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거제는 조선업으로 먹고산다는 것에 누구도 토를 달진 않을 것이다. 두 개의 거대 조선소와 자회사, 협력사, 그리고 이들 조선업과 직간접적으로 관련된 사업체 등을 합하면 사실상 거제 인구의 70%가 조선업의 향방에 따라 인생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거제 고현만과 옥포만에 조선소가 들어선 지 삼십 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조선업을 빼고 거제 경제를 설명할 수 없을 만큼 조선업은 거제의 버팀목이 되어 주고 있다. 조선업의 성장은 농어촌사회를 산업도시로 탈바꿈시켰으며, 이는 전후 한국사회의 경제성장과 사회변화의 전형적인 모습을 담고 있다. 그 결과 성장의 이면에 감춰진 비용들도 만만치 않은 것이 현실이다. 오늘 칼럼의 주제는 바로 이 사회변화와 경제성장의 ‘숨겨진 비용’에 관한 것이다.

거제도는 언제나 많은 사람을 먹여 살리던 섬이었다

조선업이 들어서기 이전으로 되돌아봐도 거제는 오랜 옛날부터 많은 사람들로 북적이던 섬이었다. 전쟁 시기 포로수용소가 들어선 거제의 인구는 1951년에는 40만 명 이상이 살고 있었다. 오늘날처럼 아파트가 없던 시절임을 감안하면 지금은 오지가 되어 버린 산과 들 곳곳에 사람들로 북적였을 것이다. 심지어 고려와 조선시대 왜구가 창궐하던 시기에도 거제도는 사람이 살만한 곳이면 어느 곳이나 집 짓고 농사지으며 사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그리고 일제강점기처럼 일본의 어업기지로 변신했던 시기에는 고기 잡고 가공하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지금과 비교하면 먹고 사는 방식이 달라진 것 이외에 크게 거제에서 생활할 수 있는 공간이 달라진 것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섬 곳곳으로 도로가 생기고 논밭이던 곳에 집과 공장이 들어서 겉모습은 참 많이 달라진 것도 사실이지만 거제는 언제나 사람들로 북적였던 큰 섬이다.

이처럼 거제도는 언제나 섬사람들과 외지에서 건너 온 사람들이 공존하던 곳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그들 사이에는 무엇을 먹고 살 것인지에 대한 관심이 가장 큰 공통점 중 하나였다고도 볼 수 있다. 일제시기 이전 거제도는 농업과 어업이 중요한 먹거리였고, 일제강점기가 산업화된 어업의 정점을 이뤘다고 볼 수 있다. 포로수용소가 들어섰던 시기에는 민간인보다 많은 숫자의 전쟁포로까지 먹여 살릴 수 있었던 풍부한 물과 너른 들, 해산물이 지천이던 바다가 한몫을 톡톡히 했다. 그리고 현재는 그 자리를 조선소가 차지하고 있다.

과거부터 현재까지 거제도에서 한 세대 이상 정착해 살는 모습을 개략적으로나마 살펴본 이유는 거제도가 항상 많은 사람들을 먹여 살렸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싶어서이다. 무엇으로 먹고 사느냐에 있어서 거제도는 기본적으로 농어업에 의존하고 있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1953년 통영군에서 거제군으로 그 이름을 되찾았을 때부터 거제도에 조선소가 들어서기 전 인구를 기준으로 본다면 10만 명은 먹여 살릴 수 있을 것이라 본다. 그러나 오랜 과거부터 현재까지 거제도에 그 이상의 인구가 거주하는 시기에는 언제나 외지 사람들이 비슷한 수준이나 그 이상으로 넘쳐 거제 경제를 떠받치고 있었다.

거제도는 어떻게 수많은 사람들을 먹여 살렸나?

문제는 어떻게 그 많은 사람들을 먹여 살렸느냐는 점이다. 외지인들이 넘치던 거제의 모습을 몇 가지 들여다보면 어렵지 않게 짐작해 볼 수 있다. 대표적으로 일본의 어업기지가 들어섰던 일제강점기와 포로수용소가 들어섰던 한국전쟁시기, 오늘날을 살펴보면 쉽게 구별할 수 있다.

우선 일제강점기의 거제도는 장승포로 상징되는 어업기지였다. 어업이 성황기였던 시기 장승포에 일본인 어선 2500척과 어업인 5000여 명이 거주하였다는 기록을 감안할 때, 어선어업에 종사해야 했던 한국인만 수만 명이었을 것이다. 여기에 해산물의 건조, 가공, 운반, 판매, 그리고 이들을 먹여 살리기 위한 농업 등을 감안하면 상시 거주하던 인구 이외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일시적으로 거제에 살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 당시 농어업의 생산을 극대화하기 위한 어선과 장비, 그리고 거제 바다를 환하게 볼 줄 아는 거제 사람들의 생태적 지식 등이 결합되어 일제강점기 거제는 그야말로 가격 경쟁력 있는 어업의 중심지가 되었다.

한국전쟁은 피와 상처를 안겨줬지만, 거제도는 그 시기 동안 수많은 피난민과 수십만 명의 전쟁포로까지 먹여 살렸던 참으로 고마운 섬이다. 미군정으로부터 전쟁물자를 받았지만, 일상의 먹거리는 여전히 거제의 산과 들, 바다에서 구해야 했다. 요즈음 인구 5만 명이 안 되는 군 단위의 지방자치단체에서 고령화된 인구로 미래를 걱정하는 것과 비교한다면 최대 30여만 명의 젊은이들이 살고 있던 거제도는 인구과잉으로 먹을거리를 찾기에 바빴을 것이다. 짧지 않은 시절 거제는 또 다시 수많은 사람들을 먹여 살렸다.

오늘날 조선업은 또다시 거제로 젊은 사람들을 불러들이고 있다. 80년대 중후반 주춤하던 조선업이 체질개선에 성공하면서 90년대 다시 붐을 일으켰고 그 이후로 거제는 계속 인구가 늘고 있다. 한국전쟁 이후 10만 명의 인구에서 30만 명 가까운 정도로 꾸준히 성장한 인구는 대부분 산업화에 따른 성장이었다. 농촌사회를 거쳐 산업도시로 탈바꿈하면서 농어업에 종사하는 인구는 줄었지만 산업인력은 증가하였다. 그리고 이 변화 속에 외지인을 대상으로 먹고 사는 거제 경제는 오늘날도 성황을 이루고 있다.

거제 경제를 성장시키는 ‘숨겨진 비용’

그렇다면 거제 경제의 성장 원인은 일제강점기, 한국전쟁, 산업화 등처럼 외부로부터 유입된 인구와 사회변화 때문일까? 필자는 외부로부터 유입된 조건은 거제 경제를 부양하는 부가적인 성장요소라 본다. 거제도가 먹여 살렸던 수많은 사람들의 변화를 좀 더 긴 역사로 되돌아보면 10만 명 이상의 인구증가와 경제성장은 당연히 외부요인에 의한 것이라 볼 수 있다. 그러나 갑자기 외부로부터 유입되는 경제성장의 동력을 떠받치고 있는 것은 바로 거제의 산과 들, 바다이다. 그리고 그 속에 살고 있던 사람들의 노동과 지식, 문화이다. 거제는 외부의 변화에 어렵지 않게 적응하는 것을 넘어서서 외부의 변화를 수용할 수 있는 한마디로 큰 그릇이라 할 수 있다.

게다가 사람들을 먹여 살리는 것이 비단 시장에서 거래될 수 있는 상품, 즉 돈으로 가격을 매길 수 있는 것만으로 평가될 수는 없다는 점을 감안하면 거제가 가진 잠재적 가치는 훨씬 크다고 본다. 일제강점기 값싼 노동력과 거제 바다에 관한 지식을 제공했던 어민들의 지적재산권, 외부에서 유입된 사람들을 먹여 살렸던 숲과 들, 강물의 값은 그 어디에서도 제값을 받은 적 없다. 조선업을 중심으로 도시화, 산업화된 지금 여전히 조선업의 성장을 위해 거제도의 바다는 매립되어 조선업에 자리를 내주었고 강물은 댐으로 막혀야 했다. 그 자리에서 생계를 유지하던 농어민들은 한 세대를 거치면서 산업화에 적응해야 했고, 그들이 가진 숲과 들은 택지로 팔아야 했다. 세계적으로 권위 있는 생태경제학자들은 GDP와 비슷한 규모의 자연자산이 제값을 받지 못했다고 보는데, 딱 거제의 자연이 그런 지경이다.

문제는 이처럼 제값을 치르지 못한 변화는 우리 사회가 갚아야 하는 비용으로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대표적인 예가 자연자산의 훼손이다. 거제도가 예상치 못한 인구증가에도 잘 버틴 이면에는 사람들이 자연으로부터 먹을거리를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었다는 데 있다. 이를 바탕으로 외부에서 유입된 사람들이 단기간에 거제에 정착할 수 있도록 변신을 거듭할 수 있었다. 그런데 사람이 많아지면 사람들이 먹고 이용하다 버린 것들이 다시금 사람을 위협할 수 있는 지경에 이르는데 이를 두고 ‘공해’, ‘환경오염’ 등으로 부른다. 이를 환경·경제학자들은 경제성장으로 인해 발생하는 ‘숨겨진 비용’이라 부르기도 한다. 달리 말하면 자연의 수용능력을 넘어섰다는 말이다.

숨겨진 비용의 부작용을 없애기 위한 지름길은 공공성과 사회정의의 회복

일제강점기 이후 현재까지 거제 경제의 성장은 자연과 그 속에 살고 있던 사람들에 대해 제값을 치르지 않았기 때문에 가능했었다고 앞서 언급한 바 있다. 이를 두고 경제성장과 사회변화를 위한 희생이라 볼 수도 있겠지만 그렇다 하여도 제값을 치르지 않은 과거가 바뀌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그로 인한 자연파괴와 환경오염 등 사회적으로 치러야 하는 비용은 부메랑처럼 우리에게 다시 돌아오고 있다. 문제는 우리 모두가 함께 그것을 알게 되는 그 시점이 짧게는 한 세대를 거칠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미래 세대를 위해 선택한 성장과 더불어 숨겨진 비용까지 전가한 꼴이다. 지금의 거제가 한국전쟁 후 제값을 치르지 않고 챙긴 성장의 혜택은 우리 후세가 비용으로 갚아야 하는 한계점은 그리 멀지 않았다. 조선업으로 산업화된 도시로 급변하면서 거제의 바다와 산, 들은 매립과 택지개발을 반복하였으며, 이제는 더 이상 경제적으로, 기술적으로 저렴하고 안전하게 매립할 수 있는 바다가 거의 소진되고 있는 게 현실이다. 대신 거제 경제의 성장요소였던 산업화, 도시화는 이제 거제의 자연과 그 속에 사는 사람들에게 지금까지 지불하지 않았던 제값을 청구하고 있다. 하수처리장을 비롯한 각종 폐기물의 처리장은 더 이상 추가로 건설할 부지를 찾지 못하고 있고, 그 처리비용도 증가하고 있다. 자연으로 흘러들어 가는 오염물질을 환경기준에 맞춰 처리하는 것만으로도 이미 그 수용능력을 넘어서고 있다.

거제 경제의 성장에 조선업이 큰 역할을 한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매립으로 매립되기 전 어업의 가치를 넘어서는 경제적 가치를 창출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제부터라도 경제적 가치 이외에 제값을 치르지 않고 우리를 둘러싼 자연이나 우리 후세에게 비용을 전가하는 변화에는 큰 틀에서 함께 고민해야 한다. 최근 고현만과 사곡만과 같은 대규모 매립이 또 다시 거제시의 미래 성장동력으로 찬반의 갈등을 겪고 있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찬반을 떠나 중요한 사실은 경제적 가치만 언급해선 안 된다는 점이다. 성장의 이면에 숨겨진 비용을 누가 부담할 것이냐, 그리고 비용을 치르더라도 회복할 수 없는 경우에는 어떻게 할 것인지 면밀히 따지는 세심한 관심이 필요한 때이다.

거제의 자연이 한계점에 도달하고 있는 지금 단 한 번의 실수는 되돌릴 수 없는 미래를 만든다. 고현만 매립과 같이 매립으로 발생하는 경제적 가치가 사회적 비용으로 전가되는 경우는 사회적 합의가 없다면 당연히 재고되어야 한다고 본다. 환경단체가 길거리로 나가 시민들에게 매립사업이 불필요함을 알리는 것도 이 같은 맥락에서이다. 매립을 추진하는 사업자의 계획에서 해양오염과 침수피해를 지금 수준조차 유지할 수 있는 대안이 없거나 실현 가능하지 않다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것이 향후 발생하게 되는 비용과 비교해 더 경제적인 선택일 수 있다. 지금까지 거제가 수많은 사람을 먹이고 살게 해줬던 과거를 잊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이제 과거와 달리 앞으로도 버텨줄 것인지 생각해야 한다. 지금까지 수많은 사람들을 먹여 살렸던 거제를 위해 이제는 우리가 거제를 지금 수준으로라도 훼손되지 않게 지키는 것은 우리의 몫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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