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는 다른 기관과는 달리 1월에 한 해를 출발하여 12월에 업무의 끝을 맺는 것이 아니라, 3월에 시업식을 시작하여 2월이면 한 학년을 끝나는 종업식으로 마무리를 한다. 그래서 해마다 2월이 되면 정들었던 아이들을 보내는 졸업식을 갖게 되고, 또 1년 동안 함께 했던 학급의 아이들을 진급시키는 이별을 하게 된다. 뿐만 아니라, 교사들도 자신의 희망에 따라 원하는 학교로 이동을 하게 되어 학교는 2월이 되면 왠지 모르게 스산하고, 쓸쓸한 기운이 감돌기 시작한다.

졸업시즌이다. 졸업이라는 낱말이 주는 의미는 새로운 출발이라는 의미보다는 어떤 일을 끝내야 하는 아쉬움과 허전함이 뒤섞이는 느낌이 많다. 까마득한 이야기지만 우리들의 초등학교 졸업식은 참으로 슬펐다. 내 기억으로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 여자 친구들의 절반이 중학교 진학을 못하고 열네 살 어린 나이로 봉제공장을 찾아 일을 하러 떠났다. 그래서 그 친구들이 도시로 떠나는 전 날 시골 여자아이들은 함께 모여 호롱불 밑에서 서로를 붙들고 밤을 지새우며 눈물을 흘리고 헤어져야만 했다. 이렇게 중학생이 된 절반의 친구들이 3년의 중학교 시절을 보낸 후, 졸업을 하게 되면, 또 절반의 친구들은 고등학교를 진학하지 못하고 취업전선에 들어서게 되어 중학교의 졸업식장은 더 큰 눈물바다를 이루었다.

어느 고등학교 졸업식에 참석하게 되었다. 강당으로 들어서다 나도 몰래 멈춰서고 말았다. 질서정연하게 줄을 지어 앉아있는 재학생과, 졸업장을 받기 위해 단상 앞으로 나가고 있는 학생들의 모습이 근래에 보기 드물 정도로 반듯하고 진지하여 감격하고 말았다. 가지런히 빗어 넘긴 머리에 반듯하게 교복을 차려입은 졸업생들의 모습을 보니 내 마음이 다 후련해졌다. 고등학교와 중학교 졸업식장에서 이런 진지한 모습을 만난 지가 참으로 오래 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기억에 남은 눈물의 졸업식장에 비하여 세월의 흐름에 따라 졸업식도 변화를 가져와 요즈음은 졸업식이 축제의 날처럼 행복하고 희망차다. 졸업식이면 당연하게 자리 잡은 내빈 축사도 없애고, 이런 저런 대외상도 대표 학생 한 명만 받게 했다. 그러나 3년 동안 최선을 다한 학교생활을 상징하는 졸업장만은 교장선생님께서 직접 한 사람씩 앞으로 나오게 하여 전해주셨다. 이 때 졸업생들이 직접 제작한 동영상이 상영되었는데, 이 동영상의 내용이 참석했던 모든 학부모와 재학생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했고, 재학생들이 준비한 조촐한 노래와 합창도 신선함을 보태어 주었다.

한 사람 한 사람 단상으로 올라가 교장선생님께 졸업장을 받고 담임선생님과 마지막 악수를 나누는 장면을 보다가 참으로 요즈음 보기 드문 감동의 장면을 목격하게 되었다. 고래만큼 덩치가 큰 남학생 한 명이 노장의 담임선생님을 안고 펑펑 눈물을 흘리는 게 아닌가? 모두들 숙연해졌고, 잠시 동안 졸업식장은 정적이 감돌았다. 담임선생님은 눈물을 닦아 준 후 그 학생을 다정하게 안아주었다.

이어서 다음 반이 단상에 올라왔다. 이번엔 정반대의 장면이 연출되었다. 역시 덩치 큰 남학생 서너 명이 담임선생님을 번쩍 들어 헹가래를 쳤다. 이번엔 참석했던 모든 사람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반전의 웃음소리가 졸업식장을 채웠고, 다시 졸업식장은 희망과 행복함으로 번져갔다. 특히 졸업장을 받는 순간 본인의 재미있는 스냅사진이 정면의 화면에 나와 졸업생을 모르는 사람들도 그 학생의 학교생활을 대충 점칠 수 있을 만큼 학생들의 행동과 표정이 신선하고 아름다워 보였다. 정말 축제의 졸업식이었다. 졸업식이 끝나고 운동장에서 졸업생들의 행동을 살펴보았다. 가족과 친구들과 사진을 찍기도 하고, 학교 스탠드에 앉아 담소를 나누기도 하다가 조용히 학교를 빠져나가고 있었다.

몇 년 전 이 학교의 졸업식장 장면이 떠올려봤다.
학생들은 ‘졸업’이라는 말이 진정 무엇을 뜻하는지를 정확히 모르고 있는 것 같았다. 졸업식을 진행하는 것은 담당교사뿐이었고, 학생들은 졸업식의 행사를 거들떠보지도 않고 소란을 피우고, 잡담으로 시간을 보냈다. 졸업식이 끝난 후의 행동은 더욱 심했다. 교복을 찢기도 하고, 달걀을 던지고 밀가루를 뿌리기도 하며, 심지어 어떤 학생은 케익을 얼굴에 던져 친구가 숨도 쉬지 못할 만한 행동을 하는 학생도 있었다.
몇 년 전 소란이 난무했던 졸업현장이 반듯한 교복, 진지한 참여, 그리고 담임선생님을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리고, 헹가래로 담임교사의 고마움을 기억하고자 하는 이 변화를 가져오게 한 것은 과연 누구였을까? 졸업식장을 빠져나오며 졸업식 분위기가 이렇게 변화되기까지 이 학교의 학생들을 바르게 지도해 오신 모든 선생님들께 저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아름다운 꽃들도 다 흔들리며 피었나니/ 흔들리면서 줄기를 곧게 세웠나니/ 흔들리지 않고 가는 사랑이 어디 있으랴/
젖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빛나는 꽃들도 다 젖으며 젖으며 피었나니/ 바람과 비에 젖으며/ 꽃잎 따뜻하게 피었나니/ 흔들리지 않고 가는 삶이 어디 있으랴/ 젖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라(도종환)

졸업은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시작이다. 졸업을 하는 학생들은 각기 나름대로의 또 다른 세상을 향해 새로운 출발을 하는 것이다. 도종환의 시처럼 이들이 더 큰 세상을 향해 항해를 하는 동안 비와 바람을 맞게 될 수도 있고 많은 시련을 당하기도 할 것이다. 이 세상에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은 없다고 했다. 비와 바람에 흔들리며 젖으며 젖으며 아름다운 꽃을 피운다고 했다. 이제 졸업을 한 학생들이 더 큰 세상으로 나가는 도중 만나는 시련을 이겨내고 아름다운 꽃을 피우게 하는 데 밑 그름이 되어줄 사람이 우리 사회이다. 사회는 이렇게 모든 학생들이 바른 길로 가도록 걱정없이 뒷바라지 해 주는 비고츠키가 말한 비계설정의 주인공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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