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원 김기호 시조시인기념사업회가 결성된 지 1년 만에 무원선생을 기리는 ‘시조백일장’과 ‘부산, 경남, 울산 시조시인대회’가 개최되었다.

행사장인 하청면에 소재한 경남산업고등학교를 향하는 길에는 가을비가 폭우로, 보슬비로, 가랑비로 그 강도를 달리하면서 깊어가는 가을의 정취를 한껏 연출하고 있었다. 학교 정문을 들어서는 순간 잘 정돈된 넓은 교정과 아름드리 교목들이 가을비를 머금으며 오랜 역사와 전통으로 고풍미를 뿜고 있었다.
행사 참석자들을 일일이 맞이하는 유재일 교장선생님은 한창 성장기 학생들이 몸과 마음을 마음껏 단련할 수 있는 여건을 고루 갖춘, 경남에서도 알아주는 학교라고 말씀하신다. 새삼 학교를 설립하시고 교장으로 재임하신 후 아무 조건도 없이 국가에 헌납하신 무원선생의 ‘교육사랑’의 고결함이 느껴지는 순간이다.

행사가 시작되는 학교 대강당에는 백일장에 참석하는 학생들과 시조시인들 학교 졸업생들이 속속 입장하였다. 교정에서 할 예정이던 백일장은 가을비로 인해 강당에서 하기로 하였다. 넓고 깊게 울려 퍼지는 징소리와 함께 즉석에서 발표된 시제를 가지고 백일장 참가자들은 시상을 원고지 위에 엮어나가기 시작하였다.

시조 백일장이 진행되는 동안 도서관에서는 무원 선생의 시세계를 조명해 보는 ‘시조시인과 함께하는 세미나’가 개최되었다. 세미나장 입구에는 무원선생의 고결한 페스탈로치 정신을 기리는 ‘무원서숙’이라는 현판이 가을비를 촉촉이 머금고 참가자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학생들이 모두 하교한 교정을 내다보며 시심에 잠기거나 묵향 그윽한 붓으로 한 수 한 수 시조를 엮어나갔을 무원선생의 모습이 ‘무원서숙’의 소담한 현판위에 그려지면서 묵향이 퍼져 나오는 듯하다.
부산시조시인협회 전일희 회장의 사회로 진행된 세미나는 거제교육장을 역임한 김복근 문학박사의 ‘문질빈빈의 무원시조’와 문학박사인 백승수 시조시인의 ‘무원 김기호 시조에 나타난 중심 공간적 기호체계’의 발표가 있었다.

김복근 박사는 무원 선생에 대한 거제사람들의 존경의 염(念)은 예사롭지 않다고 했다. 그 연유가 학교를 설립하시고 국가에 헌납했기 때문일까? 아니면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청산곡이 당선되는 등 교육가와 문학가의 길을 걸었기 때문일까? 그건 결코 아니라고 하였다. 선생은 하늘과 자연의 중요성과 무한함을 인정하고 이를 수용하며 지역 사람들과 함께 바르고 반듯하게 살아가는 본연지성(本然之性)에 충실하셨으며, 혹시라도 살아가면서 맞이하였을 불의의 유혹이라는 기질지성(氣質之性)의 유혹을 문학으로 치유하는 문질빈빈(文質彬彬)의 삶을 사신 분이라고 하였다.

일제강점기와 6.25전쟁기 해방기 후기 산업사회의 격동하는 시대를 살면서 교육가와 문학가의 길을 고결하게 걸어온 무원 선생. 그의 사유체계와 미적 양식으로서 독자성 고고하면서 투박하고 청초하면서 그윽한 영혼의 암시, 자연혼융의 사상성은 현대시조의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되기에 본연지성에 충실한 그의 삶과 시조세계는 보다 깊이 있게 천작되고 조명되어야 한다고 하였다.
문학박사 백승수 시조시인은 무원시조의 특성은 거제라는 지역적 공간을 중심공간으로 기호체계를 형성한 그만의 작품세계가 펼쳐져 있다고 하였다.

현대철학과 현시성을 중시하는 현대시조로서의 가치와 철저한 문학적 자의식으로 거제라는 한 지역의 대표시인으로서 지역문화 활성화에 선구자적 역할을 하였음은 물론 이 나라 현대시조문학의 발전에 남다르게 이바지한 공로가 지대함을 엿볼 수 있다고 하였다.
토론자로 나선 석성환 문학박사는 무원 시조의 기조가 자연주의에 깊이 닿아 있음은 ‘고향’과 ‘농촌’과 ‘농촌부흥’이라는 선생의 희생정신에 깊이 연관되어 있다고 본다면서 이러한 관점은 ‘교육가의 본연지성’과는 또 다른 시적사고를 형성하는 차원에서 언급되어져야 한다고 했다

박영식 울산시조시인협회장은 무원의 문학과 인생을 방대하게 조명한 백승수 교수님의 발제는 하마터면 묻힐 뻔 했던 보석 하나를 발견한 기쁨이라면서 앞으로 무원 선생의 작품세계와 존재의 의미가 전국적으로 조명 받을 수 있는 접근성을 해결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하였다.

민병관 부산시조시인협회 사무국장은 무원 시조가 거제라는 지역적 공간을 중심으로 작품세계가 펼쳐졌다지만 작품은 ‘거제’ ‘해금강’ 등 두세 편만 해당된다면서 무원의 시조에서 거제라는 공간을 직접 제재화시킨 작품이 어느 정도인지 아울러 무원의 시조가 갖는 문학사적 위치에 대해서도 많은 연구가 있어야 한다고 하였다.
거제를 대표하는 시조시인으로 토론자인 이성보 시인은 무원선생이 설립한 학교가 파란을 겪을 때마다 시조로 달래 온 사실을 사마천의 사기(史記)에 비견된다면서 그런 어려운 고비를 인내한 교육자이기에 선생의 정신이 더 빛을 발한다고 하였다. 현재 거제시 인구 중 유입된 시민들이 70%가 넘으면서 무원선생을 잘 모르는 시민도 상당하다면서 우선 거제시민 모두에게 무원선생의 진면목을 알려야 하는 과제가 남아있다고 하였다.

‘제1회 무원시조 백일장’은 시조시인들의 엄정한 심사로 당선작 중에서 장원 작품을 낭독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 백일장은 현란한 언어의 유희가 난무하는 현대시 속에 점점 잊혀져가는 우리나라 전통 시조문학의 맥을 이어가는 시조부흥의 현장으로 두고두고 기억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시조시인과 함께하는 세미나’는 부산 울산 경남의 유명 시조시인들이 대거 참석함으로서 무원선생의 예술혼이 이제는 경남권을 넘어 전국적으로 퍼져나가는 사업으로 꾸준히 그 맥을 이어갈 예정이다.
늦가을 가을비처럼 흠뻑 거제를 물들인 무원의 시조문학 행사는 무원 선생의 사후 처음으로 시도된 학술 세미나와 백일장으로 그 의미는 무척 크다고 생각한다.

무원 김기호 기념사업회에서는 선생님의 문학사적 가치를 재조명하는 작업과 함께 무원기념관 건립을 위한 초석으로 무원의 작품세계와 존재의 의미를 거제시민들에게 알리고 나아가 전국적으로 조명 받을 수 있는 접근성을 해결하는 다양한 사업이 우선 선결되어야 할 과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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