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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민속문화(民俗文化)란옥문석 /시인·칼럼니스트

ㅇ형.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란 유행가 가사가 생각납니다. 어릴적 추억 때문입니다. 초·중등학교 시절 명절 때가 되면 어김없이 나타나는 농악패의 모습이 그것입니다.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데 당시 이 농악패의 주축이었던 구성원들이 지금은 다 고인이지만, 당시 우리들이 보기에는 그분들은 전문 예인(?)이더군요. 상쇠인 꽹과리를 비롯한 북, 장구, 징, 소구, 그리고 나팔. 꽁(꿩)포수로 구성된 농악패는 이 무렵 마을마다 있었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설이나 추석때가 되면 농악대가 급조되곤했는데, 이럼에도 불구하고 그 장단(長短)과 가락이 썩 잘 어우러지는 현상을 우리는 많이 구경하면서 자랐죠. 특히 상쇠와 소구의 손과 몸놀림은 천상에서 내려온 사람으로 착각할 정도로 어찌나 신명나게 두드리고 도리뱅뱅이를 하던지. 사시사철 농역에 시달렸던 곤궁함을 이때 다 푸는 것 같더군요. 참으로 신명(身命),그러니까 노는데 이골이 난, 귀신들린(?) 사람이더군요.

ㅇ형.
이 행사도 무교(巫敎)적인 색채가 가미된 한 형태라고 생각됩니다. 집집마다 돌면서 정지와 소마굿간 통구시, 젯간, 안청 ‘장독대’ 따위를 집안 구석구석을 돌면서 복을 비는 모습이 그것으로서 그때에도 어렴풋이 생각하곤 하였죠. 당시에는 병이 나면 굿을 하기가 다반사였죠. 굿은 판이 크고, 돈이 많이 드니까 단독으로 하는 경문(經文)쟁(장)이가 마을마다 있어서 이들을 불러다가 경문을 하곤했지요.

이때 병자가 대를 오래 잡고 있으면 팔이 떨리면서 잡은 대가 위로 오르는 현상이 일면 신이 내렸다고 했죠. 반복되는 경문에 따라 나타나는 일종의 착시현상(錯視現象)인데도. 이때 경문쟁이는 신찬승이란 분이었는데 어찌나 그 목소리가 청아하던지 지금도 기억납니다. 농악패의 상쇠잡이 권용수, 김석진, 윤안문 그리고 상여 앞소리를 잘하던 이종섭 등의 이름도 기억이 나네요.

ㅇ형.
한명회(전 시립대 교수, 전 국악원 원장)는 예부터 중국인은 궁리진성(窮理盡性)을, 한국인은 고무진신(鼓舞盡神)을 했다는 말이 있다고 했습니다. 궁리진성이란 사물 뒤의 숨겨진 이치를 파고 들어가 인간 내면에 내재한 고유의 성품을 실현시킨다는 뜻이고, 고무진신이란 두드리고 춤추면서 신명을 다한다는 뜻이 아닐런지요. 그러니까 한국인은 언제 어디서나 마시고 노래하면서 노는 데에 이골이 난 사람들이죠. 지난 세월 술자리에서 어김없이 상다리 두드리면서 노래했으며, 언필칭 니나노 집(주로 막걸리를 팔던 집)에서 상다리 두드리던 6, 70년대가 기억이 나네요. 그 세월이 낭만도 있었고 정도 깊었고, 참 재미있었는데 세월 저편의 이야기네요. 아무튼 치고 두드리고 춤추고 하는 이 문화가 우리 민속문화의 본류일 것입니다. 그래선지 개량된 김덕수 사물놀이는 전세계적으로 명물이 되었고, 온 나라에 사물놀이를 유행시키고 있죠. 난타(亂打)도 두드림의 미학으로 우리 민속문화를 승화시키고 있네요.

얼마나 놀기를 좋아했으면 예부터 중국인들은 "저 조선사람들은 조금 먹고 살만하면 먹고 마시고 노래하면서 놀기를 좋아한다고"했을까요.
송해가 진행하는 ‘전국노래자랑’도 현세에 맞는 신명판이겠지요. 그리고 노래의 한류(韓流),아무튼 한국인의 신명을 지금은 전세계가 알아주고 있지요.

ㅇ형.
그런데 우리 민속문화는 무교와 뗄레야 뗄 수 없는 현상이네요. 다른 일면으로 생각하면 민중 문화사이기도 하지만, 농어민 문화사이기도 합니다.
농어민들은 전통적으로 외래문화에 물들지 않으며 자생적 민족문화의 개성을 만들어왔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일상화된 전통 그것이 민속문화 아니던가요. 이 민속문화를 흔히 미신으로 매도하거나 또는 후진국의 부끄러운 문화로 치부하기가 일쑤였지요. 서세동점(西勢東漸)으로 해서 민속신앙은 으FP 타파의 대상으로 여겼죠. 특히 조선조 후기에 이 땅에 상륙한 천주교, 개신교가 유별났죠. 이로 해서 옥사(獄事)도 많았죠. 그러나 지금은 어떤가요. 전 세계에서 우리나라처럼 기독교가 번창한 나라도 없다고 합니다. 그들이 배척하던 무교, 즉 한국의 토속신앙과 접목한 현상인 것입니다.

부흥회가 그런 형태이기도 합니다. 부흥회 얼마나 요란합니까. 무교의 주술적(呪術的) 요소를 가미한 것이죠. 기독교의 한국화라고나 할까요.

ㅇ형.
민속문화는 민중운동이기도 하며, 일상화된 우리 생활문화와 접목되어 단군 이래 지속되어 온 것입니다. 단군도 무당이었다고 합니다. 그 시절은 제정일치(祭政一治)였습니다. 샤머니즘은 그만큼 우리 생활과 밀접한 것입니다. 불교, 유교, 도교, 기독교와 그리고 모든 민중생활에 무교가 배어 있지 않은 곳이 없습니다. 민중의 전통과 국학의 독창성과 인민의 정신세계의 자주성, 그리고 공생적 전통성은 서세에 물든 지식층에게도 울림으로 다가서리라 생각됩니다.

민속문화는 다른 한편으로 생명사상(生命思想)이기도 합니다. 이럼에도 불구하고 민속문화는 세월 저편에 밀쳐져 왔죠. 개발논리와 먹고 사는 문제에 함몰(陷沒)되어 서서히 잊어버리고 있었죠. 우리들이 어릴때 보고 느꼈던 그 많은 세시풍속(世時風俗)도 뒤안길에 든 것이 많네요. 지금 자라는 세대는 전혀 모를 것 같습니다. 우리들이 보아왔던 세시풍속은 생명사상과 연계된 공생철학이 내포된 민중문화였지요.
고수레나 제사 후의 새나 들짐승에게 주는 음식 등이 생명사상과 공생적 철학이 담겨있는 것이죠. 요즘 말로 통섭(通攝)이기도 하고요.

ㅇ형.
거제시에 거제전통민속예술단체협의회가 올해 8월 24일 태동했다고 하네요. 아마 거제시 민속문화 모든 단체가 참여한 협의체인가 봅니다.
이제 좀 먹고 살 만하니 밀쳐두었던 우리네 정체성(正體性)을 찾아야 하겠지요. 단군(檀君) 이래 면면히 이어 오면서 하나씩 발전의 주춧돌을 놓아온 우리 민속문화 아닙니까. 이런 관점에서 김귀복(거제민속예술단체협의회 자문역)이나 정옥식(거제전통칠진농악보존회 회장)씨가 주목됩니다. 김귀복씨는 30여년전에 거제에 와서1991년에 풍물놀이가락을 창단하여 거제 전통민속문화에 첨삭(添削)하여 왔으니 그 내공이 엄청날 것 같습니다. 거제민속문화 재현운동은 사실 시(市)차원에서 이루어야 할 일이죠. 이제라도 시에서 적극적인 지원으로 거제민속문화의 발굴이 활발했으면 합니다. 정옥식씨의 열정도 그냥 방치할 수없는 문제인 것같습니다.

민속문화는 김지하가 말하는 율려(律呂)운동이나 유동식(목사, 전연세대 교수)의 풍류도(風流道)와 한국의 종교사상과도 맥이 닿아 있는 것입니다.
거제의 민속문화는 거제의 정체성이기도 합니다. 거제시 차원에서 민속예술단체와 손잡고, 김귀복씨나 정옥식씨 등의 할동을 적극 지원하여 더 소멸(消滅)되기 전에 거제민속문화를 복원 계승하였으면 하는 바람이 간절합니다.

참조: 율려란 무엇인가(김지하), 멋과 한국인의 삶(최정호편), 민속문화의 생태학적 인식(임재해), 한국미 그 자유분방함의 미학(최준식), 풍류도와 한국의 종교사상(유동식), 김광언의 민속지, 한국인에게 문화는 있는가(최준식), 전통과 서구의 충(역사문제연구소), 뿌리깊은 나무의 생각(한창기).

새거제신문  saegeoje9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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