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종일 비가 내리면서 제법 신선한 바람이 분다. 가을이 되면서 이곳저곳에서는 이런저런 축제들이 열리는데, 내가 사는 둔덕골에서도 ‘둔덕청마꽃들축제’가 엊그제부터 시작되었다. 제법 많은 사람들이 예쁘게 잘 피어 있는 코스모스 꽃구경을 하러 몰려오고 있다. 삶에 지쳐있는 시민들에게 아름다운 풍광을 보여주어, 위안과 감동으로 삶의 활력을 주고자 하는 축제의 순기능적인 취지와 의도에는 칭찬을 보낸다.

유난히 더웠던 지나간 여름날씨에 꽤 많은 땀을 흘리면서 준비해왔던 행사관계자들의 수고에도 격려를 보낸다. 그런데, 행사장을 둘러보면서 느꼈던 것은 즐거움보다는 왠지 모를 아쉬움이 앞섰었다. 제방의 둑이나 길가에 코스모스를 심어서 청마의 문학과 어우러지는 문화축제가 되었으면 좋으련만, 문전옥답에다가 벼 대신에 꽃을 심어 축제를 하겠다는 그 발상에 대하여 조심스러운 우려가 생긴 것이다.욕망을 부추기면서 인위적이고 물질적인 것을 바탕으로 세련된 축제에의 추억보다는 자연적이고 정신적인 것으로서 순박한 축제에의 추억이 훨씬 여유로운 감동을 심어주고 그 여운도 오래 간다.

축제를 통해서 얻는 수익성보다는 논농사의 수익성이 비록 낮을지라도 곡식의 수확은 경제성으로 따질 수 없는 또 다른 가치가 있을 것이다. 논은 논으로 쓰여지고, 사람은 사람다울 때가 가장 아름답고 그 가치도 훌륭해지는 것이다. 그 어떠한 것도 역할과 쓰임이 뒤바뀐다면 혼란이 오기 마련이다. 집안에서도 아이가 아이답지 못하고 어른이 어른답지 못한다면, 그 집안은 혼란해지고 그래서 늘 불안해진다.

요즈음 우리 사회의 성 정체성도 상당히 혼란스러운 것도 사실이다. 남자가 남자답지 못하고 중성화 내지는 여성화되는 경향이 강하다. 여성들도 매양 마찬가지다. ‘~답게’라는 생각이란 것도 고정된 관념으로서 고집한다면, 그것은 자칫 위험한 인식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들이 제대로의 역할로서 ‘~답게’ 살아간다면, 우리에게 주어지는 혼란과 무질서의 문제를 어느 정도는 극복할 수가 있게 된다.

가을꽃 중에서 대표적이라고 할 수 있는 코스모스가 한여름에 들판 가득 피웠던 것을 보았다. 한마디로 ‘철이 없다’라고 표현할 수 있다. ‘철’이라고 하는 것은 ‘계절’ 혹은 ‘시기’ 또는 ‘~하는 때’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밥을 먹을 시간에 잠을 자거나 물러서야 할 때에 눌러 앉는 사람을 철이 없다고 하듯이, 피어야 할 시간을 알지 못하는 코스모스는 당연히 철이 없는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철없이 피어난 코스모스를 보면서 재배기술을 자랑하고 좋아하지만, 과연 이런 과학문명의 발달을 지혜롭다고 말할 수는 없다.

가속도가 붙었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급속하게 발달하는 물질문명은 자연생태계의 파괴를 담보하거나 정신문화의 황폐화를 유도하기도 한다. 어느 것이나 다 소중하겠지만 정신계와 물질계의 가치가 상호보완적으로 조절이 되지 않는다면, 공존의 틀이 무너지면서 공생(共生)을 할 수 없게 된다. 가치판단의 혼란으로 엉뚱한 모순적인 논리에 빠져들거나 불확실한 고집을 내세우기도 하면서, 자신의 삶을 힘든 방향으로 내몰아 아픈 상처의 경험을 갖게 한다.

10년에 한번씩 변한다던 강산들이 10초에 백번씩 변하는 현시대의 리듬변화는 가속도가 붙어서 우리를 변허게 하는 것조차도 모를 정도로 정신 없게 만든다. 안정적으로 조절이 되었던 예전의 세상 리듬은 파도타기처럼 완만하여 세상의 문제를 어느 정도 예측이 가능했었다.

요즈음 시대의 세상 리듬은 절벽타기처럼 급격하여 오르기는 어려우나 떨어지는 것은 한순간이어서 세상의 문제를 예측하기가 불가능한 혼돈의 시대가 된 것이다. 이런 혼돈의 시대에는 실상(實相)을 보지 못하고 진실과 상관 없는 생각이나 논리로서 우리의 삶의 문제를 보고 판단하기 때문에, 수없이 많은 착각과 오류를 범하기가 쉽다. 진리(眞理)를 바로 볼 수 있는 지혜가 없는 잘못된 생각들은 옥석(玉石)을 구분하지도 못하고 ‘참’과 ‘그릇됨’을 헤아리지 못하여 막된 삶을 살게 한다. 막되게 살아가는 현대인들 중에는 자신의 경험으로 만들어낸 의식세계에만 집착하여 자아가 분열된 힘든 모습으로 살아가는 경우를 볼 수도 있다.

얼마 전에 인천에서 발생했던, 돈 때문에 어머니와 형을 죽여서 암매장한 반인륜적인 사건도 원칙과 상식은 없고 혼란으로 상처받은 정신세계를 치유하지 못해서 생긴 경우였을 것이다.
모든 현상은 변하고 변한다. 변하고 변하기 때문에 ‘무엇이 옳은 것인지?’에 대하여 충분히 착각하고 혼란스러울 수 있다. 시간적으로 보면 과거의 지난 모습을 기준으로 새상을 보가나 판단하는 것도 어렵다. 또한 변화하는 과정에 놓인 현재의 모습에서도 안정적인 답을 내리기는 쉽지 않다. 그렇다면, 과거와 현재에서 문제의 답을 찾을 수가 없다면 다가올 미래의 문제에 대해서는 더욱 모를 수 밖에 없다. 그리하여 우리의 삶은 무명(無明)으로 혼란과 고통을 갖게 되는 것이다. 안개와 같은 혼란이 없기를 바란다면, 태양과 같은 지혜를 증득(證得)하는 끊임없는 노력이 필요하다.

변하고 변하는 그 실상을 바로 볼 수 있는 지혜를 갖추어 나가는 것이다. 온고지신(溫故知新)하고, 옛 성인들의 모습과 긴 역사의 흐름 속에서 교훈을 찾아야 한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안목을, 세상을 훌륭하게 살 수 있는 자세를 갖추어야 한다. 모든 삶의 결과는 자신의 행위에 그 원인이 있다. 인과응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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