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 때 피난민과 군수품을 실어 나른 낡은 배를 두고 ‘선박인수검증위원회(이하 위원회)’가 심사숙고에 들어갔다. 거제시가 추진 중인 장승포호국평화공원(장승포동 90번지 일원 9만 9000㎡)에 전시할 목적에서다. 우선 배를 ‘사느냐, 마느냐’를 결정해야 하는 갈림길에서 고민하는 모습이다.

‘승리(Victory)’라는 이름이 붙은 이 선박은 태평양 건너 미국에 있다. 레인(Lane) 빅토리, 레드오크(Red Oak) 빅토리, 아메리칸(American) 빅토리호 등 세 척이 인수 후보군에 오른 배들인데 지금은 현지에서 모두 전시관 등으로 쓰인다.

지난해 8월 이후 6개월여 만에 열린 두 번째 회의(2월 14일)에서 위원회는 선박 도입 문제와 관련해 2시간가량의 논의 끝에 조만간 미국을 방문해 직접 배를 본 뒤 여부를 가리는 쪽으로 뜻을 모았다. 성급히 인수를 포기하기보단 시간을 두고 꼼꼼히 살핀 후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단 판단이 서면 그때 다른 대안(모형 선박 제작 등)을 마련하자는 것이다.

중책을 맡은 위원회 처지에선 적절한 선택으로 읽힌다. 문제는 배를 인수하기까지 넘어야 할 산이 한두 개가 아니라는 점이다. 사실상 미국에서 문화재급으로 관리·운영하고 있는 세 척의 빅토리 중 어느 것 하나 쉬운 ‘상대’가 없다는 게 가장 큰 걸림돌이다. 인수 가능성이 희박해 보이는 까닭이다.

위원회가 미국에서 돌아와 배를 도입하기로 하더라도 따져야 할 ‘경우의 수’가 많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배를 가진 미국 쪽 의사다. 우리가 사고 싶다고 ‘러브콜’을 보내도 미국에서 ‘No!’라고 답하는 순간 인수 추진은 물거품이 된다. 살 사람은 있는데 팔 사람이 없으니 아예 ‘거래’가 되지 않는 거다.

정부 부처와 주한미국대사관 등 관계기관의 ‘지원사격’을 기대하기도 어려운 상황이어서 주변 여건 역시 녹록하지 않다. 인수 가격도 변수로 꼽힌다. 거제시는 빅토리호를 들여오는 값으로 20억 원 정도를 예상하고 있는데, 미국이 이보다 많은 금액을 요구할 땐 협상이 더디거나 어려울 수밖에 없는 탓이다.

지금까지의 상황만 놓고 보면 미국에서 배를 사오는 건 매우 힘들어 보인다. 위원회가 고심 끝에 내린 결정(미국 현지 확인 후 선박 인수 여부 가늠)이니만큼 현명한 판단을 기대한다. ‘오리지널(흥남철수작전 때 1만 4000여 명의 피난민을 장승포항까지 실어 나른 메러디스 빅토리호)’이 고철로 사라진 게 무척 아쉬운 대목이다.

이동열 기자  coda23@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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