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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라는 이름원순련 /신현초등학교 교감

친정어머니께서 노환으로 병원에 계신지 벌써 9개월이 넘었다. 퇴근길에 카네이션을 가득안고 병실로 들어서자 정작 친정어머님은 벽을 향해 주무시는지 찾아온 딸을 보지 못했고. 함께 계시는 노인 세 분이 한 마디씩 반갑게 이야기를 걸어왔다.
“아이구! 말순아이가? 왜 이리 늦었노? 임숙이는 왜 안 오노? 딸년들이 내가 어떻게 키 웠다고 이렇게 가뭄에 콩 나듯이 얼굴을 뵈노?”
“방세 받아가지고 왔나? 돈을 내 손에 잡혀주어야지. 왜 방세를 한 번도 나를 안 주노?”
“가지고 온 것 어서 펴봐라. 니 혼자 묵지 말고.”

노인 세분은 제각기 자기 목소리로 한 마디씩 이야기를 던지는데 그 목소리와 얼굴표정이 마치 유치원 아이처럼 선했고 그 노인들 앞에 선 있는 나는 정말 그들의 딸이었고, 오늘 아침까지 먹을 것을 나누어 먹어왔던 모녀 관계처럼 스스럼없이 이야기를 하신다.

이 병실에 계신 노인 세분은 친정어머니를 제외하곤 모두 치매환자이시다. 여자 방문객이 병실로 들어오면 당연히 자기 딸로 생각하고 왜 다른 딸들을 다 데리고 오지 않았느냐고 성화를 부리고, 남자 방문객이 들어오면 아들과 사위로 인정하여 빨리 저녁을 차려주라고 평소 식구들을 건사해온 그 행동을 그대로 재현하신다. 세 할머니의 이야기에 말순이도 되고 임숙이도 되어드리며 한참이나 이야기를 나누는데 친정어머님께서 잠에서 깨어나 나를 쳐다보셨다.

어머님은 하루 종일 배가 고팠다고 이야기 했다. 그러면서 자신이 아들딸을 일곱 명이나 낳았는데 내가 왜 이 병실에서 이렇게 배고프게 있어야 하느냐며 집으로 따라 오시겠다고 성화를 부렸다. 친정어머님은 힘든 병원생활 이야기를 하시다가 가끔씩 지나간 일을 한 폭의 수채화처럼 읆어내곤 하신다. 지난 가을에 뒷밭에 상치씨앗을 뿌려두었는데 겨울 동안 죽지 않고 저렇게 잘 살아났다며 정말 그 상치 잎이 눈앞에 보이는 것처럼 얼굴 가득 미소를 머금곤 하신다. 어머님의 배고픔은 곡기가 부족하여 만사가 힘에 부치는 배고픔이 아니라 가족과 함께 하지 못하는 서러움과 서글픔의 허기였던 것이다. 간병사의 말씀에 의하면 그 행동이 바로 치매초기라고 그러셨다. 우리 어머님도 이제 점점 저 노인들처럼 날 알아보지 못하게 될 것이고, 누구나 붙들고 왜 이제 왔느냐고 이야기 할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방금 점심을 먹고도 간병사를 야단치며 저 사람들이 나를 굶긴다고 야단을 치는 그런 사람으로 변해 갈 것이라는 생각이 들자 소름이 돋았다.

어머니!
왜 이 낱말 앞에 서면 이렇게 눈시울이 적셔지고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뜨거운 그 무엇이 목구멍까지 끓어오르는 것일까? 지금 저 병실에 계신 여든이 넘으신 어머님들의 삶은 인간으로서 살아온 것이 아니라 어머니로서의 삶을 살아오신 분들이시다. 층층시하의 어른들을 모셨고, 많은 시동생과 시누이들을 키웠고, 길쌈질과 농사일로 하루 편히 쉬지 못했다, 어디 그 뿐인가? 자식을 위하여 배불리 먹지 못한 허기진 배를 움켜쥐며 자신의 인생은 어디에 있는지도 알지 못한 채 그냥 여자로만 살아오신 분들이시다. 유행가 가사에서 볼 수 있는 여자의 일생이 바로 우리나라 어머니의 자화상인 셈이다.

하루 종일 밭에서/ 죽어라 힘들게 일해도/어머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찬밥 한 덩이로/대충 부뚜막에 앉아 점심을 때워도/어머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
한겨울 냇물에서/맨손으로 빨래를 방망이질해도/어머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중략>
아버지가 화내고/자식들이 속 썩여도 끄떡없는?어머니의 모습/?
돌아가신 외할머니가 보고 싶으시다고,/외할머니가 보고 싶으시다고./그것이 그냥 넋두리인 줄만 알았던 나.?
한밤중 자다 깨어 방구석에서/한없이 소리 죽여 울던/ 어머니를 본 후로는
아, 어머니는 그러면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어느 시인이 적어놓은 어머니에 대한 싯귀이다. 한 구절 한 구절 음미할 때마다 이 죄를 어떻게 해야 하나 싶을 만큼 우리는 어머니에 대해 너무나 많은 죄를 지었고 그 죄를 이제사 깨닫게 되는 것이 속상하여 설움이 치솟아 오른다. 어머니는 여자가 아닌 줄 알아왔고, 어머니는 당연히 그래야만 하는 것으로 생각해 왔기 때문이다. 그런 힘들고 어려운 시절에 며느리로, 아내로, 어머니로만 살아온 우리네 어머니의 희생이 있었기에 지금의 우리가 있다는 것을 잊고 있는 것 같다. 그런 위대하신 어머님들이 바로 저 병실에서 누구나 붙잡고 내 아들로, 내 딸로 생각하며 외로운 팔순을 넘기고 있는 대한민국의 어머니인 셈이다.
한사코 따라나서겠다는 어머님을 겨우 달래놓고 나오는데 할머니 한 분이 현관 앞에서 먼 하늘만 쳐다보고 계셨다. 행여나 밖으로 나가버리면 어쩌나 싶어 직원들에게 연락을 하자 10년 동안 오지 않는 아들을 하루도 빠짐없이 저렇게 현관에서 기다리고 있는 할머니라고 했다.

‘어머니!’
어머니는 미치지 않고는 어머니가 될 수 없다는 어느 학자의 글이 생각난다. 5월이다. 신록이 산천을 뒤덮고, 꽃향기가 지천을 흔드는 참 좋은 계절이다. 우린 이 아름다운 계절에 누구를 생각해야 하나?

새거제신문  saegeoje9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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