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고려대학교에서 한 학생의 물음으로 시작된 지극히 평범한 언어와 문장으로 쓰여진 이 ‘안녕들하십니까?‘ 라는 대자보는 그동안 안녕하지 못했던 젊은이들의 감성을 자극하며 전국으로 유행병처럼 퍼져나갔다.
심지어 고등학교는 물론 중학교와 초등학교까지 이러한 열풍은 번졌고, 새해와 더불어 외신에 까지 우리의 이러한 국내 상황이 뉴스로 등장하기까지 한 것이다.

그동안 젊은이들은 자신들 앞에 던져진 성적지상주의와 생존경쟁에 내몰려 우리사회전반에서 일어나고 있는 사회정의와 부조리와 불합리한 문제에 대하여 애써 외면해 왔던 것이다. 이 대자보는 자기 자신의 삶에만 안주해온 이기심과 개인주의에서 화들짝 깨어나 사회전반에서 일어나고 있는 온갖 불의에 대해 무관심했던 행동에 대한 반성과 자기고백이 이어지게 되고, 그리하여 그동안 외면하고 맘을 닫고만 살아온 이웃과 주변의 문제, 나아가 잘못된 정치사회문제에도 억눌린 감정을 일깨우며 서서히 드러내기 시작한 것이다.

그동안 정부의 일방적인 방식으로 진행되었던 제주강정해군기지건설과 밀양의 송전탑문제, 쌍용자동차문제와 지난 1년 내내 이어진 국정원대선개입과 대선부정선거문제, 그리고 최근 전국을 강타한 철도노조파업문제 등 우리정치사회전반에 대한 이해와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문제제기와 상황에 대처하는 정부당국의 조처는 여전히 현실과 상당히 괴리되었고 저어기 실망감만을 안겨주고 있다. 어쩌면 80년대 군부독재정권시대에나 가능했던 정부당국의 대응방식이 지금시대에도 그대로 재현주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것은 교육부와 각 학교는 이러한 대자보를 떼어내거나 이를 붙인 학생들에게 징계를 하려는 구체적인 행동으로까지 나타나 전국의 학부모들과 국민들의 원성을 사고 있음이 이를 반증한다.
학생들의 이러한 문제제기에 대해 대처하는 정부당국과 학교당국들의 행위는 어른스럽지 못한 행동일 뿐만 아니라 80년대 독재정권하에서나 가능했던 지극히 권위적인 상황인식으로 밖에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적어도 이러한 학생들의 사회에 대해 지적하고 제기하는 문제제기에 대해 해답은 줄 수 없을지라도 이러한 순수한 열정들을 애써 오도하고 왜곡하려는 것은 오히려 학생들의 분노를 유발하게 만드는 것과 동시에 우리 사회를 더 심각한 희망이 사라진 절망감과 분노를 키우게 되는 등 장기적으로는 문제를 더욱 악화시키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미국 뉴욕타임스는 지난 6일 인터넷판 오피니언란에 '한국의 쟁점(Hot-Button) 매체'라는 제목으로 소설가 김영하씨의 기명칼럼을 실었다. 김씨는 국정원과 군의 대선 개입 의혹사건, 밀양 송전탑, 민영화 반대 철도파업, 비싼 대학등록금, 높은 청년실업률 등의 여러 정치·경제·사회적 문제에 대한 젊은이들의 분노와 걱정이 '안녕들 하십니까' 대자보의 유행으로 나타난 것으로 봤다고 적시했다.

우리는 대자보라는 지극히 70·80년대적 '구식 매체'가 다시 활발히 기능하게 된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70·80년대 보편적인 정치적 의사전달 매체였던 대자보는 문민정부가 들어선 90년대 이후에도 그 명맥을 이어나갔지만, 점점 유행이 지난 것으로 여겨지기 시작했고 인터넷이 보편화된 이후 완전히 온라인으로, 웹 게시판으로 옮겨갔다. 그리하여 대자보의 시대는 끝난 것으로만 알았다. 그러나, 지난해 12월 고려대에서 새로운 사실이나 충격적인 폭로 혹은 급진적인 견해도 담고 있지 않은 잔잔한 파문을 일으키며 등장한 한 대자보의 출현을 시작으로 다시 열풍을 이루게 된 것이다. 바로 대자보를 통해 온라인의 익명성을 탈피하고 당당하게 본인의 이름으로 자신의 주장을 펴고 있다는 점이다.

정치적인 대자보들의 역할이 군사독재시절 때와 같을 수는 없을 테지만 그러나 대자보가 이 나라의 젊은이들의 좌절과 분노가 커져가고 있다는 걸 드러냈다는 점은 여전히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프랑스 ‘르 몽드’의 1월 4일자 필립 메스메 특파원이 쓴 '한국은 요즘 안녕하십니까?'라는 칼럼은 "'안녕들 하십니까?'라는 질문이 한국 사회를 흔들고 있다"고 표현했다. 적절한 지적이다. 철도파업에 대한 정부의 폭력적 진압과 김어준·주진우 등 ‘나는꼼수다’ 진행자들의 위기, 교육부장관의 대자보 금지 지침 등 박근혜 정권의 권위주의화는 한국의 대자보 열풍이 대립을 강요하고 사회적 정치적 불통을 야기하는 걱정스러운 권위주의에 대한, 젊은이들의 반작용이자 저항이라고 생각한다.

이제 갑오년 새해가 밝았다. 갑오년 새해의 시작과 함께 이어진 박근혜대통령의 신년기자회견은 이러한 우리사회 분위기에 비추어 온 국민들에게는 큰 기대를 갖게 하였다. 무엇보다 대학생들이 보여주고 있는 뜨거운 가슴과 지기반성, 그리고 사회에 깊은 관심을 가지려는 다양한 생각의 분출은 박근혜대통령의 신년 기자회견을 통해서 이러한 문제제기와 물음들에 대한 해답을 제시할 것이라는 강한 믿음을 가졌다. 그러나 기대는 허탈과 실망감만 가득 안겨 준 것은 아닌지 대단히 실망스러운 것이었다.

과연 대한민국을 사랑하는 대통령의 신년기자회견인지 의구심마저 든다. 이는 지난해 연말 불어 닥친 대학생들의 ‘안녕들하십니까’에 대한 물음에 답하는 것이 아니라, 철저히 외면과 오만과 독선뿐인 일방적 담화에 다름이 아니었다. 정교하게 잘 짜여 진 각본에 의한 담화문발표와 무엇이 다른가? 질문자는 미리 정해져 있었고, 발언과 답변도 미리 정해져 짜고 치는 고스톱이 아니었던가? 대학생들과 국민들은 진정성과 소통을 그토록 기대하였건만, 젊은이들과 국민들의 실망감은 마침 내 허탈과 분노로 바뀌고 말 것이라는 불안감이 엄습하는 것은 왜일까?

올해는 갑오년이다. 다시 말해서 1894년 갑오 농민혁명 2갑자, 120년 만에 다시 되풀이되는 혁명, 해방의 해인 것이다. 지난해부터 활활 타오르기 시작한 지난 대선부정선거문제는 아직도 진행형이다. 이미 종교계와 대학가로 그 열기가 번져가기 시작했다. 지난연말 철도파업으로 촉발된 민주노총본부경찰유린으로 민주노총도 가세하기 시작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대통령의 신년기자회견을 통해서 만큼은 지난해의 불신을 씻고, 국정쇄신을 통해 국론을 통합하고 위기를 극복해나감으로써 국민모두에게 용기와 희망을 안겨다 줄 것으로 기대했다. 위기의 불을 끄려는 최소한의 노력이라도 기울여야했던 것이다.

더구나 경제상황은 더욱 악화일로다. 대기업들의 실적부진과 환율하락, 가계부채 1000조원시대, 비정규직 1000만 명 시대, 국가부채 1000억불시대에 직면한 위기의 대한민국이다.

대통령은 신년기자회견에서 만큼은 대학생과 젊은이들에게 불안한 현실에 대한 믿음과 미래에 대한 희망의 메시지를 던져주어야만 했던 것이다. 그러기위해서는 대통령이 국민위에 군림하는 지도자가 아니라 국민들의 마음을 위로하고 포용하며 다가가는 낮은 자세가 요구되었던 것인데 여전히 고압적이고 권위적인 자세로 나는 잘하고 있으니 국민들은 시키는 대로 잘 따라오면 된다, 라든지 정부정책에 사사건건 비판하거나 반대하면, 종북이라거나 하는 따위의 구태의연한 모습은 이제 더 이상 국민들의 동의를 얻기 어려운 상황으로 인식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어찌된 영문인지, 여전히 변하지 않는 불통의 대통령과 정부, 위기에 대한 그 어떠한 문제의식도 가지고 있지 못한 참으로 안이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참으로 안타깝고 답답하기만 한다.

이제 점점 커져만 가는 젊은이들의 분노와 불안감은 여전히 갑오년 새해가 안녕하지 못함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갑오년 이 한해가 정말 불안하고 위태위태하기만 한 것은 혼자만의 생각일까?

새거제신문  saegeoje99@hanmail.net

<저작권자 © 새거제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