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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익중생(饒益衆生)의 삶을 살자도안스님 /연등사 주지

- 바른정법 바른인연(13)

신라 원효스님의 제자인 야운(野雲) 스님의 자경문(自警文)에 나오는 글이다.삼악도(三惡道)의 괴로움을 가져오는데는 탐욕으로 지은 업(業)이 첫째인데, 그것은 육바라밀 중에서도 보시행을 잘하면 능히 막을 수 있다고 하셨다. 간탐(?貪)은 선한 길을 막고, 자비로 보시하면 반드시 악한 길을 막을 수 있다고도 하셨다.
만일 가난한 사람이 와서 구걸하거든 넉넉지 못하더라도 아끼지 말라. 올 때도 한 물건 없이 왔고, 갈 때도 빈손으로 간다.

나의 재물에 연연할 것도 없거늘, 다른 이의 재물에 어찌 마음을 둘까 보냐? 살아생전 아무리 많이 장만해도 죽은 다음 가져갈 것은 오직 지은 업(業)뿐이니라.
‘사흘 닦은 마음은 천년의 보배가 되고(三日修心 千載寶) 백년 통안 탐한 재물은 하루 아침에 티끌이 된다(百年貪物 一朝塵).’

잘 먹고 잘 입으려면 재물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재물에 대한 탐욕은 ‘나’의 행복한 앞길을 가로 막아 버린다. 곧, 돈의 맛을 알고 나면 ‘돈’의 노예가 되어 버리고, 탐욕에 사로잡히다 보면, 어느덧 지옥의 문턱에 다가서게 되는 것이다. 돈과 재물에 대한 욕심 때문에 자기를 돌아보지 못하고, 분수를 잃어 갖가지 허물을 갖게 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신문, TV 등을 통해서 매일 수많은 사건들을 접한다. 대부분의 사건들이 돈과 재물 때문에 일어난다. 내 것으로 만들겠다는 탐욕이 불씨가 되어 어린아이를 납치하기도 하고, 자식이 부모를 죽이기까지 한다. 이것이 지옥의 문을 여는 열쇠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이 돈은 도(道)의 반대편에 서 있다. 돌고 도는 돈이기에, 돈에 집착하면 할수록 윤회(輪廻)의 수레바퀴는 더욱 세차게 돌아갈 것이다. 그러나 돌지 않는 도(道), 변하지 않는 도(道), 항상 고요하여 동요되지 않는 도(道)와 합치한다면 윤회의 수레바퀴도 멈출 것이다.

그렇다고 하여 무조건 돈을 적대시해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바로 그 돈 속에 도(道)가 있기 때문이다. 돈은 어느 곳에나 항상 있다. 돈 속에도 도(道)가 있으므로 도(道)로서 돈을 쓰면 돈을 쓰는 자체가 온통 도(道)로 바뀔 수 있는 것이다. 도(道)로서 쓰는 돈, 부처님은 이런 방법으로 돈을 쓰는 것을 보시(布施)라고 하셨다.
수행덕목인 육바라밀 중에서 첫번째에 위치한 것이 바로 보시이다.

첫째는 재시(財施)이다. 물질로서 가난한 사람, 배고픈 사람, 헐벗은 사람에게 베풀어 주는 것을 말한다. 물론 노동을 통하여 도와주는 보시도 이에 해당된다.
둘째는 법시(法施)이다. 정신이 온전해 지도록 진리(眞理)를 베풀어 주는 것을 말한다. 법시는 재물을 보시하는 것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가 재물을 보시할 수 있는 근본정신을 나누어 주는 것이다.

‘탈무드’에 “고기를 주지 말라. 고기를 낚는 방법을 가르쳐 주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직접 고기를 주지 말고, 계속 고기를 먹을 수 있게끔 고기 낚는 방법을 일러주라는 말이다. 즉, 지혜를 가르치라는 말일 것이다.
이와 같이 삶의 지혜를 주어 수동적에서 능동적인 사람이 되게 해주었을 때, 그는 사회의 한 일원으로 자리매김할 것이다.부처님도 법시(法施)를 강조하셨는데, 재물은 언젠가는 사라져 간다는 것을, 영원하지 않는 것을-그러므로 재물을 갖는 방법, 쓰는 방법 등의 지혜가 필요한 것이다.그래서 아함경에 1/4은 가족에게 쓰고, 1/4은 타인에게 보시하고, 2/4은 재생산활동에 쓰라 하셨다.

옛 어른들 말씀에 “개같이 벌어 정승같이 써라”는 말도 일리가 있는 말이다. 돈의 씀씀이에 따라 - 정작 돈을 쓸 때 가서 제대로 쓴다면 - 타인에게 이익이 되게 한다면 - 우리는 요익중생(饒益衆生)하는 것에 한 발짝 다가서는 것이다.

셋째는 무외시(無畏施)이다. 두려움 없이 편안한 마음을 가질 수 있도록 베풀어 준다는 말이다. 세상 사람들이 가장 두려워 하는 것이 죽음이다. 바로 이 죽음마저 없애줄 수 있다면 완전한 무외시가 이뤄진다.
이렇듯, 보시의 공덕은 악(惡)을 막고, 선(善)을 여는 정도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보시로서 모든 구속에서 벗어나는 해탈대도(解脫大道)를 이룰 수 있게 한다. 단 여기에는 자비(慈悲)로서 보시해야 하는 조건이 있다.동체대비(同體大悲). 한 몸의 사랑으로 내가 나에게 주듯이 남에게 베풀어야 한다. 주는 사람, 받는 사람, 주고 받는 물건, 이 셋을 모두 잊어야 한다. 이 셋이 청정함을 불가(佛家)에서는 삼륜청정(三輪淸淨)이라고 한다.

흔히들 “내가 누구에게 무엇을 주었으니, 많은 공덕이 있을거야”라는 자랑 섞인 보시는 자비보시가 아니다. 이러한 보시는 거래 성격이 짙은 것이지 진정한 보시가 아니다.보시는 평등한 근본마음에 바탕을 두어야 한다. 오직 평등한 마음, 하나의 법계(法界)속에 살고 있는 미래의 부처가 될 존재들끼리 기꺼이 나누어 가질 수 있어야 한다. 이렇게 평등심을 유지하여 보시하면 부처님의 평등성지(平等性智)를 얻어 해탈할 수 있다.

우리 모두는 올 때도 빈손, 갈 때도 빈손으로 간다. 그러나 평생 돈과 재물을 모으기에 급급한 사람들 중에는 평생 좋은 일 한 번 못하다가 죽는 순간까지 돈의 노예가 되어 흉한 꼴을 당하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
인생살이 한평생을 아등바등 지내지만 결국 무엇이 남는가? 오직 나의 업(業), 내가 지은 업(業)만이 나와 함께 한다. 재물과 사람에 얽매어 허덕이지 말고, 주어진 환경에 최선을 다하면서 살아야 한다. 주어진 환경, 이 또한 나의 업(業)이므로 이 맺어진 업(業)을 원만하게 풀고, 좋은 인연을 새롭게 만드는 마음으로 살아야 한다.

그리고 힘닿는데까지 남을 도우면서 살고, 수시로 마음자리를 갈고 닦아 영혼을 맑게 가져야 한다. 죽은 다음에 함께 할 것은 바로 ‘업(業)’. 이것 뿐이기 때문이다. 새해에는 바른 정법과 바른 인연으로 타인에게 요익중생의 삶을 살아가도록 하자.

새거제신문  saegeoje9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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