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선거관리위원회가 대선 TV토론회 주제에서 ‘환경’을 제외하자는 얘기가 나왔다는 것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환경문제가 언급되지 않는 현상이 현대 사회에는 사실상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대통령의 자질과 능력을 검증하는 토론회에서 환경 이슈를 제외한다는 발상 자체가 어떻게 가능하지 의문이 들어서였다. 이처럼 대통령 선거가 시간이 지날수록 우리 시대의 가치는 언급되지 않고 뒷전으로 밀리는 느낌이다.

‘안철수 현상’의 근원에는 ‘시민의 정부’에 대한 갈망이 있다

그래도 2012년 대통령 선거는 여러모로 색다른 현상으로 흥미롭다. 보수와 진보를 가리지 않고 기존 정치세력에 대한 개혁과 자성의 목소리가 동시에 터져 나온 점이 그러하다. 야권단일화를 전략으로 뭉치고 있는 진보개혁세력들도 지역을 넘나들며 정치쇄신과 보편적 복지를 앞세워 국민들의 표를 사려 안간힘을 다하는 것이 눈에 띈다. 그리고 붉은 색을 전면에 내세운 새누리당이 경제민주화를 국민들을 위한 선물에 포함시킨 것도 기존 정치권에 대한 불신을 잠재우려는 의도에서였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다양한 정책을 가장 먼저 선보인 후보는 정당의 후보가 아닌 무소속 안철수였다. ‘안철수 현상’이라 불릴 정도로 새로운 정치에 대한 갈망이 지난 수년 사이 우리 사회를 뒤흔드는 힘으로 축적된 탓이다. 이명박 정부가 광우병 소고기 수입을 시작으로 한 공공자산의 민영화와 4대강 공사, 재벌특혜, 친인척 비리 등 정치를 사적인 소유물처럼 갖고 놀자 시민들은 촛불집회를 통해 ‘시민의 정부’를 요구하였다. 전 세계 민주공화국의 헌법에 선명하게 새겨진 저항권이 위력을 발휘한 것이다. 이번 ‘안철수 현상’이 1987년 군사정권을 상대로 대통령 직선제를 받아 낸 민주화의 열기 못지않아 보이는 이유이다.

시민의 다양한 요구는 우리 사회의 다양한 계층에서 다양한 형태로 터져 나오고 있다. 대형마트에 삶의 터전이 휘청거리는 전통시장과 골목길 상인들, 한진중공업, 쌍용자동차, 삼성에서 해고된 노동자들, 해군기지공사로 평화를 잃은 강정마을, 4대강공사로 자연의 흐름이 바뀐 생태계, 이명박 정부 내내 우리 사회 곳곳에는 사회적 안정망 자체가 뜯겨져 나간 기억들로 가득하다. 그리고 지금도 그 목소리는 TV와 신문지면에서 잘 보이지 않아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

이번 대통령 선거가 최근 5년의 정치적 실정을 낳은 이명박 정부와 그의 정치인들에 대한 비판과 심판이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는 데 대선 후보들이 의견을 함께 하는 것도 그만큼 나쁜 기억이 많아서일 것이다. 나쁜 기억들을 거짓 없이 되새겨보고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새로운 정치’로 실현시킬 책임이 새로 선출될 대통령의 몫이 될 것이다.

2012년 대선에서 밝혀야 할 우리 시대의 가치

새로운 정치는 안철수 현상에서 강조되었던 것처럼 ‘소통’이라는 중요한 가치를 핵심으로 하고 있다. 서로 통하지 않는 사람끼리 정치를 논할 수 없기 때문이며, 소통이 없는 정치는 단지 위에서 군림하는 정치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국민토크쇼와 같은 안철수 식의 대화법이 유행한 이유도 소통에 대한 한국인의 갈망에 기인할 것일 수 있다. 60년대 이래 오랜 군사정권 하에서 소통이 억압받았기 때문일 것이며, 그 이전으로는 일제의 식민지 통치하에서 주권마저 박탈된 기억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소통이 자유로운 사회는 인간관계가 정상적이고 수평적인 지위를 가지도록 노력하게 된다. 바로 다양하고 자유롭게 자신의 가치를 말하고 듣는 “민주시민”이 소통의 성과가 된다. 그리고 민주시민은 과거 군사정권 아래에서 말하지 못했던 목소리들을 자유롭게 말하고 시작했다. 그 중 가장 중요한 가치들이 바로 생명, 환경, 평화이다.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냉정시대의 유물인 군사분계선을 가진 한반도에 사는 모든 생명들은 평화를 갈망할 수밖에 없는 운명을 타고 난다 할 수 있다.

그런데 한반도의 현실은 평화를 위해 전쟁을 항상 곁에 두는 정치인들의 편에 섰다. 평화를 잠시 뒷전으로 미룬 자리에는 경제개발과 수출주도형 국가로 성장하는 한국이 있었고, 그 과정에서 우리의 자연과 환경은 관심에서 멀어져 갔다. 간혹 사람들의 건강을 위협하는 큰 사건들이 생길 때마다 잠시 관심을 기울일 뿐이었다.

그러나 생명과 환경은 더 이상 미루어서도 안 되고 더 이상 미룰 수도 없는 가치가 되고 있다. 유엔기후변화협약의 협상타결이 전 세계의 생존전략의 하나로 주목받고 있는 시대에서 한국도 예외는 아니기 때문이다. 기후변화협약은 단순히 탄소배출을 줄이자는 슬로건이 아니라, 탄소배출과 관련된 모든 생산 활동과 서비스와 관련되어 있다. 이는 경제민주화 수준으로 우리 사회가 대처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님은 명백하다. 경제민주화를 넘어설 정도로 생명, 환경, 지속가능한 개발에 대한 공약을 국민과 소통해야 가능한 목표들이 대부분이다. 미국과 같은 군사강국을 비롯해 현대국가들은 군수산업마저 국민총생산(GDP)에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군축은 탄소배출감축과 동일어가 되기도 한다.

며칠 남지 않은 선거기간 동안 후보들의 입에서 나오는 말에 귀를 기울여 보자. 과연 누가 ‘생명, 환경, 소통’의 가치를 이야기하는지, 누가 그 반대의 가치를 위해 국민을 위협하는지 판단은 소중한 한표에 달려 있다. 자신의 미래를 위해 투표하는 자만이 미래를 바꿀 힘을 가지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새거제신문  saegeoje99@hanmail.net

<저작권자 © 새거제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