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년 하안거를 나면서 계절에 따라 변하는 산 빛을 바라보며 내 모습을 관조해 본다. 새벽 예불시간에 들리는 새소리가 질책의 소리로 들리기도 한다. 아마 나 자신의 수행살림이 넉넉하지 못해서 그럴 것이다. 안으로 쌓여짐은 없고 밖으로 자꾸만 드러난 것만을 느끼게 하는 이런 모습에 부끄러움만이 더해간다.

수행인의 가장 아름다운 모습은 청빈임을 내세우면서도 하나보다는 두개를 바라고 있다. 날마다 나에게 전해져 오는 저 세상 사람들의 시은(施恩)에 비해 나는 얼마만큼 값있게, 내 모습에 부끄러움 없이 살고 있는지... 불보살님 전에 앉으며 죄스러울 때가 더 많아진다.어느 큰 스님의 말씀에 “아무리 좋은 집에서 정원과 연못을 화려하게 꾸며 놓고 갖가지 모양의 수석을 늘어놓고 산다고 해도 울울이 덮여 있는 송림을 정원 삼는 승(僧)보다 못하고, 솟구쳐 내리는 폭포와 기암절벽과 벗하는 승(僧)과 어찌 비교할 수 있겠는가?”하고 말이다.

백년간 세속의 영화가 이러한 승(僧)의 하루에 비할 바가 못된다는 말을 들으면서 한가롭고 넉넉한 생각이 드는 반면, 오히려 그런 경계를 즐기면서 하루하루를 헛되이 보내고 있음은 아닌지 뒤돌아보게 된다.그러한 경계에 빠져서 우리가 해야할 수행(修行)과 중생제도는 하지 못한 채 그 깊은 시은(施恩)을 날마다 녹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자꾸만 마음이 무거워진다.

말법시대가 접어들면 중생의 근기(根機)가 약해져서 수행하려는 마음보다 삿된 믿음 쪽으로 흐른다는 부처님의 말씀을 깊이 인지하면서도 때로는 아니라고 부정하기도 하지만, 나 자신의 믿음이 조금씩 흔들림을 느낄 때는 아직도 근기가 약해서라는 어쩔 수 없는 변명을 할 때도 있다.

오래전 일이다. 지리산을 등지고 태백산 은사스님 절에 있을 때의 일이다. 출가승으로서 얼마 되지 않아 누군가로부터 이런 질문을 받았었다. “출가를 해서 세속을 등졌다는 것은 세상과의 두문불출을 말하는 것인데, 세상에 나와서 사는 스님들이 많은 것은 왜 그렇습니까?”그 순간 멍해졌다. 갑자기 무어라고 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냥 웃고 말았던 기억이 날 때마다 아무런 말도 해주지 못했던 내가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부끄러워진다.

“출가란 이런 것이다”라고... 확실한 답을 말한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것인지도 모르겠다.
난 요즘 초심(初心)으로 되돌아가 조사 어록을 많이 본다. 그 중에서도 서산스님의 ‘선가귀감’을 읽을 때마다 이 부분이 눈에 항상 밟힌다.
“출가란, 편안함을 구함이 아니며, 부처님의 혜명(慧命)을 이어서 중생을 제도하기 위함이라...” 부모와 형제, 그리고 사랑한 모든 이들에게 등을 돌린 채 이 길에 들어선 ‘승(僧)’으로서는 나 하나만의 안위를 추구하려는 수행은 그 참뜻에서 더욱 멀어지는 것일게다. 잠시 그들에게 등을 보였을지라도 그들을 포함한 모든 중생들에게 진리의 모습으로 다가가 되돌려주기 위함이 아니었을까?

그러나 시간이 흘러갈수록 그런 초발심(初發心)의 색은 점차 바래가고 타성에 조금씩 젖어가는 나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설사 그러한 생각이 퇴색되지 않을지라도 밖으로 눈을 돌리지 못하는 옹졸함을 가져 내 공부만을 챙기는 지극한 개인주의가 되어가는 느낌을 받곤 한다.

수행의 완성은 성불(成佛)을 통하여 중생제도를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자기만의 수행(修行)과 혼자만의 성불(成佛)이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중생을 바라보지 않는 성불이란 결국 무엇을 위하자는 것일는지... 이 사바세계는 중생과 중생이 더불어 살아가는 세계이다. 행(行)이 따르지 않는 자비(慈悲), 입으로 진리(眞理)를 얘기하며 실천이 따르지 않는 진리가 지금 이 시대의 중생들에게 얼마만큼 받아들여질 수 있을 것인지...

혹 이렇게 말을 할 수도 있다. 자신의 수행이 되어지지 않는 상태에서 타인을 제도할 수 있느냐고? 그것도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나의 성불이 곧 중생의 성불이 될 수도 있다.그럼 우리의 현실은 어떠한가? 정법(正法)보다는 사법(邪法)을 가까이 하고, 바른 믿음보다는 삿된 믿음을 더 가까이 하면서 살고 있다. 이러한 때 오직 우리의 성불만을 위하면서 고통스러워 하는 이들을 돌보지 않는다면, 저들은 과연 누가 어루만져 주고 이끌어 줄 것인가?

사람들은 보고, 듣고, 그 환경에 따라 변하는 것이다. 우리의 존재와 우리가 전하는 가르침이 이웃과 더 나아가 모든 인류에 미치는 영향력은 엄청난 것이다.
부처님의 깨달음은 고귀한 것이었으나, 그 고귀함은 형이상적인 문제에만 몰두하지 않았고, 지극히 평범한 인간현실의 실상을 올바르게 보고 시대의 근원적 원인을 찾아 고통을 소멸케 해야 한다는 것이 부처님의 가르침이 아닌가?

중생이 겪는 고통, 그것을 뼈저리게 느껴 보지도 않고 어찌 자비(慈悲)를 말할 수 있으며, 동체대비(同體大悲)를 운운할 수가 있단 말인가? 우리는 단 한마디라도 바른 정법(正法)을 일러주어서 중생들로 하여금 궁극적으로 그 고통으로부터 자유롭게 벗어날 수 있는 것을 제시해 줄 힘을 길러 그것을 펼쳐야 한다.
백문(百聞)이 불여일견(不如一見)이라 했다. 백 천번 말하는 진리보다 한번 행(行)하는 진리가 더 참다운 것이고 중생의 아픔을 함께 할 수 있는 존재가 그들에겐 더 필요한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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