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현재 살고 있는 사회는 에너지 문제를 외면하고선 결코 살 수 없다는 점에 누구나 공감할 것이라 본다. 에너지는 인류가 처음 이 지구에 출현한 이후 우리의 생존을 결정짓는 데 있어 다양한 형태로 이용되었다. 그런데 18세기 무렵 시작된 서양의 근대화 이후 에너지 문제는 단순히 생명의 기본 조건을 넘어서기 시작했다. 급격하게 증가한 에너지 사용과 그로 인한 폐기물의 처리는 이제 국제적인 협상의 대상이 되었고, 전 세계 국가들은 해마다 기후변화, 에너지, 생물다양성 등 에너지와 직간접적으로 관련된 회의에 회의를 거듭하고 있다. 인류의 생존을 결정짓는 에너지가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는 지경에 이르렀다는 경고들이 쏟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한국 사회는 국제적인 에너지 위기의 문제점을 또 다른 측면에서 접하고 있다. 바로 후쿠시마 사태 이후 동아시아에 번지고 있는 탈핵의 운동이 시민사회층에 광범위하게 퍼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에너지 생산 과정의 탈핵만이 아니라 방사능으로부터 안전한 먹거리에 대한 공론화까지 탈핵운동은 상당히 크게 번지고 있다. 그리고 그 탈핵의 공론화가 바로 밀양과 같은 송전탑 건설 현장의 갈등에서도 표출되고 있다.

후쿠시마 사태 이후 핵발전과 송전탑 건설은 에너지 문제의 서로 다른 두 얼굴로 부각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렇게까지 전기를 생산하는 데 소요되는 에너지의 형태와 전기의 보급방법에 대해서 우리 사회가 사회적으로 격론을 벌인 적은 없었다. 에너지를 수입해 산업시설에 투자하고 그 생산물을 수출하여 국가의 부를 생산했던 나라였기에 에너지 문제, 특히 탈핵 문제는 크게 문제 삼아야 할 대상이 아닌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이제 누구나 쉽게 송전탑이 괜찮다거나 핵발전이 안전하다고 장담할 수 있는 사람은 없는 게 현실로 다가왔다.

우리가 최종적으로 소비하는 전기도 에너지 없이 생산할 수 없는 것이기에 송전탑 건설은 필요악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하지만 전기가 대량으로 필요한 산업시설이나 주거지가 없는 시골에 고전압이 흐르는 현실은 누가 봐도 쉽게 용납하기 힘든 것도 현실이다. 더구나 밀양과 같이 산과 들의 농업 생산가치가 매년 수천억 원에 이르는 땅은 그야말로 황금알을 낳는 금싸라기나 마찬가지이기에 주민들 입장에서 바라보는 손실은 몇 백만 원의 보상금으로 해결될 것도 아니다. 에너지 없이 살 수 없는 현대 사회에서 어떻게 에너지를 이용하는 것이 좋은지에 대해 고민하게 된 것은 늦게나마 다행한 일이지만 밀양 송전탑의 갈등이 합의가 아닌 폭력과 갈등으로 치닫고 있다는 점은 가슴 아픈 일이 아닐 수 없다.

전기가 우리 사회의 성장을 위해 필요하다면 그 전기를 어떻게 생산하고 배분할 것인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도 반드시 필요한 법이다. 현재의 밀양 송전탑 사태의 진원지라 할 수 있는 ‘전원개발법’이 수십 년째 송전탑 경과지 주민들의 재산권, 환경권을 빼앗고 있지만, 그 혜택은 산업시설과 도시로 집중되는 악순환이 계속되었다는 사실을 간과해선 안 된다.

그렇기에 더 늦기 전에 밀양 송전탑 건설의 해법은 없는 것인지 진지하게 얘기해봐야 하는 것이 우선이다. 그리고 필자는 그 해법이 최근 서울 강남이나 창원 도심과 같이 송전탑을 지중화하는 사례가 계속 증가하고 있듯이 밀양 송전탑은 주민들에게 재산권, 환경권의 침해가 없다고 입증된 지중화가 유일한 해법이라고 본다. 사회적 합의를 위해 비용을 핑계 삼을 것이 아니다. 송전탑의 건설비를 문제 삼자면, 한전이 한수원이 건설하고 있는 신고리 원전의 건설부품비리를 문제 삼아 공사를 중단하는 것이 합리적인 결정일 것이다. 전기가 부족하지 않은 대구로 전기를 보내기 위해 765kV의 고전압선을 깔아놓고 보자는 식의 발상은 공기업이 아니었다면 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민간 기업이었다면 사업을 접고 투자의 가치가 있을 때 시작했을 일이다.

우리 사회는 이미 국가적인 성장과 발전을 위해 무수한 매몰비용을 개발 사업에 투자하고도 누구 하나 책임진 적 없던 모습을 수십 년째 지켜봤다. 그렇기에 유독 밀양 송전탑만 양보할 수 없다고 주장하는 한전과 정부의 대응이 설득력 없어 보이는 것도 당연하다.

중요한 것은 미래 세대를 위해 더욱 안전하면서도 지속 가능한 발전을 추구할 수 있는 여지를 남기는 것이 우선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우리의 미래세대가 살아가야 할 지구는 그 자체로 하나의 생명체이다. 러브록(James Lovelock)이란 학자가 ‘가이아’라고 불렀던 이 지구는 산업화 이후 에너지의 과도한 사용과 그로 인해 발생하는 폐기물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밀양의 송전탑 문제는 단순히 누가 희생할 것이냐를 제비뽑기하는 수준에서 논의되어서는 끝이 나지 않는 갈등이다. 이제 밀양 송전탑 문제는 전 지구적인 차원의 에너지 문제로도 생각해 봐야 한다.

지금처럼 일방적으로 산업시설과 도시에서 에너지를 소비하고 이익을 보는 사회구조를 유지하는 한 모두가 만족하는 해법은 불가능할 것이다. 밀양의 주민들이 주장하듯이 보다 형평성 있는 합의를 위해 송전탑은 안전한 방식으로 경과지를 지나야 하고, 이 과정에서 한전과 정부는 합의금을 들이밀며 합의를 강요할 것이 아니라 합의를 위한 자리를 마련하는 것이 순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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