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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제 선비의 고결한 숨결·정신 살아나다반곡서원 복원기념식 및 문화재 지정 추진을 위한 학술대회

지난 21일 거제면 동상리 346번지 일원에서 뜻깊은 행사가 열렸다.

거제 유림의 오랜 숙원이었던 반곡서원(盤谷書院) 복원사업이 완료되면서 145년 만에 제 모습을 찾은 반곡서원을 문화재로 지정하자는 주제로 학술대회까지 열렸다.

이날 학술대회에는 거제지역 유림은 물론 은진 송씨, 광산 김씨, 안동 김씨, 여흥 민씨 종친 등 반곡서원에 위패가 봉안된 후손들이 참석해 더욱 의미를 더했다.

반곡서원 300년 역사, 그리고 복원

반곡서원은 거제에 유일하게 남아있는 서원으로 지난 1679년(숙종 5년) 우암 송시열 선생이 거제에서 유배생활을 하는 동안 후진양성에 힘쓴 일을 계기로 1704년(숙종 30년) 거제유림에 의해 창건됐다.

반곡서원 현재 우암사에는 우암 송시열 선생을 비롯해 죽천 김진규, 몽아 김창집, 단암 민진원, 삼호 이중협, 계산 김수근 선생 등을 봉안해 매년 음력 삼월 상정일(上丁日) 향례를 올리고 있다.

거제 최초의 사립 교육기관이었던 반곡서원은 1868년(고종 5년) 흥선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에 따라 잠시 폐지되기도 했지만 거제지역 유림의 정신적 요람으로 수많은 후학을 양성했다.

반곡서원은 지난 1906년(광무 10년), 거제지역 유림이 힘을 모아 제단과 비석을 건립하고 단제봉행을 시작하면서 거제지역 출신으로 조선시대 최고의 문인이었던 동록(東麓) 정혼성 선생의 위패를 봉안한 별사인 동록당(東麓堂)을 세웠다.

거제고전문학 연구가 고영화 씨에 따르면 정혼성 선생이 남긴 동록문집은 추사 김정희가 읽고 감탄해 7언절구 시를 남기는가 하면, 중국까지 명성을 떨쳤다.

이후 반곡서원은 지난 1974년 거제유림 총회의 결의로 복원됐지만, 재원부족으로 콘크리트 기둥과 시멘트 기와를 사용해 전통 서원의 건축양식과는 거리가 멀었다.

오랜 시간 방치되고 노후화 된 반곡서원은 거제지역 유림과 주민들의 요구에 따라 지난 2010년 10월, 거제시가 복원 공사에 들어가 올 2월 10일 공사를 마무리하면서 제 모습을 찾게 됐다.

반곡서원 복원과 향후 활용방안

복원된 반곡서원에는 우암사, 강당, 동록당, 동재, 서재, 외삼문, 내삼문, 협문, 고직사 등이 들어서 원래의 모습을 찾게 됐다.

반곡서원 뒷산에 있던 송시열 선생의 유허비와 죽천 김진규 선생이 자신의 호를 죽천(竹泉)으로 삼은 계기가 된 죽천도 서원 강당 인근으로 옮겨왔다.

특히 강당 뒤편으로 선비의 기상을 담은 소나무와 대나무를 심고, 낮은 담장으로 서원 주변의 자연과 산수를 마음껏 즐길 수 있게 서원 건축양식을 되살렸다.

반곡서원의 복원은 거제향교, 기성관과 연계한 역사교육장 활용은 물론 문화관광자원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큰 기대를 모으고 있다.

복원기념식과 함께 열린 반곡서원 문화재 지정 추진을 위한 학술대회에서도 오석민 충남역사문화연구원 박물관장이 반곡서원은 복원 이후 활용방안에 대해 생각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오석민 관장은 “반곡서원 일원의 빼어난 경관을 활용한 음악회와 강연, 전통체험 및 역사탐방ㆍ답사 등 반곡서원의 활용사업을 추진해 반곡서원의 인지도를 높이는 등 문화재의 가치를 홍보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반곡서원이 거제역사의 문화적 자긍심이라는 점에서 잘 보존해 후손에게 물려 줄 것만 아니라 문화관광자원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그동안 반곡서원의 과제가 제대로 된 복원이었다면 앞으로는 반곡서원의 발전과 계승을 위한 활용방안이 과제로 남은 셈이다.

최대윤 기자  crow1129@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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