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가 젊은층의 뜨거운 반응 속에서 끝났다. 방영 중에는 몰랐다가 에필로그의 동백꽃 배경이 거제도 인근(장사도)이라는 데 호기심이 생겼고 중화권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얻고 있다는 기사를 읽고 재방으로 보았다.내용은 기존의 드라마 판을 깨면서 시작된다. 주인공 외계인(도민준)이 UFO를 타고 지구에 내려왔으나 어찌된 영문인지 그는 자기 별로 귀향하지 못하고 이땅에 머문다. 400년의 세월이 작가가 설정해 놓은 스무 개의 챕터 사이로 순식간에 지나가고, 도민준이 지향하는 삶의 궁극적인 목적이 지구인으로서의 유효기간이 끝나는 마지막 부분에 나온다. ‘한 여성과의 운명사랑’, 바로 그것이다. 판타스틱한 로맨스 코메디물을 보고 환호할만한 순수성이 휘발된 나이 탓인지, 작품의 기획의도를 간파하지 못한 채 시청을 마쳤다.

입소문 때문에 대충 보고 그렇게 넘겼는데 오늘 정치판의 인물 토론을 TV를 통해 보던 중, 뜬금없이 ‘별에서 온 그대’가 생각났다. ‘그래, 저이가 드라마의 주인공인 도민준의 케릭터를 벗지 않았더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든 것이다. “안철수”, 그가 언론을 통해 부각될 때 나도 그의 팬이 되었다. 현 정치지형이 낡은 틀로 규정되고 새로운 정치세력의 필연성이 요구되는 시대, 때맞춰 혜성처럼 등장한 그의 정치철학과 시대정신을 신뢰하는 사람들이 확산되고 있었다. 신뢰가 있다는 건 공통의 기본적인 가치가 있다는 뜻이고, 그 공통의 가치는 대중이 채점한 점수를 토대로 형성된 것이기에 설득력이 높았다.

싸움박질 정가 환경이 혁신되기를 바라는 시선으로 볼 때, 무균질 우유에 비유되는 그는, 그야말로 별에서 온 그대였다.그러나 얼마 못가 기대는 대실소망(大失所望)으로 이어졌다. 그의 숭고한 이념은 가파른 절정에 도달한 채 흔들리기 시작했다. ‘안’의 새정치 낙원은 말과 사유의 낙원이었다. 그는 명증한 언어로 표현되는 사유의 힘에 의해 현실을 재편했다. 그는 정계의 기득권을 향해 ‘구태정치’라고 일갈하면서도 자신의 신념을 초지일관 하지 못한 채 우왕좌왕 했다. 결국 구태정치라며 대립각을 세웠던 헌정치에 합류함으로써 새정치를 희구하던 민중에게 등을 보였다. 그가 보인 참신성, 진실성이 허상임을 알게 된 민중은, 그가 별에서 온 왕자가 아니라 세속의 기회주의자라고 판단한 것이다. 팬들은 그의 정체에 화가 났고, 나무랐고, 어쩔 수 없이 체념 했고, 이제 그의 우유부단한 성격을 개그소재로 쓰고 있다.

“웃기는 철수 이야기”라는 제하의 내용이 카톡으로 도착했다. 들여다보니 공감 백배라 나도 그 내용을 지인에게 보냈다. “안철수는 의사에서 철수, CEO에서 철수, 교수에서 철수, 서울시장 후보에서 철수, 대통령선거에서 철수, 신당창당에서 철수, 새정치에서 철수, 과연 정치에서는 ‘안’철수 할까요?” 금시 답장이 날아왔다. “정말 웃기는 철수, 이제 지구에서 철수할 일만 남았네”

안철수의 ‘철수’가 나름 자신의 심사숙고의 결과라고 하더라도 그 모양새가 대중들의 웃음꺼리로 돌아다닌다는 것은 안타까운 현상이다.그가 걸핏하면 ‘국민이 원하다면’이라고 국민을 파는, 속셈의 끝은 통치권좌(坐)에 닿아있다. 그가 웃기는 인물로 전락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대통령이 되려면 정치계에서 차근차근 경륜을 충분한 쌓은 다음 대선에 도전해야 순서이다. 자신의 정치 경험 부족을 고려하지 않고, 왁자하게 입에 발린 ‘새정치’ 운운하면서 일을 벌리고, 최고의 군자인듯 ‘양보’라는 동어반복을 중언부언하여 결국 하나도 새로울 것 없는 정당의 일원이 된 것이다. 도민준이 UFO를 타고 지구에 내려왔듯이 안철수는 ‘여론몰이’라는 인기를 타고 정치계로 입성했다. 당시의 이미지는 별에서 온 그대마냥 해맑았다.

배우 김수현처럼 미남은 아니지만 아이티 사업으로 사회기여도가 높았으며, 높은 학력으로 국립 최상위 대학 교수이면서 청소년들에게 꿈을 심어주는 멘토였다. 권욕과는 거리가 먼, 보기드문 인물 같았다. 그 때 그 모습이 그에게 가장 어울리는 옷이 아니었을까.이제 그도 자기 별로 돌아가지 않고 정치인으로서 살겠다고 못을 박은 지도 꽤 지났다. 도민준이 천송이(드라마 여주인공)를 좋아한 것은 과거 자신과의 인연에 대한 책임이며 그는 "사람들은 이것을 운명이라고 하더군요" 라고 말했다. 생명을 걸고 그녀를 지키는 이유에 한 치의 이기가 없었다.

여기서 도민준과 안철수의 간극을 엿보게 된다. ‘도’는 죽을 고비를 넘기면서도 변하지 않는 초심으로 대상을 위해 희생하지만, ‘안’은 자신의 이익에 따라 마음을 변주한다. 이제 그의 새정치는 구당원귀들의 욕망의 연대에 의해 구정치가 됨으로써 그로 향했던 대중의 신뢰는 허무개그로 막을 내렸다. 신뢰는 과거의 약속이행에 대한 믿을만한 존재일 가능성에 대한 평가이다. 그 가능성이 물 건너 간, 한국은 역시 ‘믿을 놈 하나 없는’ 곳이 되고 말았다. 판타스틱한 드라마를 보고 감흥을 느끼지 못했듯이 나 역시 ‘안’의 새정치 드라마 기획의도에 감동은커녕 팬심을 철수해 버렸다. 이는 감성이 휘발된 노화 탓이 아니라 사리판단이 되는 나이가 내린 결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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