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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쉬운 밤, 흐뭇한 밤윤지영 /국제펜한국본부 이사

“아쉬운 밤, 흐뭇한 밤”(최백호의 '입영전야' 서두)이었다면 좋았을 것이다. 전측반측 뒤척이며 밤을 샌 아들이, 오늘 입대를 한다. 그야말로 “잘 키운 게 죄라고 2년 징역 보내는” 기분이다. 참여정부 시절 대통령까지도 "요새 아이도 많이 안 낳는데 군대에 가서 몇 년씩 썩히지 말고" 했듯이 '군대 = 가서 썩는' 그곳으로, 막내가 스무살쯤 되면 안 가도 되는 시대가 될 줄 알았다.

20년이 지난 지금도 북한의 악행은 여전하여 한반도 통일시대는 갈수록 멀어지는 느낌이다.
분단국가에 태어난 것도 운명이기에 우리는 병역이란 운명을 껴안을 수밖에 도리가 없다. 나도 아들도 때가 되니 보내고, 별 저항감 없이 그 길을 수용하는 것이다.

자신의 운명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이런 경우는 ‘가서 썩는 곳’의 한계를 넘지 못하지만 보다 적극적으로 군복무에 임한다면 비싼 수업료 내고 강한 정신력을 기를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다. 최근 조명된 주인공인 “박장호 · 성호 쌍둥이 형제”가 바로 그들이다.

지난해 5월 해병대에 입대하여 현재 수색대대에 복무 중인 이들 젊은이는 조국의 병역임무 완수를 위해 미국 영주권을 포기했다.
이야기는 1993년 5월에서부터 시작된다. 젊은 부부가 유학 중이었다. 남편은 만삭인 부인을 데리고 한국행 비행기를 탔다. 그 이유는 “자녀의 국적을 한국으로 해 주기 위해서”였다. 그들은 조국에서 쌍둥이를 분만한 후 다시 미국으로 돌아갔는데, 그 아이들이 스무 살로 돌아와 자원 병역의무를 수행하고 있는 중이다.

기자가 “사서 고생하는 이유”를 물었을 때 형제는 “어렸을 때부터 시민권을 신청하라는 미국 법원의 우편물을 부모님이 갖다버리곤 했다”며 부모의 영향력 덕이라고 밝혔다. 조부와 부친으로부터 늘 “너희는 한국인이므로 한국의 병역을 반드시 필해야 한다”는 가정교육이 "편하게 살아오면서 국가 안보에 대한 개념이 너무 없었음"을 깨닫게 했기에 “대학을 휴학하고 귀국해 군대를 간다고 하였을 때에도 부모님은 저희 결정에 대견스러워 해주셨고 진심으로 격려해 주셨다”는 것이다.

이런 경우와 비교되는 인물로, 최근 지탄을 받고 있는 유영익 국사편찬위원장을 들 수 있다. 그는 아들의 미국적 취득과 병역기피 의혹이 터지자 정색을 했다. "한국어를 못하고 취직도 안 돼 미국으로 나갔다" 이 말에 배치되는 증거물이 연일 터진다. 그의 아들이(41) 입사 당시(한국콘텐츠진흥원 미국 지사) 회사에 재출한 이력서에 스스로 "한국어에 유창하다"고 적시되어 있다. 그 뿐 아니다. 한국에서의 직장 ‘아리랑 티브이’(영어방송) 시절에 한국어와 영어에 능통해야 하는 자막 감수 일을 했다고 한다.

2010년 이전까지의 국적법에 의하면 만 22살까지 국적 선택을 하지 않거나 미국 국적을 선택하게 되면 한국 국적이 소멸도록 돼 있었다. 유씨는 만 22살인 1994년 이전에 한국 국적을 정리하였기에 병역기피 계산을 염두에 두었음이 명백해 진 것이다.
아들을 위해 앞면몰수하고 거짓말쟁이가 되는 한국의 뜨거운 부정 때문에 이 시대의 아들들은 ‘일반인 아들’과 ‘신의 아들’로 대별된다고들 한다.
신의 아들로, 자식을 격상시키는 부정의 백태는 치졸할 정도인데 지면관계상 최고위층 공무원 서너 명만 보자.

‘한승수’ 전(前)총리 아들은 병역특례업체에서 근무를 하였으며 그 4년 6개월 동안 244일을 국외여행을 다녔다. ‘정운찬’ 전(前)총리는 기피 연속 중 고령을 이유로 면제받았으며, ‘김황식’ 전(前)총리는 시력을 빌미로 면제자가 되었고, ‘김용준’ 전(前)인수위장 아들 둘, ‘정홍원’ 현(現)총리 아들 또한 신체적 결함으로 병역을 미필했다.

외국의 경우는 어떨까? 미국이나 영국은 한국처럼 징병제가 아니다. 병역은 의무가 아니라 선택인데도 불구하고, 목숨을 걸고 자진 입대를 한다.

존 케리 전 국무부 장관은 베트남전에 참전하였으며, 그의 부친은 물론이고 모친까지 세계 2차 대전에 참전하였다. 조지 부시 전 대통령은 최연소 조종사로 2차 대전에 참전했다가 격추당해 미군 잠수함에 구조된 적이 있으며 아들인 부시 전(前) 대통령도 전투기 조종사로 군복무를 하였다. 영국이라고 다르지 않다.
왕실의 해리 왕자는 아프가니스탄 파병 임무에서 공격용 아파치 헬기 조종사였으며, 할아버지인 에든버러공은 2차대전시 해군으로 활약하였다. 삼촌인 앤드루 왕자는 포클랜드 전쟁에서 활약하였는데, 이 전쟁은 아르헨티나의 무력 점령으로 시작되어 75일간 치열했다. 그 결과 영국군 452명, 아르헨티나군 630명이 전사했다. 생명이 저당잡힌 전장에서 여왕의 아들이 그것도 가장 위험한 임무를 수행해야 하는 전투 헬기 조종사로 참전함으로써 영국군의 사기는 충천하였고 전쟁은 영국의 승리로 끝났다. 전쟁역사학자인 마이클 풋 옥스퍼드대 교수는 세계 1,2차 대전 당시 영국 고위층의 25%가 사망했다고 전언하고 있다.

베트남전에서 4960명의 한국군이 숨졌을 때, 천안함이 침몰하여 46명의 병사들이 산화하였을 때, 이땅의 장군이나 장관, 국회의원 아들은 없었다.
선진국과 한국의 고위공무원 의식은 근본적으로 다르다. 전자가 기득권층의 의무(즉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으로 보인다면 후자는 명예와 일신 안위의 도구로 권세를 이용한다.

고위층인사들의 자식 병역면제률이 일반인에 비해 7배나 높다는 사실은, 한국의 가장 큰 후진성이다. 국가는 이 문제부터 해결하여 청춘들이 입영전야에 “아쉬운 밤, 흐뭇한 밤”을 기쁘게 건배들 수 있게 해야 한다.

새거제신문  saegeoje9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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