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史記》 유림전에 보면 ‘곡학아세(曲學阿世)’라는 말이 나온다.
한 나라 경제(景帝)가 세상 널리 사람을 구하던 중, 산동에 사는 아흔 살의 원고생(轅固生)을 알게 되어 등용시켰다, 원고생은 너무도 강직하고 대쪽 같은 성미라서 불의를 꿈꾸고 있는 다른 신하들에게는 눈에 가시였다. 자신들이 도모하려는 일에는 늘 원고생이 부담이 되었던 그들은 중상모략을 하였지만, 황제는 들은 척도 하지 않고 원고생을 아꼈다.

그런데 원고생과 함께 기용된 사람 중에 젊은 학자 공손홍(公孫弘)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원고생을 깔보고 우습게 알았으며 출세만을 목표로 한 엉큼하고 비열한 사람이었다. 어느 날 원고생은 공손홍을 불러 세웠다.
“지금 학문의 정도가 어지러워져서 속설이 유행하고 있네. 이대로 내버려두면 유서 깊은 학문의 전통은 결국 사설로 인해 그 본연의 모습을 모두 잃고 말 걸세. 자네는 다행히 젊은데다가 학문을 좋아하는 선비라고 들었네. 그러니 자네는 부디 올바른 학문을 열심히 닦아서 세상에 널리 전파해 주기를 바라네. 결코 자신이 믿는 학설을 굽히어(曲學) 이 세상 속물들에게 아첨하는 일(阿世)이 있어서는 안 되네.”

그의 충고에 공손홍은 그동안 자신이 잘못했음을 크게 깨닫고, 용서를 빌었으며, 그 후에 원고생의 제자가 되어 훌륭한 선비가 되었다고 한다.
여기서 이 고사가 우리에게 당부하는 메시지는 여러 가지가 있다. 우선 정도를 걸으라는 것이고, 사적인 것에 매이지 말라는 것과 신념을 가지고 살라는 것, 그리고 세상 사람들에게 아첨하지 말고 올바른 길을 걸으라는 것이다. 아울러 상대를 직접 꾸짖기보다는 칭찬하여 스스로 느끼게 하라는 것도 덤으로 얹어주고 있다.
투표를 막 끝낸, 정치의 계절이 마무리되는 이 시점에 문득 이 고사를 끄집어내는 이유가 무엇일까. 여하튼 우리 지역의 일꾼들은 뽑혔다. 나선 후보 중에 가장 적합한 인물이 지역의 일꾼으로 선정되었기를 기대하면서, 시민을 먼저 생각하는 일꾼이 되어주길 주문한다.

일하는 지역의 일꾼이 걸어가야 할 정도는 무엇인가. 그 길은 이미 정해져 있다. 출마하여 유권자들 앞에 제시했던 바로 그 길이다. 그 길의 제시로 뽑혔으니, 마땅히 그 길을 걸어가야 한다. 선거운동 기간에 제시한 일들은 오직 표를 얻기 위한 계략이 아니다. 자신이 걸어가야 할 길을 시민들과 굳게 약속한 것이다.
그 약속을 휴지처럼 버리고, 사욕에 빠진다면 결코 온전히 살아남을 수 없다. 낮은 사람의 자세를 끝까지 견지하지 못하고, 척만 하던 것이 통하던 시절은 지났다. 진정 낮은 사람이 되길 결심했으면 진실로 낮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 흉내만 내려 하면 안 된다. 정말로 시민의 심부름꾼이 되어야 한다.

이렇게 정도를 걸으려면 자신에 찬 신념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그것이 정도라는 신념을 갖기까지에는 반대의 목소리도 깊이 새겨야 하고, 선거기간 중에 타 후보가 내건 이야기에도 귀를 기울려야 한다. 그것이 정도를 찾는 길이고, 그것이 지역 일꾼이 걸어야 할 길이다. 표를 너무 의식하여 세상 사람들에게 아첨을 한다면 추진하려는 일은 목표지점에 도달할 수 없다.

지역의 일을 하는 데에는 부담으로 오는 것들이 있을 수 있다. 가령 지연, 학연, 혈연 같은 것들이 대표적인 것들이다. 특히 거제시처럼 도서지방에서는 이런 것들이 더 기승을 부릴 수 있다. 이런 것에 지나치게 매이게 되면 그만큼 운신의 폭이 좁아든다. 시작부터 이런 것에 초연해야 정도를 걸을 수 있음도 명심해 둘 일이다.
특히 같이 선거에 임하여 지역의 발전을 도모하려던 낙선 후보들에 대한 배려도 있어야 한다. 여기서 말하는 배려는 도와주라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목소리에 대한 배려임은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다. 비록 패배는 하였지만, 그들도 지역의 일꾼임에는 틀림없다. 또 그들이 내건 것 중에는 바람직한 것도 많다. 다독거려 그들의 힘까지도 한데 모아서 지역발전의 원동력으로 삼는 슬기가 있어야 한다.

우리 사회에는 기왕에 잉태되어버린 문제들이 많다. 도덕적으로 무너지고, 윤리적으로 무너지고, 인간 그 자체가 무너졌다. 지금도 하루를 뛰어넘지 못하고 ‘물불’의 사고가 이어지는 것은 과거부터 잉태된 것이 오늘에 와서 표출되고 있음이다. 이 시점에서 부조리함과 차단할 필요가 있다. 더러는 아픔이 있더라도 지역부터 바로잡아가는 데에 새로 나선 일꾼들이 앞장서야 한다. 만연된 황금만능주의와 무너진 도덕성과 안전 불감증도 계제에 고쳐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대단한 신념과 노력과 투자와 시간이 필요하다.

새로 선출된 일꾼들에게 축하의 박수를 보내며, 그 박수만큼의 당부의 말도 함께 보낸다. 임기동안 결과물에 연연하지 말고 먼 미래를 내다보는 비전이 있는 참 일꾼이 되길 주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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