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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와 국가김한식 /거제호산나교회 목사

하나님이 세상을 만드실 때 몇 가지 제도를 주셨다. 그 중에 하나가 교회요 다른 하나는 국가다. 교회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영혼의 양식을 제공하고 영적인 성숙을 위해 주셨고, 국가는 사회질서를 유지하고 보존하기 위해서 주셨다. 그렇다면 교회와 국가는 어떤 관계를 가지고 있는가?

교회와 국가는 오랜 세월을 지나오면서 각자의 고유 영역에 대한 해석 차이를 놓고 서로 심각하게 대립해 왔는데 그 대표적인 것이 정교일치론이고 다른 하나는 정교분리론이다. 정교일치론은 교회가 국가의 모든 문제에 대해 간섭해야 한다는 주장이고 반대로 정교분리론은 각자 서로의 영역에 대해 간섭하지 말자는 주장이다. 그런데 문제는 인간 세상에서 일어나는 문제들이 너무 미묘하고 복잡해서 어디까지가 국가의 문제이고 어디까지가 교회의 문제인지 명확하게 구분할 수 없다고 하는 여기에 큰 문제가 있다.

정교일치론을 주장하는 쪽은 로마가톨릭교회다. 로마가톨릭교회는 교회의 권위를 국가 위에 놓는다. 왜냐하면 저들은 이 세상을 타락한 세상으로 보고 그 속에서 사는 사람들도 타락했기 때문에 그 타락한 지식과 정신으로 이 세상을 올바로 정치할 수 없다고 보았다. 그래서 이 세상을 올바르게 정치하기 위해서는 타락하지 아니한 하나님의 말씀에 조명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므로 국가는 하나님의 말씀을 소유하고 있는 교회의 가르침을 받아야 한다는 주장한다. 이러한 국가관이 가장 크게 고조되었을 때가 중세 시대다. 중세시대 당시 교회는 국가를 시녀로 삼았다. 교황은 막강한 권세를 가지게 되고 부를 축적하게 되었으며 성직지상주의가 되었다. 중세시대의 대표적인 예가 바로 “카놋사의 굴욕”이라는 사건이었는데 독일의 왕 하인리히 4세가 카놋사라는 성 앞에서 3일 동안 눈 속에서 무릎을 꿇고 교황 그레고리 7세에게 속죄했던 사건이 있었다.

로마가톨릭교회의 정교일치와는 반대로 정교분리론이 있다. 정교분리론은 교회가 국가의 일에 일체 간섭해서는 안 되며, 국가도 또한 교회의 존재와 운명에 대해서 어떠한 영향력을 행사해서도 안 된다는 주장이다. 이러한 국가관은 칼빈에 의해서 제창되었는데 그는 이 말을 영역주권설이라는 말로 설명했다. 영역주권설이라고 하는 것은 교회나 국가에 미치는 하나님의 주권이 고유하기 때문에 어느 한 영역이 다른 영역을 무시하거나 대체할 수 없다는 말이다. 그래서 교회는 성도들의 영적인 사업에 주력하고 국가는 이 사회의 질서유지에 충실하라는 말이다.

근래에 들어와서는 교회의 국가에 대한 제3의 입장이 제시되었다. 소이 말하는 긴장관계적 이론이다. 이 말은 교회와 국가는 서로 긴장관계를 유지해야 한다는 말로써 국가가 잘못하면 교회가 그것을 지적해주어서 바른 길을 가게하고, 교회가 잘못하면 더 이상 타락하지 않도록 법에 따라서 다스리는 관계를 말한다. 그래서 서로가 서로를 감시함으로 피차간의 부패를 경계하고 서로 보충해서 본래적 기능에 충실하고자 하는 제도다. 아무튼 정교일치나 분리 둘 다 일리가 있고 동시에 의미가 있는 이론이다. 중요한 것은 교회가 국가에 개입하였을 때 교회는 타락하였고 교회가 국가의 일에 무관심하였을 때 교회는 백성들로부터 외면당했던 사실을 역사적인 교훈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기독교인의 국가에 대한 의무는 어떠해야 하는가?
성경은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굴복하라. 권세는 하나님께로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의 정하신바라고 말씀한다. 그러므로 교회는 국가의 권위에 대해서 복종해야 한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그 권위자를 통해서 법을 집행하고 사회질서를 유지하기 위해서 세웠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집고 넘어가야 할 문제가 있다. 그렇다면 국가가 사회질서를 위해서 합법적으로 법을 집행 한다면 당연히 그 권위자에게 복종해야 되겠지만 만약 합법적이지 못하고 오히려 악을 집행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문제다. 이러한 문제에 대해서 우리는 앞서간 신앙 선배들의 국가관에 대한 전통을 가지고 있다. 그것이 바로 “시민 불복종의 권리”다. 그러나 이 시민 불복종의 권리를 행사함에 있어서도 몇 가지 중요한 전제 아래서 이 권리가 행사되어져야 한다. 먼저 이 세상의 권세자들이 선을 행치 아니하고 궁극적인 권세자이신 하나님의 뜻과 상반되는 법을 집행하고자 할 때 그리고 이 권리를 행함에 있어서 폭력은 반드시 배제되어져야 하며, 동시에 저항이 우리 삶에 체질화되지 않도록 주의해서 집행되어져야 한다.

둘째는 납세의 의무에 충실해야 한다. 성경은 모든 자에게 줄 것을 주되 공세를 받을 자에게 공세를 바치고 국세 받을 자에게 국세를 바치라고 말씀한다. 우리가 세금을 내는 큰 목적 중에 하나가 국가라고 하는 제도를 유지하기 위해서다. 만약 우리가 세금을 내지 않는다면 이 국가는 유지될 수 없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교회는 국가의 권세자들을 위해 기도해야 한다.
성경은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기도하라. 이는 우리가 모든 경건과 단정한 중에 고요하고 평안한 생활을 하기 위해서라고 말씀한다. 우리가 모든 사람을 위해 기도해야 되겠지만 특별히 위에 있는 사람들을 위해서 기도해야 한다. 왜냐하면 지도자 한 사람의 생각에 따라서 살고 죽는 일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나라 안이 조용하지 못하다.
부하뇌동 하지 말고 기독교인으로서 국가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잘 생각하고 이럴 때 일수록 애국심을 발휘해서 우리 대한민국을 만세반석위에 굳게 세우는 우리교회들이 되기를 소원한다.

새거제신문  saegeoje9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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