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 고구려, 신라 삼국통일의 기틀을 마련한 김춘추의 생애와 김춘추를 언급 할 때 빼 놓을 수없는 김유신을 다룬 KBS 역사 드라마 ‘대망의 꿈’을 즐겨 보면서 ‘삼국유사’에 기록된 금입택(金入宅)이 떠올라 이글을 쓴다.

여기서 금이 쇠를 뜻하는지, 황금을 뜻하는 것인지 정확히 알 수 없다. 그러나 이 금입택이 전성기 신라의 수도 경주에서 가장 부유한 집을 가리키는 것임에는 틀림이 없고, 따라서 황금으로 해석하는 것이 옳을 듯하다. 당시 금입택이라고 불린 집의 재산은 거의 재벌수준이어서 웬만한 절하나 정도는 한 집안에서 쉽게 세울 수 있었다.
일연 스님이 지은 ‘삼국유사’는 경주에 이런 금입택이 무려 서른다섯 채나 있었다고 전하면서, 친절하게도 그 집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거명하고 있다. 그중에는 김유신의 본가인 재매정택(財買井宅)도 포함되어 있다.

통일신라 전성기의 경주는 요즘 기준으로도 부유한 도시였다. 삼국유사의 기록을 보면 “제49대 헌강왕 때는 성안에 초가집이 하나도 없고, 집의 처마와 담이 이웃집과 서로 연해 있었다. 또 노랫소리와 피리 부는 소리가 길거리에 가득 차서 밤낮으로 끊이지 않았다”고 씌어 있다. 당시 경주의 가구 수 는 17만8천936호. 호당 인구가 얼마나 되었는지는 정확히 알수 없지만 상당한 규모의 도시였음을 알수 있다.

그런데 이 큰 도시에 초가집이 하나도 없었다니 조선의 수도인 한양보다 훨씬 화려 했을 것이다. 금입택은 이런 부유함의 절정이었다. 신라 834년 진골 귀족들에 대해 사치생활 금지령이 내려진 적이 있는데 우리는 여기서 당시 금입택들의 부유함을 짐작할 수 있다. 이미 806년에 금과 은으로 옹기를 만드는 것을 금지 했는데, 834년에는 진골 귀족도 옹기나 거기(車騎, 수레나 말 장신구), 옥사(屋舍,집)에 금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억제하는 사치금지령을 내렸던 것이다. 이로 미루어 보면 대부호들은 실제로 집을 지을 때 금을 사용하여 장식할 정도로 부유했음을 알 수 있다.

금입택의 택주들이 이처럼 부유했던 것은 무엇 때문일까? 그것은 그들이 진골귀족이었다는 데서 이유를 찾을 수 있다. 김유신의 가문만 하더라도 금관가야의 왕족출신으로 신라의 진골귀족에 편입되었다. 진골은 원래 성골보다 한 단계 낮은 계급으로 왕족의 방계라고도 할 수 있다. 왕의 자식으로 왕이 되지 못한 자손들은 7대까지는 성골로, 8대부터는 한 단계 강등되어 진골로 분류되었다.
태종무열왕 김춘추도 그런 연유로 최초의 진골 출신 왕이 되었다. 그러나 이들 진골의 권력은 막대했다. 장군이나 장관직을 독점했고 국가로부터 막대한 토지를 하사받았다. 통일 전쟁 후에는 전공에 따라 막대한 보상과 전리품을 받았고 사병을 양성하기도 했다.

신라말기에 왕권다툼이 심화되면서 왕권이 약화되어 사병까지 양성한 진골귀족의 위세는 왕권으로도 통제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금입택의 택주들인 진골귀족이 사원에 막대한 부를 투자 한 것도 사실은 사원을 경영함으로써 자신들의 엄청난 재산을 합리적으로 빼돌리기 위한 것이었다. 금입택은 이렇게 막강한 권력과 부를 누리던 진골 귀족의 상징 이었다. 금입택은 크기도 화려할 뿐 아니라 경주에서도 가장 경치 좋은 곳에 위치하고 있었다. 삼국유사의 기록에 우사절유택(又四節遊宅)이라 하여, 이들 금입택들 중에서도 사계절에 가장 놀기 좋은 곳을 꼽고 있다. 기록에 따르면 “봄에는 동야택(凍野宅), 여름에는 곡량택谷良宅, 가을에는 구지택仇知宅, 겨울에는 가이택加伊宅에서 놀았다”고 한다. 누가? 당연히 진골귀족들끼리였으리라.

경제가 어렵다 어떻다 하지만 알만한 부유한 동네에 가면 현대판 금입택들이 눈에 띈다. 한 TV 시사프로그램의 추적에 의하면 국산이라고는 사람뿐이고 그 사람마저 외국인 학교나 해외 유학을 통해 외국물을 먹고 자라며 철저히 상류계급의식을 갖는다고 한다. 다만 그들이 부유하긴 하지만 진골 귀족들만큼 나라의 운명을 좌지우지하지는 못한다는 점이 그나마 다행이다. 막대한 부와 호사스런 생활을 했던 진골 귀족들은 신라 말기로 가면 갈수록 더 큰 권력을 갖게 되지만 그럴수록 신라는 멸망의 길로 내달았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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