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도 훨씬 넘은 이야기이다.
수학능력 시험을 두 달 정도 앞둔 어느 날, 아들을 데리고 있던 여동생에게서 전화가 왔다. 마지막 모의고사에서 평균 성적이 20점이나 떨어졌으니 이 일을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는 전화 속에는 시험 성적 하략이 마치 조카를 데리고 있던 이모의 잘못이기라도 하듯 울먹이고 있었다. 솔직히 엄마로서 이 사실이 날벼락이었다. 이제 수능시험이 바로 코앞인데 마지막 모의고사 성적이 평균 20점이나 내려갔다는 사실에 놀라지 않은 부모가 어디 있겠는가?

하지만 시간이 지나자 아들 입장이 우선되었다. 고등학교 3학년이면 이제 어른과 마찬가지의 생각을 할 나이이다. 그런 의식을 가진 아들이 수능을 목적에 둔 마지막 성적이 그만큼 하락했다면 자신감 상실과, 부모에 대한 죄책감에 아들이 감내해야 할 상처가 얼마나 클까? 위로를 하던지, 야단을 치든지 간에 아들에게 전화를 하고 싶었지만 오히려 모른 체 하는 것이 나을 것 같아 이모와 약속을 하고 전혀 내색하지 않았다. 그리고 며칠 남지 않은 이 기간 동안 성적이 떨어진 것이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상실감에서 빠져나와 편안하게 자신감을 찾으면서 수능 시험을 맞을까 생각한 끝에 아들이 다니는 학교의 교장선생님께 편지를 썼다.

아들이 엄마를 떠나 이모 밑에서 학교에 다니다 보니 학교에서 돌아오면 우유 한 잔 따뜻이 주지 못한 엄마의 미안함과, 시험 성적 하략으로 마음고생을 하고 있을 아들 이야기를 샅샅이 적었다. 그리고 학교 일에 바쁘시겠지만 아들을 불러서 교장선생님께서 등 한 번 두드려주며 ‘ 넌 잘 할 수 있을 것이다’라는’는 한 마디를 해 주고 아들에게 자신감을 심어주길 바라는 청탁의 편지를 썼다. 물론 이 편지 사연도 아들에겐 비밀로 해 달라는 부탁도 잊지 않았다.

두 달 후 아들은 다시 자신의 위치를 찾게 되어 무사히 원하는 대학을 가게 되었고, 졸업식을 마치고 교장실로 찾아가 지금까지 거제 촌놈을 잘 길러주셔서 고맙다는 인사를 드리고 아들에게도 인사를 드리게 했다. 아들을 데리고 교장실로 들어가자 교장선생님께서도 내가 누군지를 눈치 챘지만 전혀 내색하지 않으셨고, 나 역시도 교장선생님을 모른 채 하며t 편지 이야기는 전혀 하지 않았다.

그리고 시골 아이가 이 학교에서 잘 성장하게 된 것은 담임선생님의 고마움도 있지만 교장선생님의 지도가 큰 힘이 되었다는 인사를 드렸다. 교장실에서 나오자 그때서야 생각난다는 듯 아들이 나에게 편지의 내용이 실천된 이야기를 했다. 수능 두어 달을 앞둔 어느 날 교장실로 오라는 방송을 듣고 고등학교 3년 동안 한 번도 들어가 본 적이 없는 교장실로 찾아 갔단다. 그 때 교장선생님께서 너가 거제도에서 온 아무개냐고 물은 후, ‘너는 잘 할 수 있을 거야’라는 이야기와 함께 자기의 등을 두드려주더란다.

교장선생님의 배려에 너무나 감격하여 자신도 몰래 남아있는 기간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에 대한 돈독한 마음의 각오가 되어 두어 달을 참 보람 있게 지냈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지금 행각해 봐도 왜 그때, 교장선생님께서 자기를 불러서 등을 두드려 주었는지 지금도 알 수 없다는 이야기를 했다.

대학수학능력시험은 1994학년도부터 대학입시제도에 따라 시행되고 있는 통합 교과서적 소재를 바탕으로 사고력을 측정하는 문제 위주로 출제되는데, 수험생의 선택권을 넓히는 한편, 출제 과목 수는 줄여 입시부담을 덜어주는 데 역점을 두고 있다는 시험제도이다. 그러나 입시부담을 덜어주는 것이 아니라, 모든 고등학교 학생들이 이 시험에 얽매어 3년의 학교생활이 행복하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더구나 고3 수험생을 둔 학부모들의 생활은 온통 자녀들의 시험을 위한 일에 인생을 바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지금쯤이면 마지막 점수에 목숨을 건 학부모들이 어쩌면 색다른 돌파구가 있지 않나 싶어 눈치를 살피고 생활에 무리한 무게를 짊어지는 것을 알면서도 다른 사람들의 귀띔에 솔깃해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돌파구가 어디 있단 말인가?

올해 고3인 제자가 전화를 하여 음식점에서 함께 저녁을 먹었다. 고3 녀석이 초등학교 6학년 선생님을 만나러 올 시간이 어디 있느냐고 호통을 치자 금방 눈물이 글썽글썽해졌다. 초등학교 6학년 때는 어떤 분야에서나 앞서가며 친구들을 앞서던 녀석이 고등학생이 되고부터 생각만큼 성적이 오르지 않아 걱정이 많다는 이야기를 어머니께로부터 들은 적이 있었다. 고3이 되어 이제 곧 수능을 쳐야하는데 성적이 오르지 않자 어머니께서 족집게 과외라며 두 달 동안 핵심을 지도하는 선생님께 과외를 받으라는 종용을 한다며 속상함을 토했다.

자기의 성적은 자기가 잘 알며 어떤 과외를 지금 받는다 해도 자기의 성적은 더 올라가지 않는다는 것을 자신이 더 잘 알고 있는데 어머니의 성화에 속상하여 나에게 전화를 했다고 전했다. 더욱 중요한 것은 그 족집게 과외비가 생각지도 못할 만큼 액수가 높아 자신의 뒷바라지에 그런 출혈을 해서는 안 되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어머니가 고집을 꺾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하며 어머니를 한 번 만나달라는 부탁을 했다.
그리고 자신은 어머니가 원하는 대학을 갈 수준은 안 되지만 자기가 원하는 꿈이 있으며 그 일을 하며 평생 행복하게 살아갈 자신이 있다는 이야기도 잊지 않았다.

나는 잘 자라준 그 제자가 참 대견스러웠다. 저녁을 먹은 후 자동차로 학교로 데려다 준 후 집으로 돌아오며 많은 생각을 해 봤다. 우리에게 대학은 어떤 의미일까? 10년 전 아들의 성적이 그렇게 떨어졌을 때, 호통을 치며 닦달을 했다면 좀 더 나은 대학으로 갈 수 있었을까? 그리고 지금 보다 더 나은 직장을 가질 수 있었을까?

대학수학능력 시험이 11월8일이다.
고3어머님의 마음이 가장 무거울 때이다. 하지만 어머니의 바램만큼 채워주지 않는다 해도 지금은 그 아이를 몰아세워서도 안 되고, 부담을 주어서도 안 된다. 지금은 자녀를 믿고 편안한 맘으로 마지막까지 달려갈 수 있도록 지켜주는 것이 최선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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