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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행복을 찾아서- 바른정법 바른인연(15)

도안스님
/연등사 주지

사회복지는 영어의 'social welfare'를 번역한 것이다. 먼저 복지를 뜻하는 ‘welfare’는 ‘지내다, 살아가다’란 의미의 ‘fare’에 ‘만족스러운’ 혹은 ‘적절한’이란 의미의 ‘welf’가 합쳐져서 ‘만족스럽게 지내는 상태’를 의미한다.
웹스터 사전에 의하면 복지는 ‘건강하고 행복하며 안락한 상태’라고 정의되어 있다. 복지란 건강하고 안락한 인간의 이상적인 상태, 즉 안녕, 행복, 복지(well-being)의 상태를 나타내는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다음, 사회적이란 의미의 ‘social’은 ‘지역사회나 집단 속에서 같이 지내다’란 뜻을 가지고 있다. 사회적이란, 사회 안에서의 삶의 질과 개인, 집단, 사회 전체간의 사회내적인 관계를 뜻한다.
또한 사회내적인 관계란 개인의 정신세계나 국제관계와 같은 사회외적인 관계를 제외한 개인 대 개인, 개인 대 집단, 개인 대 전체사회, 집단 대 전체사회의 비이기적 상호관계를 의미한다.

사회적이란 의미는 물질적이거나 영리적 요소보다는 비영리적이며, 이타적 속성의 공동체적 삶의 요소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라고 하겠다.
한편, 사회복지의 한자 표기인 ‘社會福祉’는 社會와 福祉의 복합어이다. 복지의 福을 쪼개보면 시(示)가 붙은 자는 대개 신(神)과 관계되는 글자가 많다. 다음 복(福)자 중 나머지 부분의 전(田)은 곡물을 수확하는 토지, 밭을 의미한다.

소욕지족(小欲知足)이라. 즉 적은 것으로 만족할 줄 알아야 한다는 말이다. 또한 마음을 맑게 가져 중심(中心)을 잃지 않아야만 참다운 영원한 생명인 것이다. 물질적 집착에서 마음의 조정과 제어에 반석처럼 흔들림이 없어야 행복이요, 최고의 복지 실현이다.

사회복지 서비스가 아무리 전문적이고 질적, 양적 수준이 높다 하더라도 자신이 스스로 자립의 의지를 인식하는 정신 바탕이 중요하다. 지금 세계도 백이사지(白爾思之)로 진단하는 종류의 새로운 위험과 불확실성으로 특징 지워진 게 현실사회의 모습이다.
그러나 우리는 신뢰라는 개념을 미래에 대한 밝은 희망으로 개인과 사회적 공동제도에 대해서 자신감을 가져야 한다. 이와 같이 급속히 변화하는 세계에서 전통과 가치는 해체되고, 이전에 사람들이 선택과 행동의 지침을 제공했던 사회적인 코드는 크게 악화되었다.

그러나 세계화된 사회에서 정부의 전인적 사회복지 정책과 복지체계의 고도의 발달과 복지에 대해 높은 비율의 예산을 국가는 지출해야 한다. 전체 인구에서 돌아가는 복지혜택이 얼마나 되는가에 따라 그것이 달라지지만, 보편적 수혜를 제공하는 복지체계에서는 소득과 관계없이 필요로 하는 누구나 평등하게 그것을 누릴 권한이 있기에 우리들의 기본적인 복지에 대한 욕구가 상시 보장되도록 법령을 통해 제도적으로 이러한 목표를 구체적인 행동으로 전환시키는 시행이 중요하다.

이제 엄청난 사회변동의 속도에 따라 현실의 여러가지 시책이 사회복지라는 이름하에 실시되고, 그 양과 질이 점차로 충실해져감에 따라 당연히 사회복지 및 사회복지 환경과 복지사업에 관심이 높아지고 선호 받는 의지와 선택으로, 이제야말로 떠들썩한 초창기를 벗어나서 대중의 입지점을 다시 돌아보지 않으면 안될 시기에 온 것 같다.

사람은 혼자 태어나서 혼자서 죽어간다. 세상을 살아갈때도 온갖 관계를 지니고, 여러 형태의 삶을 살고 있지만 ‘속사람’은 저마다 자기 자신 뿐이다. 아무리 가깝고 친한 사이라 할지라도 같은 생각을 함께 할 수는 없다. 그런 의미에서 사람은 외로운 존재이다. 외롭다는 표현은 생(生)과 사(死)에 동반이 있을 수 없다는 뜻이다.
불가에서는 ‘무소의 뿔’이란 용어가 있다. 이것은 주로 출가(出家)한 수행승을 대상으로 하는 말이지만, 가정을 이루고 가족공동체로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따뜻한 정감과 사랑을 나누며, 인정과 눈물과 웃음이 깊이 흐르는 인간의 행복을 확인하는 사람도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이런 사람들이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무소란 뭍에서 사는 짐승 가운데 코끼리 다음가는 큰 동물인데, 코 위에 뿔이 하나 솟아있다. 그래서 ‘코뿔소’라고도 한다.

사회복지의 목적은 인간의 존엄성 확보, 인간다운 생활보장, 자립적 생활촉진, 몸과 마음의 건강한 무한 생명력 확인 등, 곧 물질이 정신과 다르지 않고 정신이 물질과 다르지 않다는 현대 물리학의 실증적 논증의 수준이란 살기 좋고 신명나는 사회복지 목적과 실천, 결과적으로 삼위일체(三位一體: 복지환경, 복지 시혜자, 수혜자)의 복지 낙원(樂園)의 사회를 실제 열어가야 하지 않겠는가?

여기에 주체는 바로 우리 모두 자기 자신인 ‘나’인 것이다. 그래서 현재의 현대사회에서 영원한 행복을 찾아서 인도주의적 동기에서 출발한 사회복지를 실천, 회향해야 한다.
인도주의는 우선 인간적 고통을 덜어주고, 기쁨과 안락을 안겨주는, 바꿔 말하면 모든 생명은 존엄하고 평등하다는 불교적 사상에 입각해서 출신성분이나 직업에 관계 없이, 피부색깔이나 종족에 관계없이, 신체장애나 남여에 관계 없이, 모든 인간은 인간답게 살아야 한다는 생명의 존엄으로 영원한 행복을 찾아 구도의 길을 가는 수행자처럼 일체 생명을 이롭게 하는 인간적 바탕에서 간절하면서도 정성스럽고, 지혜롭게 사회복지가 대중화, 보편화, 실제 사회화 되도록 해야 한다.

이를테면 어디로 간다고 할 때에 북쪽에서 가든, 남쪽에서 가든, 바다에서 가든, 육지에게 가든, 비록 그 방향과 수단은 제각기 다르지만, 목적지에 간다고 하는 근본 목표는 다 같다고 할 수 있다. 사회복지의 사회적 목표는 사회적 약자들의 어려움을 해결하고 사회질서 유지와 사회 안정이 도모되어야 한다. 또한 정치적으로 안정된 사회통합의 기반이 더더욱 중요하다.

본인이 열거한 논거는 상대적이고 유한한 관계에서 절대적이고 무한한 관계로 안목을 높이자는 것이다. 상대적이고 유한한 세계는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와 같이 태어남과 병들고 죽음과 같이 고통과 번뇌가 가득한 세계이다. 여기서 우리가 누리는 행복은 일시적인 것에 지나지 않으며, 결국에는 오히려 괴로움만 더해 줄 뿐이다.
그러나 절대적이고 무한한 세계는 이 고통의 현실을 벗어나 자유의 세계로서 영원한 행복이 있는 것이다. 우리는 상대적이고 무한한 이 세계 공생멸의 차안(此岸)에서부터 절대적이고 무한한 저 세계, 곧 해탈의 피안(彼岸)으로 건너가야만 영원한 행복으 누릴 수 있다.

이것이 바로 모든 종교가 지향하는 근본 목표라 하겠다. 이렇듯 인간이 무한한 생명의 실상(實相)을 찾아 오늘날 사회복지 주체가 혼합된 형태로 이뤄지고 있지만, 일단 공적사회복지 주체와 민간 사회복지 주체가 지니고 있는 장단점을 극복하고 인간이 창의와 지혜로 최고의 가치적 사회복지의 현실적 실천이 되어야 할 것이다.

새거제신문  saegeoje9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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