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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뇌가 곧 보리하담스님 /무이사 주지

젊었을 때 읽어 보았던 책 중에서 지은이와 제목은 정확하게 기억을 못하지만, 유난히 기억되었던 내용이 있었다. ‘늑대 잡는 덫’, 즉 ‘울프 트랩(wolf-trap)'에 관한 것이었다. 미국의 서부개척시대에 늑대의 피해가 많아서 사람들이 덫을 놓아서 그 늑대들을 잡는 방법을 이야기하면서 ’덫(trap)'에 관하여 잘 설명을 했던 것 같다. 사람들이 날카로운 칼에 늑대가 매우 좋아하는 피를 묻혀 놓으면, 늑대들이 그 피 냄새를 맡고 달려와서는 그 피를 먹게 된다는 것이다.

늑대는 피를 먹으면서 자신의 혀가 잘리는 줄도 모르고, 잘린 혀에서 나오는 자신의 피를 계속 먹다가 배 터져서 죽게 된다는 것이다. 또 죽은 늑대의 피를 먹기 위해서 다른 늑대들이 서로 싸우다가 끝내는 모두 다 죽는다는 이야기였다. 그 이야기가 사실이었는지에 대해서 확인할 수는 없었지만, 한참 철학적인 고민이 많았던 젊은 나에게는 좋은 가르침을 주었던 것 같다.

우리의 주변 곳곳에 무수히 많은 ‘덫’이 쳐져 있다. 우리는 ‘내 안에 있는 덫’과 ‘내 바깥에 있는 덫’, ‘쉽사리 풀리는 덫’과 ‘쉽사리 풀리지 않는 덫’, 그리고 ‘덫인 줄 아는 덫’과 ‘덫인 줄도 모르는 덫’ 등 다양한 모습과 성질을 가진 덫에 걸려서 고통스럽게 살아간다. 대부분 사람들은 그것이 덫인 줄 알면서도 쉽게 빠져 나가지 못한다. 특히나 ‘마음의 덫’에 걸린 경우는 더욱 그러하다.

우리가 잘 의식하지는 못하지만, 우리의 마음을 지배하고 조종하는 마음의 덫은 불행한 함정인 줄 알면서도 빠지게 되는 것이다. 요즈음에는 ‘셀프 테라피’라고 마음의 덫에서 벗어날 수 있는 마음 치유법이 등장하지만, 결국은 마음을 정확하게 알 수 없는 깨달음(지혜)을 갖지 않고는 이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생기는 일상의 모든 것은 마음의 덫에 걸려 일어나는 번뇌이다. 우리는 보기 싫은 것도 보아야 하고, 듣기 싫은 것도 들어야 하고, 하기 싫은 일도 해야만 한다. 보지 않고 듣지 않아도 번뇌는 생긴다. 일상의 모든 것은 반드시 생각이 따라오기 때문에, 생각(망상)이 들어오면 번뇌를 막을 수 없다. 그래서 중생의 삶은 생활 자체와 생각이 모두 번뇌가 되고, 그 번뇌로 인하여 시달리는 삶을 살게 된다.

번뇌라는 것은 무명(無明)이고, 고통의 근원이 된다. 그러나 번뇌 망상은 본래 공(空)하여 실체가 없다. 그런데 우리가 인식 작용을 통하여 견해(見解)를 가지면서 갈애(渴愛)와 자만이 생기고 번뇌가 슬그머니 시작되는 것이다. 이치에 맞지 않는 정신활동을 하면서 번뇌를 만들거나 생겨나게 한다. 자작자수(自作自受), 스스로 짓고 스스로 받는 것이다. 무엇이든지 붙들고 있어서 장애가 생기듯이, 자신의 견해에 집착하여 생긴 번뇌를 붙들어서 장애와 고통이 따르는 것이다.

무지와 착각 그리고 집착과 애착에서 생긴 번뇌의 적은 번뇌를 끊고자 하는 것이다. 번뇌를 끊고자 하는 생각이 또 다른 번뇌를 만든다. 1차 번뇌에서 끝내야 할 것을 계속해서 2차 번뇌, 3차 번뇌로 이어지게 하는 것이다. 번뇌는 끊으려고 해서 끊어지는 것이 아니라, 차츰 사라지게 되는 것이다. 사라질 때까지 그냥 지켜보면 된다. 번뇌가 일어나는 것에 연연하지 말고, 그대로 지켜보고 있으면 차츰 사라지는 것을 볼 수 있다.

번뇌가 생겼을 때에는, 번뇌를 긍정적으로 바라보면서 번뇌에 대치하여 해탈의 동력을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 오는 번뇌 막지 말고 가는 번뇌 잡지 않으며, 가만히 있는 번뇌 건드리지 않으면 번뇌는 저절로 지나간다. 한마디로 ‘도모함’을 경계해야 한다. 어떻게 한다고 해서 해결이 되지 않는 것이다.

사람들은 부족해지지 않으려고 끊임없이 노력(도모)을 하지만, 항상 한계에 부딪치면서 번뇌의 고통을 가지게 된다. 실상(實相)을 보면, 부족한 것이 우리의 본래모습인 것을 인정할 수 있다. ‘중생이 곧 부처’라는 말도 부족한 것이 곧 완전하다는 뜻이다. 부족한 그대로가 부처인 것이다. 허상(虛想)인 ‘다른 나’를 구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의 ‘참 나’를 찾아야 한다. 들을 때는 들려 지는 것만 있게 하고, 볼 때에는 보여지는 것만 있게 하며, 생각할 때에는 생각만 있게 하자. 그냥 그대로 있게하자. 번뇌가 곧 보리이다.

새거제신문  saegeoje9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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