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 경로당에서 싸움이 터졌다. 마을 주민들의 친목장소로써 활용도가 매우 높은, 특히 겨우내 가족보다 더 많은 시간을 함께하는 이곳 사랑방에서 난데없이 고성이 오간 이유인즉, 운영비 입출금 문제였다.
고령에도 불구하고 간단한 가감 계산이 밝은 시모는 운영지원금 입출내역을 "확실하게 밝히라"고 조목조목 따졌고, 그러자 총무(노인정에서 가장 젊은 70대)가 “늙은 사람들은 웬만하면 가만있어라”고 쥐어박은 것이다. 이에 어머님은 “늙은 눈에도 잘못된 다 보인다”고 나무랐고 기세등등한 총무는 “성질 고약하게 피우면 죽어 천당 못 간다”고 맞받아쳤다.

어머님 말씀을 바탕으로 유추해 보니, 그 상황 이후 오고간 대화가 안 봐도 비디오다.
“니나 극락가려면 심보 잘 가지거라”
“절에가서 기도하면 뭐하노. 예수 믿어야 천국에 가지”
“목사놈들 기도한답시고 딸만한 얼라들 건드린다카는 뉴스는 뭐꼬”
경로당 발전을 위한 애초의 주제가 종교분쟁으로 와전되었고 예전에 쌓였던 앙금까지 긁어대는 바람에 분위기가 험해졌다. 그러니까 젊은(자칭) 성대는 멀쩡하고, 늙은 목소리는 잔뜩 쉬었으니, 개신교에 불교가 판정패 당한 모양새다.

나는 노모께 "총무의 비리를 밝혀야 한다"고 거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경로당 잡수입 지출은 관련법 시행령에 명시되어 있는데도 불법을 시정하기는커녕 “늙은이의 간섭”으로 받아들였으니 간과할 수는 없는 일 아닌가. 뿐만 아니다. 객관적으로 봐도 그 표현은 잘못되었다. 칠십과 팔십의 노화 간극이 뭐 그리 크다고 팔십대를 사자(死者) 취급 한 것도 그렇고, 더 큰 문제는 종교적 발언이다.

어머님의 “목사놈들 기도한답시고..”가 뉴스를 근거로 한 팩트라면 총무의 “예수 믿어야 천국간다”는 미증유 추론이다. 나도 오늘 귀가 길에 앞을 가로막으며 “oo가서 구원 받으라”는 여인에게 “바쁘다”며 피하다가 등 뒤에서 “지옥에나 떨어져라”는 악담을 들었는지라 시모의 화에 공감이 갔다.
제대로 된 종교인은 타인에게 믿음을 요구하거나 상대방 종교를 폄하하지 않아야 한다. 또한 정의구현을 짙은 정치적 색채로 구호해서도 안된다. 이념과 사상이 아닌 순수한 마음으로 이웃 사랑하는 방법 모색에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 목적의 정당성을 만들어 수단의 비정당성을 합리화하고 “우리만이 정의롭다”고 한다면 그건 사이비 신도이다.

무슨 종교이든 진리의 말씀이면 그 자체로 가치가 있다. 그런데도 세뇌된 이론의 외피로 알맹이를 못 보는 맹신도의 사기성 농후한 강요((예수 안 믿으면 지옥간다는)가 길에서, 버스 안에서, 장소불문하고 판을 친다. 그럴수록 사회정의가 죽었음을 “신은 죽었다”로 역설한 니체의 명언에 절감하게 된다.
약 2400년 전에 살았던 장자조차 “말은 어찌하여 있으면서 바르지 못한가”라고 탄식했다는데, 몇몇 정치인과 종교인의 몹쓸 발언으로 인해 세밑 사회 분위기가 연일 뒤숭숭하다.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은(천안함 폭침을 부정하고 연평도 포격을 옹호하여 국민들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든 일부 사제단) 이상하게도 한국의 대통령은 물러가라고 어세를 세우면서 북한의 만행을 이해하려 노력하는 작태를 취하고 있다. 북한 정치에 동조를 하면서 북한 주민들이 주린 배를 안고 죽어가는 양상에는 일언반구도 하지 않는 아이러니한 사상을 가진, 이들을 향해 동종(同宗;나라사랑기도회) 단체에서는 “이들을 천주교에서 추방해야 한다”고 주장하지 않는가.

민심을 분열시키는데 급급한 종교인들의 과도한 정치 간섭은 상식과 개념을 벗어난 경우가 대부분이다.
전(前)정권 시절 한기총(한국기독교총연합회)은 대통령과 뜻을 같이 하기 위해 ‘세종시 문제에 대한 한국교회 원로 시국성명’을 발표하기도 했고, 얼마 전에는 조계종 승려들도 기자회견을 열고 '현 정부의 참회와 민주주의 수호를 염원하는 시국선언문'을 낭독했다.

"희망세상 만들기"란 명목으로 전국투어를 하면서 실의에 빠진 사람들에게 꿈을 심어주는 즉문즉설의 달인 ‘법륜’만은 대중의 안위만을 생각하는 승려인줄 알았다. 그러나 그도 지난 대선 때 ‘안’의 당선을 위해 편협된 주장으로 기존의 이미지를 전복했다. 종교인들도 국민이기에 정치에 무관심할 수는 없지만 그 언설이 국민을 선동하고 분열시키기에 문제가 되는 것이다.

이들은 자신들이 내세운 주장이 관철이 될 때까지 끈질긴 행동으로 단합한다. 이러한 일관성의 법칙은 어떤 선택상황에서 일단 어떤 입장(선택)을 취하게 되면, 그 결정에 대한 심리적 압력에 따라 자신의 감정이나 행동을 합리화(정당화)하려는 속성이 있다. 종교에 미치면 종교성으로 정치를 보게 됨으로 교인들과 국민들의 신뢰를 이용하여 종교세력을 정치에 동원하게 되는 것이다.

경로당 총무는 불투명한 운영과 “예수 믿어 천당가라”는 발언에 대해 사죄해야 마땅하다. 그보다도 아직 건강한 의식으로 비리를 밝히려는 팔십대를 늙은이라고 타박한, 무지부터 깨우쳐야 할 것 같다.
흔히 인생을 “삶은 계란이다” 한다. 노른자와 흰자가 서로 감싸고 있는 마음, 둥글둥글한 형태, 두 성분이 한데 어울려 요리로 거듭나 타인의 건강을 위하는 이타심, 이 성질이야말로 설득력 가장 높은 인생의 교리가 아닐까.

새거제신문  saegeoje9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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