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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한 사회, 춤추는 설도(舌刀)윤지영 /국제펜한국본부 이사

한 번 지나가면 되돌릴 수 없는 것이 셋 있다. 잃어버린 버린 기회, 시위를 떠난 화살, 입에서 나온 말이 그것이다. 멀리 볼 것 없이 작금의 사회 실상을 여기에 비추면, 세월호가 가라앉을 때 구조할 수 있었던 그 좋은 기회를 다시 되돌릴 수 없고, 레테의 강 저쪽에 닿은 승객들을 이승의 나루로 데려올 수 없고, 모든 인과를 마음대로 재단한 인사들의 막말을 주워 담을 수 없다.

"300명이 한꺼번에 죽어서 많아 보이지만, 연간 교통사고로 죽는 사람 수를 생각하면 그리 많은 건 아니다"(4월 28일 KBS 보도국장 김시곤)
"박근혜 후보가 대통령이 되면 사람들 엄청 죽고 감옥 가고 호가호위하는 환관정치가 될 것이다. 지금 그렇게 돌아가는 것 같다"(6?4지방선거를 겨냥한 정의당의 유시민)
"가난한 집 아이들이 수학여행을 경주 불국사로 가면 될 것을, 제주도로 배를 타고 가다 이런 사단이 빚어졌는지"(5월20일 한국기독교총연합회 전 부의장 조광작)
"민간 잠수사의 일당이 100만∼150만원이고, 시신 한 구를 인양하면 500만원을 받는 조건으로 일하고 있다"(5월24일, 청와대 민경욱 대변인)

근일에 터진 것 중 몇 개만 언급해 보았다. 이 망발들을 간략하게 직역하자면, 자신의 가족이 아닌 모든 사람의 죽음은 짐승의 죽음만큼 대수롭지 않다는 뜻이고, 자신의 편이 대권을 잡았다면 세월호가 침몰하지 않았을 텐데 운 없는 박정권 때문에 이런 사고가 터졌다는 것이다. 비행기 탈 형편도 못되는 주제에 제주도 여행을 감행한 것 자체부터가 잘못되었다는 뜻이고, 잠수부들의 생명을 돈으로 환산해도 괜찮다는 주장이다.(도주범 유병언의 사이코적 설교는 아예 언급을 생략한다.)

숙고없이 내밷은 이 모순성 언어들은 단순히 상대 폄하 수준이 아니라 상대의 존재이유 자체를 부정하는 잔인성과 야만성을 내포하고 있다. 이들 언어는 개개인의 인권과 존엄성에 준하여 대접해야 하는 기본적인 인간관계 틀 너머의 언도(言刀)이고 나치 독일성 설도(舌刀)이다.
물리적인 폭력 보다 더 무서운 세치 혀의 폭력은 죽음과 삶의 계곡을 일순간에 갈라놓는다. 이 진리는 상대방에게는 물론이고 자신에게도 해당된다.

중국에 동진(317~420)이라는 나라가 있었는데, 사마요가 집권할 때 얘기다. 예의 그렇듯 왕 사마요 주변에 많은 궁녀들이 포진하고 있었다. 왕은 이 중 장귀비를 가장 사랑했다. 주변 제후국들과 전쟁을 치르느라고 국력이 약해지고 신하들의 간섭에 시달리던 그는 그 귀비의 존재로서 삶의 활력을 되찾곤 했다. 어느 날 주연이 벌어진 자리였다. 대취한 사마요가 장귀비더러 술을 더 마실 것을 강요했는데, 주량을 넘긴 귀비가 청을 거절한 것이다. 그러자 사마요가 장귀비에게 한마디 했다. “네년 나이가 한물갔을 때 진작 내쳤어야 했는데” 이 말은 독화살이 되어 장귀비의 명치를 찔렀다. 복수를 계획한 여자, 그녀는 지체하지 않고 밤을 기다려 환관들을 모두 밖으로 내보냈다. 그리고는 잠든 사마요 얼굴에 이불을 뒤집어 씌워 죽여버렸다. 정사(政事)의 피로회복제인 애첩과의 정사(情事)에서 말 한마디 잘못하여 정사(情死) 당한 사마요 이야기는 정사(正史)에 기록되어 ‘말의 중요성’을 언급할 때 인용되어지곤 한다.

인간의 운명은 그 사람의 성격으로 만들어지고, 그 사람의 성격은 말과 일의 유기체로 엮여있다. 생각 없는 말이 있을 수 없고 말 없이 어떤 일이 이루어질 수 없다. 즉흥적이든 벼루던 말이건 간에 그건 화자의 내면의식을 대변한다. 특히 화자가 의도적으로 선동한 말은 그의 자리를 준거로 해석되는 것이기에 파급효과는 상당하다.

자고 일어나면 이슈되는 말들의 홍수 속에서, 베스트에 해당되는 말이 6? 4지방선거 서울시장 후보 딸의 말(글)이 아닐까. 부친 고승덕을 청자로 한 여식의 말(문자)을 보자.
“교육감이란 자리가 도시의 교육시스템과 정책을 보살피는 자리라면 고승덕은 정말로 이상한 후보입니다. 그의 친자식조차 가르치지 않은 사람이 어떻게 도시의 교육을 책임지는 리더가 될수 있다는 겁니까?”(5월 31일, 고희경의 페이스북글 일부)

최소한의 천륜의 정 마저도 휘발된 이 말의 기저를 프로이트 이론에서 찾아보면 ‘숨은 원망’이라는 답이 나온다. 부친으로부터 기인된 딸의 심리적 내상이 크지 않으면 이런 마음을 가질 수가 없다. “교육감” “자리” “정책” “후보” 라는 명사들이 “가르치지 않은” 이라는 동사와 “~있다는 겁니까”라는 강조법에 의해 치명타를 입었고, 그 바람에 한 사나이가 쌓아올린 야망탑이 허망하게 무너졌다.

앞서 언급한 인사들의 망발은 정치권력의 이데올로기적 시선에서 자행한 이기심이거나 아부성 발언류에 속하지만 아비를 향해 날린 여식의 ‘제 언치 뜯는 말’은 가족사의 비극이기에 구경꾼들조차도 슬픔을 느낀다. 한 번 지나가면 다시 되돌릴 수 없는 세 가지가 이들 부녀 사건으로 인해 다시금 입증된 셈이다.

도처에서 창궐하던 후보들의 목소리도 사라졌다. 남은 것은 유권자들의 머리에 각인된 공약들이다. 예전보다 정치인에 대한 평가의 잣대가 냉철해진 국민들은 모두 ‘아비를 고발한 딸의 마음’으로, ‘이불로 은유되는 그 무엇’으로 고위공직자들을 지켜볼 것이다. 그들이 쏟아낸 말, 말에 대한 책임을 어떻게 실천하는 지를...

새거제신문  saegeoje9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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