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 만나는 사람들에게 ‘당신이 외우고 있는 전화번호가 몇 개쯤 됩니까?’라고 다소 생뚱맞을 수도 있는 질문을 해본 적이 있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두세 개 내지는 몇 개가 안된다’라는 대답을 하면서 머쓱해하는 것이었다. 학력수준도 꽤 높은 그들이 그 까짓것 전화번호를 외우지 못할 정도로 멍청한 사람들은 아닐진데, 확인해보니 대체로 현실이 그러한 것이었다. 첨단과학기술의 발전의 상징물처럼 여겨지는 스마트폰의 전화번호 저장기능의 편리함에 익숙해지면서, 현대인들은 굳이 전화번호를 외워야 할 필요성이 있거나, 그것이 우리 삶에 매우 중요한 문제가 생기는 것은 아니다.

단지, 현대인들이 기계문명이 주는 편리함 때문에 정작 우리가 소중하게 갖추어야 할 인간이 갖고 있는 무한한 정신력과 잠재력의 계발을 소홀하게 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현대인들은 교통수단의 발달로 어지간하면 걷지 않으려고 한다. 사람들은 잘 걷지 않음으로써 생기는 각종 질병에 걸리기도 하고, 정신적으로는 인내력이 떨어지면서 변덕과 싫증을 잘 내는 조급함이 많이 생겨난다. 또한, 인터넷이 발달하면서부터는 독서를 하거나 편지를 쓰는 모습들은 보기 어렵다.

우리들이 생각해도 신기하게 느껴질 정도로 급속하게 발달하는 과학문명과 신기술 문명은 인간의 생활을 편리하게 만들어 주는 상품의 개발로 나타난다. 문명의 이기들은 자연환경의 파괴와 희생을 담보로 하거나, 자연질서를 위배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것들이다. 그러나 문명의 이기로 편리한 생활에 길들여진 사람들은 더욱 편리한 것을 요구하는 욕망을 갖게 된다. 마치 마약에 중독된 것처럼 끊임없이 편리함에 중독되어, 그것이 우리의 삶에 미치는 악영향에 대해서는 어쩌면 무관심하기도 하거나 관대하게 허용하면서 스스로가 길들여져 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사람들은 편리함에 중독되면서부터는 우리가 추구해야 할 근본의 중요성을 알지 못하게 되고, 올바른 시각을 갖지 못하게 된다. 그러면서 물질문명만이 합리적인 것처럼 우리들을 착각하게 만들거나, 세월을 두고 갖춰 나가야 할 우리들의 진정성과 여유를 잃게 만든다. 문명의 이기가 갖고 있는 또 다른 역기능이나 부작용의 문제에 대해서 소홀하게 생각하면서, 우선 편리한 물질문명의 노예가 되어가는 무서운 결과를 가져오기도 한다. 현대과학이 발달할수록 사람들은 종교에 대한 의존을 멀리하게 되고, 그로 인해 정신세계가 피폐해지는 것을 이 시대에 일어나는 다양한 현상들이 증명해주고 있다.

도덕적 인지능력이 떨어지면서 흉악한 범죄들이 일어나고, 선천적 덕성(德性)인 자비심(慈悲心)이 상실되면서 무자비한 사회현상들이 나타나고, 자연을 파괴한 대가로 천재지변들이 일어나는 불행한 재앙들을 만나게 되는 것이다. 또한 감사함이나 귀함의 가치를 잃게 되고 인정(人情)이 메말라, 행복한 감동을 느끼지 못하는 삭막한 삶을 살게 되는 것이다. 그러할지라도 물질문명이 발달하는 것에 대하여 무가치하다거나 불필요하게 여겨서도 안 될 것이며, 얼마든지 환영하고 충분히 그 가치의 훌륭함을 인정할 필요가 있다.

불교의 세계관은 우주만물은 절대자의 섭리대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엄밀한 인과법칙에 의해서 움직인다는 것이다. 마하반야바라밀다경에서는 ‘색불이공 공불이색(色不異空空不異色) 색즉시공 공즉시색(色卽是空空卽是色)’을 통해서 ‘우주법계가 물심불이(物心不二)의 세계다’라는 것을 설명하고 있다. 아인슈타인은 상대성이론에서 ‘질량이 곧 에너지고, 에너지가 곧 질량’이라고 등가원리를 증명하였다.

유형의 질량이 무형의 에너지로 전환될 때는 쌍멸(雙滅)하여 쌍차(雙遮)가 되고, 무형의 에너지가 유형의 질량으로 전환될 때는 쌍생(雙生)하여 쌍조(雙照)가 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색즉시공 공즉시색이 쌍차쌍조(雙遮雙照)하는 중도(中道)의 세계관으로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원리에서 보듯이 과학적으로 설명이 가능한 것이다. 어쨌든 우리들은 보다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현대과학기술문명이 주는 편리함에서 오는 위험성을 벗어날 수 있는 대안으로 정신문명에 대한 지혜로운 접근이 필요한 것이다. 가지지 못해서 불편하다면, 조금 불편해도 괜찮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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