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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다툼하담스님 /무이사 주지

어떤 모임에서 참석했던 두 친구가 말다툼하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옆자리에서 가만히 들어보니, 그렇게 중요하지도 않은 문제를 가지고 계속 싸우듯이 논쟁을 하고 있었다. 중간에 나서서 서로에게 이해와 화해를 권해봤지만, 끝까지 자신의 주장만 되풀이 하다가 결국에는 그중 한 친구가 모임이 끝나기도 전에 자리를 털고 나가는 것이었다. 흔히 볼 수 있는 모습들이기는 하지만, 서로 영원히 보지 않을 것처럼 막 대하는 모습이 어쩌면 경쟁사회에서 상대에게 서로 지지 않으려고 하는 아집 때문에 그런 것 같아서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요즘 시대의 사람들은 대부분 사소한 말실수 때문에 다툼을 일으킨다. 대화 도중에 상대방이 내게 기분 나쁜 말을 하거나 자신의 생각에 맞지 않게 말을 하면, 서로 죽일 듯이 싸우기도 하면서 끝까지 그 논쟁에서 이기려고 아주 날카롭게 대한다. 정작 그보다도 더 큰 문제가 생길 때에는 오히려 대담하게 이해하거나 양보를 잘하면서도, 상대방이 조금이라도 말실수를 하게 되면 예민하게 말꼬투리를 물고 늘어지는 경우를 우리 주변에서 종종 보게 된다.

우리는 생각을 하면서 살아간다. 생각을 통해서 자신의 존재와 삶에 대한 의미와 가치를 부여하기도 한다. 우리들은 자신의 생각과 뜻을 말(言語)과 문자(文字) 혹은 몸짓이나 표정으로 표현을 한다. 현대인들은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 방법 중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것이 말(언어)이다. 그런데 우리들이 사용하는 언어들은 근본적으로 일정한 결함을 가지는 불완전(不完全)한 것이다. 지극히 한정되고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는 언어의 구조나 기능을 감안하면, 타인과의 대회를 할 때에는 보다 정제되고 적확(的確)한 언어를 조심스럽게 사용하여야 한다.

또한, 자신의 생각을 너무 고집스럽게 말하는 것도 경계를 하여야 된다. 부처님께서는 삼법인(三法印) 중에서 제행무상(諸行無常)을 설하시면서 ‘존재하는 모든 물질계나 정신계는 변하지 않는 것이 없다. 그래서 영원한 것이 없다’라는 가르침을 주셨다. 우리의 생각도 항상 변하고 변하는 것인데, 그 생각이 마치 영원한 진실인 것처럼 단정을 짓는 것은 어리석은 착각이다. 우리는 남들에게 속기보다는 자신의 경험에 속기 쉽다. 우리가 순간순간 보고, 듣고, 느끼고, 배우면서 가졌던 경험은 절대적으로 옳다고 맹신하는 생각들이 우리 자신을 속이는 것이다.

변하는 것을 변하지 않는 것처럼 착각을 하는 것이 속게 만드는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 자신이 겪었던 경험들을 부정하거나 믿지 않을 필요도 없다. 우리는 단지 그렇게 경험을 했었을 뿐인 것이다. 자신이 그렇게 경험해서 형성된 인식체계를 정확하게 이해를 하면서 자신의 주장을 하는 것이 지혜로운 표현이 될 수 있다. 불가(佛家)에서 법회 때마다 반드시 독송하는 기본경전인 천수경(千手經)에서는 십악(十惡)을 짓게 만드는 신구의(身口意) 삼업(三業) 중에서 말로서 짓는 구업(口業)에 대하여 가르침을 주고 있다.

망령된 말인 망어(妄語)와 겉과 속이 다르거나 꾸며대는 말인 기어(綺語), 이간질하는 말인 양설(兩舌)과 욕지거리와 같은 험악한 말인 악구(惡口) 등으로 무거운 중죄(重罪)를 짓게 된다는 것이다. 이렇게 입으로 짓는 악업(惡業)들은 자신에게도 스스로의 삶을 황폐하게 만들지만, 상대방에게는 돌이킬 수 없는 깊은 상처와 절망을 안겨주게 되어 이를 경계하도록 가르친 것이다. 좋은 말 한 마디가 천냥 빚을 갚게도 하지만, 나쁜 말 한마디가 모두에게 고통을 안겨주는 비수가 되기도 한다.

그리고 우리는 어떠한 주제를 가지고 말을 하는지도 중요한 것 같다. 옛 선인들께서는 ‘대인(大人)은 사상(思想)을 논하고, 범인(凡人)은 사건(事件)을 말하며, 소인(小人)은 사람을 씨부린다’는 말씀을 통하여 대화의 내용이 중요함을 강조하셨다. 훌륭한 대인들은 인류 전체의 미래지향적인 공동선을 추구하는 사상을 논의하는 것을 좋아하고, 평범한 사람들은 자신의 현실적인 상황에 맞는 일상사에 관심 있게 말하는 것을 좋아하며, 어리석은 소인배들은 다른 사람들의 과거 행적에 대하여 시비하기를 좋아한다는 것이다.
말 많고 탈 많은 요즘 세상에서는 남을 험담하는 것보다는 자신의 삶에 대한 솔직한 이야기와 우리 모두의 행복을 위한 아름다운 대화가 우리 스스로를 더욱 가치 있고 고귀하게 만드는 방법이다.

많은 종교단체에서 지금 시대를 말법시대(末法時代)라고 규정하고 있는데. 이것은 아마도 말(言語)이 법(法)이 되는 시대를 말하는 것으로도 느껴진다. 불완전한 언어들이 마치 완전한 진리인 것처럼 혼돈을 일으키는 혼란한 세상을 일컫는 것 같다.

새거제신문  saegeoje9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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