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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차법(開遮法)하담스님 /무이사 주지

가을 달이 유난스레 밝아보였던 지난 화요일 저녁에 내가 사는 절 마당에서 작년에 이어 ‘두 번째 무이사 작은 음악회’를 열었었다. 조그마한 사찰의 가난한 살림살이 때문에 외부에는 알리지 않고, 인연 있는 분들과 조용하게 가을밤의 즐거움을 나누었었다. 꾸미는 것보다는 자연스러움을 좋아하는지라 있는 그대로 준비했던 것들이 어딘지 모르게 부족하고 허술하여 어설퍼 보이기도 한 말 그대로 작은 음악회였었다. 무대는 주변에 있는 헌 자재들을 활용하여 얼렁뚱땅 내 손으로 만들었으며, 음식은 동참하신 불자님들이 각자 한 가지씩 준비하여 가져왔었는데 꽤나 근사한 잔칫상이 되었었다.

평소에 알고 지내왔던 출연자들이 무보수로 공연을 해주었고, 함께 참석했던 사람들 중에서 즉석으로 시조창을 하거나 노래를 부르면서 많은 박수를 받기도 하였다. 늘 조용하기만 하던 산사(山寺)에서 열린 음악회를 축하하기 위하여 하늘에서는 열여섯날의 크고 둥근 달이 훤하게 비춰주었고, 마당 한 가운데 피워놓은 모닥불을 에워싸고 음악에 맞춰 춤을 추던 사람들의 예쁜 몸짓에서 멋진 영화의 한 장면처럼 행복한 감동을 느끼게 하였었다.

즐겁고 흥겨웠던 시간이 끝나갈 즈음에 참석했던 누군가가 ‘스님! 내년에는 작은 음악회가 아닌 행복한 음악회로 이름을 바꿔야 되겠네요.’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편안하고 자유스러움에 치중하다보니 약간의 무질서한 부분과 행사 목적에서 벗어난 모습도 보였었다.

불교의 생활화를 주창하면서 사찰에서 행하고 있는 각종 문화행사들이 비록 포교를 위한 목적이라고 하지만, 때로는 세속의 흐름에 편승하여 본질에서 벗어난 경향도 있다. 우리들은 어떠한 일을 할 때, 그것의 목적과 방편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바른 판단을 통하여 적확(適確)한 운용을 하여야만 한다. 목적과 방편에 대한 명확한 인식이 없을 때에는 혼란과 착각이 생기면서 깨달음에 장애물이 되어 자신을 망치게 만든다.

수행의 목적과 방편에 관하여서는 문자적이고 논리적으로 해석하기보다는 수행의 본질적인 의미와 내용적인 방법으로 접근하고 이해해야만 한다. 어느 노스님이 일러주셨던 ‘형식이 내용을 지배하고, 내용이 형식을 지배한다.’라는 말에서, 형식과 내용이 아주 다른 것으로서 반대의 개념으로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형식과 내용은 매우 밀접한 관련성을 가지면서 동등한 개념으로 이해할 수도 있겠다.

형식을 잘 갖춤으로써 내용이 훌륭해지고, 내용이 충실하면 형식도 저절로 갖추게 되는 것이다. 불가에서는 수행을 잘하게 만드는 방편으로 계율(戒律)을 으뜸으로 가르친다. 계율은 원칙이고 법칙이면서 또한 질서이며 수행상의 규범으로서 불교의 생명과 같다. 재가 5계, 10중 대계, 48경계, 250계, 348계 등 각자의 근기에 맞춰 정해진 계율의 근본정신은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고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공적인 가치를 극대화시키는 대자비의 자세를 갖추는데 있다. 계율은 지킴으로써 올바르게 수행할 수 있는 참된 가치를 구현한다.

계율을 지키는데 있어서도 그 어떠한 계(戒)를 우선시하거나 차별화해서도 아니된다.
지범개차법(持犯開遮法)은 ‘계(戒)는 마땅히 지켜야하나, 경우에 따라서는 계를 범함으로서 지키는 것이 되고 지키는 것이 범하는 것이 될 수 있다.’라고 해석한다. 이를 줄여서 개차법(開遮法)이라고도 하며, 실천적인 불교사상의 묘미라고 할 수 있다. ‘개(開)’는 ‘열다’이고 ‘차(遮)’는 ‘닫다’이며, ‘개차’는 ‘혹은 열고, 혹은 닫는다.’는 뜻이다. 문(계)을 열고(지키고) 닫는(범하는) 도리(법)를 말한다. 우주와 같은 집에서 벽(壁)은 꽉 막혀서 불통이지만, 문(門)은 선택하여 소통할 수 있는 자유를 의미한다.

자비와 지혜로서 자유자재한 개차법을 적용해야만 하는데, 간혹 사람들은 자신의 이익과 편리함을 추구하면서 자신의 과오를 변명하거나 합리화를 시키기 위하여 개차법을 악용하는 경우가 있다. 목적을 위해서 수단이 무자비하거나 몰상식한 것은 어떠한 경우에도 정당화되거나 용납이 되어서는 아니된다. 문을 열 때에는 열 줄을 알고, 닫을 때에는 닫을 줄을 알아야 한다. 그런데 문을 열어야 할 때에 닫거나, 닫아야 할 때에 연다면 그것은 어리석은 개차반이 되고 만다. 지나간 음악회에서 혹시 부족하고 벗어났던 것에 대하여 반성을 해본다.
조금은 부족하더라도 행복할 수 있다면, 다소 부족해도 괜찮다. 부족한 그대로가 부처인 것을.


새거제신문  saegeoje9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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