에는 횃불 5개로 봉화를 올렸다.

예로부터 남해안 방어의 요충지 역할을 했던 거제지역에도 봉수대의 흔적이 여럿 남아 있다. 경상남도 기념물 제129호 옥녀봉 봉수대, 경상남도 기념물 제147호 가라산 봉수대, 경상남도 기념물 제242호 지세포 봉수대, 경상남도 기념물 제243호 와현 봉수대 등 5개 봉수대가 그것이다.

이 중 가장 오랜 역사를 갖고 있는 봉수대는 가라산 봉수대다. 경상도지리지와 세종실록지리지에 가라산 봉수대의 기록이 있어 조선 초기부터 가라산 봉수대가 존재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해동팔도봉화산악지도(海東八道烽火山岳地圖 - 조선 시대 전국 팔도에 있는 봉수대를 표시한 지도

거제지역의 봉수대는 1454년 완성된 세종실록지리지에 처음 등장한다. 1425년에 간행된 경상도지리지에 가라산 봉수대에 대한 기록이 없다가 ‘(거제의)봉화는 하나로 현의 남쪽 바닷가 가라산에 있다. 서쪽으로 고성의 미륵산에 응한다’는 기록으로 미뤄 가라산 봉수대는 세종 때 처음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또 조선 시대 지리지 기록엔 지금은 흔적이 없는 ‘계룡산 봉수대’에 대한 기록도 있다. 계룡산 봉수대는 1530년 간행된 신증동국여지승람과 1652년 간행된 동국여지지엔 존재했다는 기록이 있지만, 1752년 간행된 여지도서에는 흔적은 남아 있지만 못쓰게 됐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다만 1752년 간행된 여지도서엔 ‘한배곶 봉수대’에 대한 기록이 있는데 한배곶은 지금의 한산도로 당시 거제 땅에 속해있었다.

거제지역 봉수대 중 가라산 봉수대를 제외한 나머지 4개의 봉수대 흔적은 조선 후기 김정호(金正浩)가 편찬한 지리서인 대동지지(1863년)에서 짐작할 수 있다.

대동지지에 따르면 거제지역의 봉수는 처음보고 불을 피우는 가라산 봉수대와 등산, 남망, 옥림산, 눌일곶, 가을곶 등 5개의 임시설치 봉수대가 존재했다.

봉수는 최종적으로 한양의 목멱산(남산) 봉수대로 집결돼 소식이 조정에 보고했다. 제1로, 3로, 4로는 몽고, 여진, 중국 등 북방 민족의 침입을, 제2로와 5로는 일본의 침입을 경계하거나 대비한 것이다. 또 봉수에는 직선봉수와 간선봉수가 있는데 직선봉수는 5대 기간선로를 직접 연결하는 경로를, 간선봉수는 직선봉수를 보조하는 봉수를 말한다.

거제지역의 봉수는 직선봉수는 가라산 봉수대가 유일한 것으로 보이고 나머지 봉수대는 간선봉수의 역할로 추정된다.

17세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는 해동팔도봉화산악지도(海東八道烽火山岳地圖 -조선 시대 전국 팔도에 있는 봉수대를 표시한 지도)와 봉수망 기간선에 따른 분류로 보면 거제지역의 봉수는 모두 일본의 침입을 경계하는 제2로에 속해있다.

경상남도 기념물 제147호 가라산 봉수대

가라산봉수대 -봉수망 기간선 2로 봉수에는 10개의 간봉 지선이 있다. 거제 가라산봉수에서 첫 봉화를 피운 간봉은 고성의 미륵산·우산 등을 거쳐 충주의 마산 직봉으로 연결됐다.

따라서 가라산 봉수는 처음 봉화를 피우는 우리나라 남해안 지역의 가장 중요한 봉수의 하나였다.

가라산 봉수대의 전체적인 평면 형태는 장방형을 이루고 있고 봉수대는 둔각을 이룬 방형이다. 봉수대 아래에 계단 흔적이 남아 있고, 그 아래에는 봉수대 부속 건물터가 있다. 가라산 봉수대는 조선 시대 남해안의 봉수제도와 봉수대의 실태를 알 수 있는 좋은 자료로 꼽힌다.

경상남도 기념물 제129호 옥녀봉 봉수대

옥녀봉봉수대 -대동지지에 옥림산(옥포에 있다)에 있다는 기록의 봉수대는 현재의 옥녀봉 봉수대로 보인다.

3단으로 석축을 쌓고 봉수대를 설치한 옥녀봉 봉수대는 북쪽으로 강망산 봉수대와 연결되고, 동쪽으로 장승포일대, 서쪽으로 아주 및 옥포, 남쪽으로 일운면 와현을 한눈에 볼 수 있는 봉수대의 최적지에 설치됐다.

경상남도기 념물 제202호로 강망산봉수대

강망산봉수대 - 2002년에 편찬된 거제시지에는 강망산 봉수대를 율포에 있었다는 가을곶(柯乙串) 봉수대로 추정하고 있다.

거제시지의 편찬과정에서 대동여지도를 해석한 결과 옥포항(玉浦港) 북단에 조라포가 있고 그 위에 율포ㆍ장목포의 순으로 표기되어 있는데, 위치로 볼 때 율포의 가을곶 봉수대가 강망산 봉수대와 가장 인접한 위치에 있다는 이유에서 해석한 결과다.

그러나 가을곶(柯乙串)은 현재 해금강의 고유지명인데다 대동지지에도 동부면 율포에 있다는 기록이 있는 점 등을 미뤄 현재 강망산봉수대로 보는 것은 옮지 않아 보인다.

경상남도 기념물 제242호 지세포 봉수대

지세포봉수대 -일운면 지세포리 산34번지에 있는 새피재(속칭 샛풍이재) 정상의 연지봉에 있다.

봉수대는 원형의 방호벽으로 둘러싸여 있는데 지름이 약 25m를 넘어 내부가 꽤 넓다. 돌로 쌓은 축대벽은 꽤 높으며 잘 보존된 편이다. 그러나 봉화부는 뚜렷이 남아 있지 않다.

와현봉수대 - 일운면 와현리 망산 꼭대기에 있는 와현 봉수대는 북쪽에 있는 지세포봉수대와 약 5㎞ 거리를 두고 있다. 와현 봉수대는 남쪽 바다를 직접 바라볼 수 있어 중요한 시설로 짐작된다.
와현 봉수대는 지세포봉수대와 옥녀봉봉수대, 강망산봉수대를 잇는 지선의 시발점에 있다.
산꼭대기를 잘 다듬고 그 위에 원형 방호벽을 쌓은 형태인 와현 봉수대는 봉화부가 붕괴된 상태이긴 하지만 돌로 만든 방호벽이 잘 보존된 편에다 출입 계단시설이 남아 있다.
또 봉수대에서 바라보는 풍경이 수려해 앞으로 관광자원으로 활용 가능성이 커 보인다.
대동지지 기록에는 눌일곶 봉수대가 지세포에 있다고 기록돼 있다. 하지만 와현의 옛 지명이 ‘눌일치(訥逸峙)’, ‘눌일티(누우레재)’, ‘눌일몰(눌이실)’, ‘눌일곶리’ 등으로 불렸던 것으로 미뤄 눌일곶 봉수대는 현재 지세포 봉수대보다는 와현 봉수대에 가까워 보인다.


최대윤 기자  crow1129@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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