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거릿 대처 수상은 푸른색 장바구니와 분홍색 장바구니, 그리고 작은 봉지 하나를 들고 노동당이 집권했을 때의 사회현상을 피부에 와 닿게 선거유세를 했다. 덕분에 보수당은 총선에 승리했고, 마거릿 대처는 영국 최초의 여성 수상이 되었다. 철의 여인이라고 불리어지는 영국의 대처여사 이야기는 익히 알려진 사실이지만 대처여사의 업적 중에서 가장 손꼽히는 업적 하나를 들라면 나는 그녀의 손으로 쓴 편지를 말하고 싶다.

1982년 아르헨티나의 고철회수업자들이 영국령 포클랜드 동쪽 사우스조지아 섬에 상륙하면서 영국과 아르헨티나 간의 분쟁이 시작됐다. 마침내 포클랜드에 아르헨티나의 국기가 게양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대처수상은 전쟁을 수락하지 않는 정부의 저지에도 막론하고 무력을 써서라도 반드시 포클랜드를 재탈환할 것을 명령했다. 이 전쟁은 대처 수상의 정치적 운명뿐만 아니라, 영국의 국운을 건 물러설 수 없는 일전이었다. 결국 두 달 남짓 만에 아르헨티나는 항복을 했고, 250여 명의 희생자를 낸 영국의 승리로 끝났다. 전쟁이 끝난 후 대처 수상이 제일 먼저 한 일은 희생자 전원의 가족들에게 일일이 편지를 쓰는 일이었다. 대처수상은 여름휴가를 반납한 채 영국의 수상으로서 뿐만 아니라, 사망한 병사의 어머니와 아내로서 밤마다 편지를 써 내려갔다. 철의 여신 마거릿 대처의 위대한 리더십은 전쟁에서 이긴 철의 정신이 아니라 희생된 병사들의 유가족에게 진심어린 편지를 쓰는 그 순간부터였다. 포클랜드 전쟁을 반대했던 국민들의 원성도, 전쟁에서 전사한 가족들의 원망도 대처수상의 편지 한통이 모두를 잠재운 셈이다.

우리나라에도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편지의 위력을 가지 사람이 많다.
국제무대에서 ‘따뜻한 카리스마를 가진 사람’으로 손꼽히는 반기문 UN 사무총장이 쓴 편지도 유명하다. 그를 잘 아는 한 고위 외교관은 “연말연시엔 반 총장이 2천명 가까운 국내외 지인들에게 손수 편지를 쓰는 것으로 안다”고 말한 적이 있었다. 외교부 재임시절 발탁 승진을 사양하다 결국 승진하게 되자 부처 내 선후배 동기 100명에게 미안하다는 뜻을 담은 친필 편지를 보냈다고 한다. 인간관계의 달인이라는 별명은 괜히 나오는 것이 아니라 반 총장만이 그려가는 진솔한 진실이 편지 속에서 보인다.

이번엔 좀 더 아름다운 편지 이야기를 해 보자.

여기까지가 끝인가 보오/ 이제 나는 돌아가겠소/억지 노력으로 인연을 거슬러 괴롭히지는 않겠소/ 하고 싶은 말 하려 했던 말/이대로 다 남겨두고서/혹시나 기대도 포기하려하오/그대 부디 잘 지내시오

김광진의 편지 노래 가사이다.
가수 김광진이 잘 알려지지 않았던 시절 사랑하는 여자가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변변한 직장도 갖지 못한 김광진을 반대하는 여자 부모님의 반대에 그 여자는 김광진을 뒤로 한 채 다른 남자와 선을 보았다고 한다. 뒤늦게 이 사실은 알게 된 김광진은 그 맞선남을 만났으나 화를 내지도 못하고 오히려 그 여자를 사랑해 달라는 부탁만 하고 돌아왔다고 한다. 이런 사실을 알게 된 여자는 김광진보다 여러모로 수순급(?)인 그 남자를 떠나 결국 김광진을 다시 사랑하게 되었다. 여자의 선택을 안 맞선남은 유학을 떠나면서 여자에게 편지 한 통을 전해주었는데 그 편지가 바로 김광진의 노래인 ‘편지’로 태어난 곡이라고 한다. 얼마나 가슴 저리는 아름다운 이야기인가?

편지에 얽힌 또 한 이야기를 해보자.

바다가 보이는 장승포우체국 앞에는 키 큰 소나무가 한 그루 서 있다./ 그 소나무는 예부터 장승포 사람들이 보내는/ 연애편지만 먹고 산다는데/ 요즘은 연애편지를 보내는 이가 거의 없어/ 배고파 우는 소나무의 울음소리가 가끔 새벽 뱃고동 소리처럼 울린다고 한다./

정호승 시인이 우리 거제도를 방문했다가 쓴 ‘장승포 우체국 이란 시다.
마지막으로 거제도의 큰 문인 유치환시인은 20년이 넘게 5,000통이 넘는 편지를 적어 그 편지가 아름다운 사랑 시로 탄생해 둔덕골 방하마을에 사람을 모으고, 많은 사람들에게 행복함을 주면서 읽혀지고 있지 않는가?

편지는 이렇게 보이지 않는 힘을 가지고 상대방에게 다가가고, 서로 마주쳐다보고 이야기를 나눌 때 보다 더 진솔한 힘을 가지고 있다. 편지는 이렇게 사람의 마음을 전해주는 매개체이다. 세월이 흘러감에 따라 우체국 집배원의 우편바구니 속에는 마음을 전하는 편지가 사라진 지가 오래 되었고, 이런 귀한 정감어린 손편지를 쓰는 사람은 이제 천연기념물이 된 시대가 되어버렸다. 가을이다. 가슴에만 담아두고 용서하지 못한 이에게, 고마운 맘 전하지 못한 이에게, 아니면 가장 가까이 몸 부대끼며 함께 살아가는 가족에게, 지내온 세월 뒤돌아보며 누구에게라도 내 맘 전하는, 손으로 꾹꾹 눌러쓴 편지를 써보자. 편지를 통해 이 가을이 좀 더 풍성해 지고, 이 가을에 좀 더 느긋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 되어보자.

‘가을엔 편지를 쓰겠어요. 누구라도 그대가 되어 받아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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