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지 못한 설움 이겨내려 늦깎이 공부
장애인에게 꿈 전달하는 명품강사 되고파

얼마 전 지체1급 장애인인 배순자(51·파랑포 작은예수의 집 거주) 씨가 중입(초졸) 검정고시에 합격해 지역사회에 큰 감동을 선사했다.

남들과 다른 탓에 일찌감치 교육복지에서 밀려난 장애인들이 생각 외로 참 많은 까닭에 배순자 씨의 합격은 개인 성취에 그치지 않고, 다양한 의미로 적잖은 사람들에게 희망을 전달했다.

배순자 씨의 합격에 누구보다 기뻤던 사람이 있다. 바로 그녀에게 한글을 가르친 안순자(57·사진) 씨다. 이들은 이름이 같으며, 장애로 인해 힘겹게 살아온 삶도 비슷하다. 또 신체 자유의 박탈로 배움의 기회마저 놓쳐버린 설움도 닮아있다.

안 씨는 현재 경남DPI거제시지회장이다. 그녀는 5살 때 오른쪽 다리에 바이러스가 침투해 소아마비 3급 장애인으로 지금까지 살아왔고, 앞으로 살아가야 한다.

그녀는 초등학교만 졸업했다. 유년 시절 그녀에게 통학수단은 어머니의 등이었다. 끔찍이도 딸을 사랑하는 어머니는 등·하교 시간에 맞춰 바지런히 그녀를 업어 날랐다.

한날은 하교 시간에 어머니가 늦어 헐레벌떡 먼지 바람을 일으키며 안 씨에게 달려왔다. 어머니의 발은 온통 흙으로 덮였고, 흙먼지와 범벅이 된 땀은 소나기처럼 턱선을 타고 흘렀다.

“우리 딸, 엄마가 많이 늦었지?”

어머니는 딸을 얼른 등에 업었고, 딸은 땀으로 흠뻑 젖은 어머니의 등에 뺨을 기댔다. 참을 수 없이 눈물이 쏟아졌지만, 어머니는 온통 땀에 젖어 딸의 눈물을 미처 느끼지 못했을 것이라고 안 씨는 회상했다.

그러면서 드는 생각이 ‘이 젊은 엄마에게 어떻게 효도할까?’.

그녀는 결국 중학교 입학을 포기했고, 가족과 부산으로 넘어와 한복 기술을 배웠다. 거제로 이사와 그때부터 50대 초반까지 나름 한복 사업에서 성공을 거뒀고, 좋은 남편을 만나 화목한 가정도 이뤘다. 그녀는 그렇게 장애를 잊어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암 선고를 받았다. 살아온 날들을 돌아보니 후회 없는 삶이었다. 분명 그랬는데, 숨길수록 새어나오는 마른기침처럼 잊으려 할수록 뚜렷해지는 미련이 있었다.

‘배움’. 그것에 대한 목마름이었다.

다행히 일주일 뒤 오진으로 밝혀졌지만, 안 씨는 30년 한복 사업을 바로 정리하고, 검정고시 학원으로 달려갔다. 1년 만에 중·고교 과정 검정고시를 모두 붙었다. 내친김에 대학까지 입학해 현재 노인복지학 2학년 과정을 배우고 있다.

그녀에게 배움이란 크나큰 행복이었다. 그래서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장애인들에게 배움을 나누기 시작했다. 그녀는 DPI지회장으로 있으면서 지난해 9월 DPI사무실 반쪽을 공부방으로 꾸며 ‘날개스쿨’이란 이름을 달고 본격적으로 장애인들을 대상으로 한글교육을 시작했다.

안 씨는 이동이 불편한 장애인들을 위해 파랑포 ‘작은예수의 집’과 사무실을 오가며 교육을 펼쳤다. 검정고시학원에서 인연을 맺은 강부경 국어강사가 공부방으로 와 무료로 학습을 도왔다.

안 씨는 “날개스쿨이 알려지면서 거제시와 삼성중공업 등에서도 아낌없이 힘을 보태고 있어 보다 수월하고 효율적으로 운영되고 있다”며 고마워했다.

비장애인들은 몰랐을 것이다. 장애인들에게 배움이 얼마나 큰 갈증이었는지. 초등학교 저학년 수준의 한글공부에 불과하지만, 그들에겐 가장 절실한 소통 수단이었다. 뒤틀린 입에서 나오는 말과 굽은 손을 휘젓는 몸짓을 비장애인들은 알아듣기 어려워서다.

마침내 이름이 같은 배순자 씨가 지난 4월 검정고시에 붙었다. 함께 시험을 본 제자들은 모두 낙방했지만, 그 한 명이 보여준 가능성이야말로 이들에겐 살아오면서 무엇보다 뚜렷하고 밝은 희망이라고 안 씨는 말했다.

안 씨는 “한글 교실은 언제나 문이 열려 있으므로 누구나 찾아와 배울 수 있다”며 “머릿속 지식을 나누는 것은 장애인이나 비장애인이나 모두에게 큰 도움이자 행복이 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장애인들에게 꿈을 전달하는 명품 강사가 되고 싶다”는 소박한 바람도 전했다.

조행성 기자  saegeoje@par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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