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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 오신 날을 되새기며도안스님 /연등사 주지

- 바른정법 바른인연(16)

우리는 부처님 오신 날을 맞이할 때마다 다시금 인간의 존엄성과 무한한 창조성을 간직한 자신들을 발견하게 된다.

부처님의 깨달음을 통해 인간을 창조하고 지배하는 절대적 존재에 대한 부정과 인간의 평등이 제창되었다. ‘인간의 빈부귀천과 흥망성쇠는 스스로 짓고 스스로 받는 자작자수(自作自受)요, 자업자득(自業自得)의 인과법(因果法)에 의한 것이며, 일체법(一切法)은 서로 의지하고 서로 관계되는 연기적 존재이니 오직 이러한 법을 알지 못하는 인간의 무지와 이에 의한 인간의 욕망이 일체 괴로움의 원인이 된다’고 설하심은 우리에게 무한한 능력의 소유자로서 절대자의 지혜를 간직하고 있는 자신을 자각(自覺)하게 한다.

이러한 절대자인 나 자신을 향상시키지 못하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한 번 깊이 생각해 볼 일이다. 우리 마음속에는 항상 굶주림과 갈애의 탐욕이 자리를 잡고 있으면서 오욕(五慾)을 향하여 줄달음친다. 부(富)의 욕망, 권력에 대한 욕망, 색(色)에 대한 욕망, 먹는 것(食)에 대한 욕망, 수면에 대한 욕망 등 이러한 것들이 기본적인 생의 욕망이라면, 여기서 벗어나지 못하고 그 속에서 허덕거리며 만족할 줄 모르는 가난한 마음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러나 이러한 것들이 우리들의 삶의 욕망이라면, 이러한 욕망이 충족된 자리의 뒷면에는 늙음과 병듦과 죽음, 또한 구하고자 하는 대상은 많으나 얻을 수 없은 고통이 있고, 사랑하는 사람을 모두 잃어버려야 하는 고통이 있고, 미운사람과 함께 해야하는 고통이 있다.
이러한 고통을 느끼면서 그 옛날 왕자의 자리를 버리고 영원한 진리를 찾았던 부처님의 뜻을 불자들은 생각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부처님이란 인도 말로 ‘붓다’ 또는 ‘깨달은 자’, ‘참 삶의 길로 인도하는 자’, ‘전지전능한 자’를 말하며 영원한 구원의 대상이 되는 것을 말한다.
부처님 오신 날을 맞이할 때마다 우리는 닫힌 존재가 아니라 항상 열려져 있는 존재라는 것과, 그리고 인간의 생애 끝에 가서 자기가 심혈을 기울여 일생 동안 이룩해 놓은 것을 부정하지 않으면 안되는 무상(無常)과 직면한다는 것과, 또한 인간은 인과적 법칙에 의하여 존재하는 것이며, 동물은 본능적 법칙에 의하여 존재하는 것이 생의 근본이라면 ‘나라는 익난은 어느 만큼에 서 있나?’를 생각해보고 무슨 일이든지 내 주위에서 일어날 때에는 존재의 이면에는 늘 그것을 있게 하는 원인이 내재한다는 인과불멸(因果不滅)의 진리를 터득해야 된다고 생각한다.

인간은 다듬어지지 않은 돌맹이와 같은 것이니 그렇게 다듬어 지지 않은 돌멩이가 장인의 피나는 손끝과 쏟아 부은 심혈에 의하여 천년을 숨 쉬는 찬란한 유산으로 만들어지기도 하고, 한편으론 발길에 채이는 쓸모없는 돌멩이가 됨을 볼 줄 안다면 나는 바로 나를 만들어야 할 것이다.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아집으로 닫힌 마음을 지금 열어 진리를 찾아가라고 마음의 길을 제시하신다. 그것이 바로 육바라밀(六波羅蜜)이다. ‘바라밀’이란 인도 말로 ‘파라미타’이다. 모든 갈등과 모순, 번민의 일상생활에서 벗어나 괴로움이 없는 해탈의 경지에 도달하는 것을 바라밀이라고 한다.

그 첫째는 인간은 항상 주는 인생이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주는 것 가운데 가장 으뜸인 것은 진실한 마음과 진실한 행동을 가지고 세상을 살며, 진리를 아는 자는 진리를 베풀어 모든 사람에게 참 삶으로 인도하고, 재물이 있는 자는 재물을 베풀어 가난한 자를 가난에서 구제할 줄 아는, 주는 인생이 즉 보시(布施)의 행이라고 하시며, 주되 내 마음도 모르게 주는 무연대비(無緣大悲)의 베푸는 길을 말씀하셨다.

또, “이 세상 어느 피조물이 나를 바치지 않을지라도 하자없이 하는 인간이 되는 것이니 윤리와 도덕이 존재하지 않고, 어떤 법칙이 존재하지 않을지라도 하늘로 머리를 하고 설 수 있는 인간이 되어야 하며, 또 너그러운 인생이 되라 하신다. 모난 물건이 땅에 던져질 때 물건의 모서리가 깨어지고, 던져진 곳도 패이고, 부러지는 것과 같이 모난 마음은 항상 남을 아프게 하는 것이며, 정직이 인간에게 보배이기는 하나 자비가 없는 정직은 각박한 것이라는 말씀과 괴로운 것을 참는 것은 인욕이 아니며, 유혹을 물리칠 줄 알아야만 참 인욕이니 너그러운 인생이 되어야만 한다”고 말씀하셨다.

둘째는 항상 부지런한 인생이 되라고 하셨다. 자신의 일과 선(善)과 모든 것에 부지런한 인생이 되라 하셨다. 셋째는 항상 고요한 마음의 소유자가 되라고 하셨다. 진흙 속에 맑은 샘물이 흐를 수 없듯이 탐욕과 갈애에 얽힌 마음 가운데에서는 참 삶의 진리가 나올 수 없는 것이니 산만한 마음을 가다듬어 바로 보고 바로 생각하고 바르게 행할 수 있는 존재가 되어야만 태양처럼 떠오르는 지혜의 마음이 나오고, 그 지혜의 소유자야말로 참다운 자비와 사랑과 평화와 화합을 행하는 힘이 나오며, 진리의 대광명으로 중생의 환부를 치유하는 참다운 자비의 마음이 나올 수 있고, 고난의 장벽을 행복으로 승화시키는 열린 마음이 나오는 것이다.

이렇게 주는 인생, 하자 없는 인생, 너그러운 인생, 부지런한 인생, 고요한 마음의 소유자로서 빛나는 지혜가 갖춰질 때 우리 마음속에 도사리고 있는 무지와 일체의 괴로움은 감히 어디에 존재할 것인가?
지금 우리 사회가 아무리 혼탁하고 윤리와 도덕이 제자리를 벗어난다 하더라도 우리는 그 자체를 탓하기 전에 그것을 만드는 근본을 돌아보면서 진리는 우리의 삶 그 자체 속에 있고, 그것을 나타내는 것은 행함에 있으며, 진리를 사모하고 참답게 살려고 노력하는 사람에게 행복은 어디에나 있기 마련이다.

그러기에 참다운 지혜는 삶의 이 곳, 저 곳을 살피고 치우쳐 쫓아다니는 눈길이 아니라, 큰 눈으로 삶의 전체를 바라다보는 근본적 참 마음만이 ‘참 나’를 볼 수 있는 것이라고 말씀하신 진리야말로 영원히 살아있는 생명이 아니겠는가?
우리는 사람이기 때문에 삶을 걱정하고, 행복을 추구하며, 진리를 사모하는 것이다. 그리고 분명히 너와 내가 있기 때문에 진리는 소중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부처님은 무한한 인간관계와 무한한 마음의 능력에 대해 말씀하셨다.
“사람의 생각은 어디로나 갈 수 있다. 그러나 어디로 가든 자기보다 더 소중한 것은 찾아볼 수 없다. 그와 같이 다른 사람에게도 자기는 더 없이 소중하다.”

그러기에 자기의 소중함을 아는 사람은 다른 사람을 절대 해쳐서는 안된다. 이렇게 샘물처럼 무한히 흘러내리는 자비의 감로로 고뇌에 빠진 중생들의 마음이 영원한 생명의 환희를 맛보며, 부처님 오신 뜻을 바로 되새긴다면, 다시 한 번 자신의 위대성을 자각하며, 정진하고자 하는 마음을 지니게 될 것이다. 이것이 바로 부처님이 주시는 자비의 감로가 아니겠는가?


새거제신문  saegeoje9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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