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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은 질병을 치유한다김한식 /호산나교회 목사

복음 선포에는 항상 치유가 일어나야 한다. 치유가 일어나지 않으면 그것은 복음이 제대로 선포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예수님이 어디를 가시든지, 또 누구를 만나시든지 항상 그곳에는 치료의 기적이 나타났다. 병든자를 만나시면 병이 치료되고, 귀신들린 사람을 만나시면 귀신이 도망을 가는 그런 역사가 일어났다. 심지어 파도가 잔잔해 지고 죽은 사람도 살아나는 기적의 역사가 일어났다. 이처럼 복음이 재대로 선포되면 그곳에는 반드시 치유가 일어나야 한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이런 복음이 가져다주는 치유를 너무 단편적으로 이해해서 하나님이 주시고자 하는 복음의 진정한 축복을 온전히 누리지 못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에를 들면 복음이 가져다주는 치유를 육신의 병고를 제거하는 데만 국한해서 이해함으로 두 개의 큰 신학적 입장이 나타나게 되었는데, 하나는 오순절 신학이고, 다른 하나는 장로교 혹은 개혁주의 신학이다. 오순절 신학은 성령의 힘을 빌려 귀신을 쫓아내고, 육신의 병고를 고치는 것을 강조한다. 이 사람들은 치유를 축귀나 육신의 병고 제거로만 생각하기 때문에 그런 치유에 집중한다.

오순절 신학을 따르는 사람들 가운데 일부는 의사가 치료하는 치유는 하나님이 치료하는 것이 아닌 인간이 치료하는 것이라 생각하고, 의사의 치료를 배격하고 오로지 기도와 안수를 통한 치유만을 고집하는 사람들도 있다. 특히 정신질환과 같은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그래서 이런 사람들을 병원에도 보내지 아니하고, 기도원에 보내서 귀신을 쫓는 기도와 안수로만 치료하려고 하다가 병을 더 악화시켜서 곤란하게 만드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그러나 이런 신앙을 가진 사람들은 모든 병과 귀신들을 1:1로 직결시켜 보기 때문에, 하나님의 자녀로서 누려야 할 자유와 평안을 제대로 누리지 못하고 항상 귀신의 공포와 두려움 속에서 살아가는 경우가 많다. 이런 신앙은 결국 미신에 사로잡힐 수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오순절 신학과 반대로 장로교 신학 혹은 개혁주의 신학은 성령의 기적적인 치유 역사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고 본다. 실제로 20C초 장로교 신학을 대표했던 프린스턴신학교 B. B. worfield는 그의 책 “거짓 기적들”에서 “오순절 교회의 기적적 치유는 다 거짓말이며, 더 이상 성경에 기록된 것과 같은 성령의 역사를 통한 병자 치유는 없다”고 주장했다.

성령의 기적적 치료는 예수님과 사도들에게만 허락된 사역으로, 그것은 사도시대에 복음의 진리 됨을 증명해서 사람들로 하여금 믿음에 이르도록 하기 위한 이적이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처럼 교회가 굳건하게 세워진 때에는 하나님이 더 이상 성령의 역사를 일으키실 필요가 없고, 오직 말씀으로만 역사하신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런 식의 성경 이해는 너무나도 단편적인 해석이다. 오순절 신학이 신앙을 미신화 하는 위험을 가지고 있다면, 반대로 개혁주의 신학은 구원을 너무 관념화 혹은 미래화 시키는 경향이 있다.

치유는 포괄적으로 이해되어져야 한다. 치유는 부정적으로 말하면 모든 고난을 제거하는 것이지만, 긍정적으로 말하면 우리의 삶의 모든 현장에서 우리를 온전케 하는 것으로 나타나야 한다. 그래서 하나님 나라의 치유는 육신의 병고 제거뿐 아니라, 갈등의 제거, 경제적 빈곤의 제거, 정치적 억압의 제거 등과 같이 전 포괄적으로 일어나야 한다.

사실 예수님이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시면서 가장 많이 한 치료는 이런 치료였다. 곧 죄인들을 회개시켜 하나님의 통치를 받게 하고 그리해서 그들로 하여금 죄의 결과로 주어진 죽음의 모든 증상들로부터 자유해서 하나님과 이웃과 살롬의 상태 속에서 살게 한 것이다. 삭개오가 그 좋은 예다. 삭개오는 사탄의 통치 아래서 물질주의 우상에 빠져 남의 것을 착취함으로써 남에게 고난을 주고, 자신도 고난을 받는 그런 사람이었다. 그런데 이런 그가 복음을 듣고 구원을 얻게 되었는데, 그 결과 그는 하나님과 화평하고 이웃과 평화함으로 구체적으로 구원을 체험하게 된다. 이제 누구에게 토색한 것이 있으면 자기의 것의 절반을 나누어 주겠다고 고백함으로 이웃과의 평화를 추구하게 되었다. 이처럼 하나님의 통치가 임함으로 일어나는 치료, 다시 말하면 복음이 가져다주는 치료는 단지 축귀나 육신의 질고만 치료되는 것이 아니고, 우리의 삶의 모든 영역에서 죄의 결과로 우리에게 주어진 고난이 제거되고 온전케 됨이, 하나님의 통치, 복음이 가져오는 구원이요 치료다.

이처럼 우리가 성령님을 통한 치유를 이렇게 포괄적으로 이해하게 되면 우리는 하나님의 치유를 꼭 축귀와 질병 제거에서만 추구할 필요가 없다. 오히려 축귀와 육신의 병고 제거는 물론이고 모든 인간관계에 있어서 나타나는 갈등의 제거, 경제적 빈곤의 제거, 정치적 억압의 제거 등과 같이 전 포괄적으로 추구해야한다. 특히 낙심한 자들에게 새로운 삶의 용기를 주고, 남을 착취하는 삭개오와 같은 죄인들을 회개시켜 이웃을 사랑하게 하며, 위정자들이나 사업가들에게 하나님을 경외하게 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정치와 사업을 하도록 하여 우리가 사는 이 사회에 진정한 평화를 확대시키는 그런 치유를 추구해야한다.

하나님의 복음이 올바르게 선포되는 곳에서는 반드시 위대한 하나님의 치료의 역사가 일어나다. 그래서 병든 자들이 치료되고, 가난한 자들이 부요하게 되며, 억압받는 자들이 자유하게 되고, 모든 갈등 가운데 있는 자들이 화평케 되며, 낙심한 자들이 용기를 얻게 되고, 우리를 묶고 있는 모든 악한 마귀 사탄이 예수님의 이름 앞에 결박당하는 역사가 일어난다. 우리의 삶의 현장에 이런 귀한 복음의 역사들이 일어나서 우리의 영혼이 잘되기를 바라고, 범사가 잘되기를 바라며, 강건해 지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소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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