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오피니언 종교칼럼
지혜종자(智慧種子)를 없애는 술도안스님 /연등사 주지

불가(佛家)의 계율이란 행위, 습관, 도덕, 행동과 언어에 악을 짓지 않고 방지하는 계(戒)와 부처님의 제자들이 지켜야 할 행동과 여러가지 잘못과 악을 억제하는 율(律)을 합한 말이다.

부처님은 “살생하지 않아 자비심을 길러야 하고, 도둑질 하지 않아 베품을 배워야 하고, 사음을 하지 않아 정결을 지킬 줄 알아야 하고, 거짓말을 하지 않아 진실해야 하고, 술을 마시지 않아 맑은 정신으로 깨끗한 행으로 살아야 깨달음을 얻는다”라고 말씀하시면서 이러한 계율은 대중을 화합시키므로 꼭 지켜야 함을 강조하셨다.계(戒)를 지키고 가지는 것은 사람으로 하여금 뉘우치는 잘못이 없게 하는데 뜻이 있고, 뉘우치는 잘못이 없게 하는 것은 사람으로 하여금 즐겁게 하는데 뜻이 있다. 지혜(智慧)는 계에 의해 청정(淸淨)해지고, 계는 지혜에 의해 청정해진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런데 계(戒)중에서도 ‘술을 마시지 말라’는 계율은 가장 기본적으로 받는 계율이면서 이것처럼 잘 지켜지지 않는 계율도 없다. 지키려고 노력하지 않는 현실이 안타깝다.

선악소기경(善惡所起經)에 ‘술은 36가지 허물이 있다’고 했다. 그렇기 때문에 혹독한 망신살이 숨어 있다. “술은 지혜와 좋은 뿌리를 없애고, 법의 보배를 없애니 큰 도끼와 같고, 모든 잘못의 시초이며, 모든 악(惡)의 근본”이라고 했다. 술을 먹고 제 정신을 잃는 것은 모든 것을 잃는 것이기에 금지하는 것이다.일부 출?재가자들이 곡차이니, 반야탕이니 하면서 마시기도 하고, 신통이 자재한 고승들의 흉내를 내어 무애행(無碍行)으로 여겨 불음주계(不飮酒戒)를 지키지 않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그러나 부처님 앞에서 지키겠다고 한 맹세를 깨뜨리는 파계(破戒)는 결코 자랑일 수 없다.

계율은 부처님의 교육관이다. 자식이 잘 되기를 바라는 부모의 마음으로 정한 것이 모든 계율(戒律)인데, 누구는 지키고 누구는 지키지 않아도 된다는 그런 것이 아니다. 부모의 꾸지람을 듣기 싫어하는 후손이 잘 되는 법은 없다. 특히 수행자가 위의(威儀)에 맞지 않게 옷을 입거나 행동한다면 많은 이들로부터 지탄을 받게 된다.

계율이 없으면 부처님의 법(法)도 있을 수 없고, 계율이 지켜지지 않으면 정법(正法)이 빨리 없어짐을 부처님은 염려하셨다. 원래 도(道)라고 하는 것은 ‘눈 위에 찍힌 사슴의 발자국’을 뜻한다고 한다. 사냥꾼은 이 발자국을 따라 사슴을 포획하듯이 구도자는 스승이 남긴 발자취를 따라 해탈문(解脫門)에 들어서고자 노력해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 출?재가자 우리 모두는 부처님을 닮으려고 애써야 한다.

어느 큰 스님께서 “법(經典)은 바로 부처님의 유산이다”라고 하셨다. 그 예로 부처님의 아들인 라훌라가 열두살 되던 해에 어느날 부처님을 찾아와 “저에게 물려줄 유산을 주십시오”하니 부처님께서는 빙그레 웃으시면서 라훌라의 손을 이끌고 제자인 사리불존자에게 가서 “이 아이를 출가시켜라”고 하셨다.
부처님의 유산은 바로 법(經典)이었던 것이다. 이 법은 라훌라에게만 전한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물려준 유산이다. 계율을 지키지 않는 것은 불법(佛法)을 스스로 망치는 것이라면서. 과연 유산대로 잘 살고 있는지 우리는 반성해 볼 일이다.

부처님은 “지혜, 계율, 도덕에 대해 편견을 가져서는 안된다”고 하셨다. 부처님 십대제자 중 지계(持戒) 제일인 우바리존자를 보면, 우바리는 궁중에서 머리를 깎는 이발사였는데, 당시 이발사라는 직업은 인도의 사성계급(四姓階級) 중 비천한 계급에 속했다. 부처님께서 성도하신 뒤 고향에 돌아오시어 법(法)을 설하자, 석가족의 왕자를 비롯해 많은 사람들이 출가를 했다. 왕궁에서 왕자들의 머리를 깎아주던 우바리는 천한 몸으로는 출가할 수 없다고 생각했는데, 그 마음을 읽으신 부처님께서는 우바리의 출가(出家)를 허락하셨다.

그가 출가한지 17일째 되던 날, 난타왕자는 정식으로 부처님의 제자가 되었는데, 부처님은 늘 하던대로 출가한 순서대로 절을 받게 하셨다. 그러나 난타왕자는 차례로 절을 하다가 우바리 앞에 이르러서는 천한 이발사라 하여 절을 하지 않았다.

이 광경을 보신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불법(佛法)에 있어서는 무엇보다 계행(戒行)을 청정하게 지키고, 정진해서 덕(德)을 닦아 교만한 마음을 항복받는 수행의 결과가 제일이다. 출가한 순서로 정하니 형으로 삼아서 존경하고 대접하도록 하라”고 하셨다.

그러나 난타왕자는 선뜻 우바리존자에게 절을 하지 않았다. 그러자 부처님께서는 다시 간곡하신 말씀으로 일러주셨다. “온갖 더럽고 냄새나는 수백 수천의 냇물도 마침내 바다로 모이며, 일단 바다에 이르면 모두 한 맛(一味)의 짭짤한 바닷물이 되듯 누구나 교단에 들어오면 똑같은 사문일 뿐이다”고 하자 난타왕자는 이윽고 우바리존자에게 공손하게 절을 하였다.

부처님은 많은 귀족들로부터 반감을 샀지만, 교단 안에서의 일체 불평등을 용납하지 않으셨다. 출신에 관계없이 교단에서는 평등했고, 부처님 자신도 평등한 일원으로서 일체의 특권을 거부하셨다.
또한 큰스님께서는 “계(戒)는 지키는데 목적이 있는 것이지, 벌을 주기 위해 있는 것이 아니다”고 하셨다. 우리 불가에서는 잘못을 저질렀다 하더라도 참회(懺悔)의 기회가 주어지고, 그것에 대해서 용서와 관용으로 감싸주는 너그러움이 있다.

우선 참회하는 말의 뜻을 나눠보면, 스스로 범한 잘못을 뉘우쳐 용서를 비는 것을 참(懺)이라 하고, 과거의 잘못을 뉘우치고 불?보살님, 어른 대중(스님)들 앞에서 고백하고 사과하는 일을 회(悔)라고 한다. 누구나가 잘못과 실수를 저질렀다 하더라도 그 수습하는 태도에 따라 크게 삶의 의미가 달라질 수 있는 것이다. 백년 동안 때묻은 옷이라도 하룻날 씻어서 깨끗하게 하는 것과 같이 백천겁 동안에 지은 모든 악한 일(業)도 불법(佛法)의 힘으로 잘 수순해서 닦으면 일시에 소멸할 수 있다고 한다.

다시 큰 스님께 행복의 법칙을 여쭈자 “경전(經典)에 행복의 법칙이 다나와 있다. 행복은 결코 먼데 있는 것이 아니다. 부처님은 쓸데없이 큰 욕망을 부리는 것을 경계하셨다. 작은 것으로도 만족할 수 있는 소욕지족(小欲知足)을 누리라는 것이다. 방이 수십개라도 내가 누워 잘 곳은 한 칸이다. 땅이 아무리 많아도 죽어 묻힐 곳은 반평이면 된다”고 하셨다.

과연 우리는 행복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지 자신 스스로가 한 번 되돌아봐야 하지 않을까? 오계(五戒)를 잘 지키고, 그 중에서도 새해에는 술을 먹지 않는, 불음주계(不飮酒戒)를 잘 지키는 불자로서 바른마음과 맑은 정신으로 육바라밀(六波羅密)을 실천, 수행하는 불자가 되자.

새거제신문  saegeoje99@hanmail.net

<저작권자 © 새거제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새거제신문의 다른기사 보기

정기 후원은 새거제신문의 신속 정확한 뉴스 및 정보 제공에 큰 힘이 됩니다!

후원하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