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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로시마의 불편한 진실김한주 /법무법인 '희망' 대표 변호사

필자는 2003년 서울에서 변호사로 개업하면서 바로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이하 민변)에 가입했다. 신입회원으로서 나름 열심히 활동했다. 약자와 소수자의 인권을 법률적인 분야에서 연구하고 변론을 통해 실천한다는 것이 민변의 큰 목적이다. 이러한 목적과 그 간의 선후배 변호사들의 눈물겨운(!) 활동에도 불구하고 혹자들은 민변을 소위 ‘좌파변호사단체(?)’로 보기도 한다. 좌파의 개념도 잘 모르는 필자로서는 억울하고 한편으론 우습다.

필자에게는 대체로 보수적이며 별로 좋지 않은 이미지로만 각인된(대부분의 국민들도 마찬가지리라.) 일본에도 우리 민변과 비슷한 취지의 ‘자유변호사회’(명칭이 정확한지는 모르겠지만 필자가 기억하는 이름이며, 일본 변호사단체 중 진보적인 단체로 알려져 있다.)라는 변호사단체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도 그 무렵이다. 그 해 봄 ‘일본 자유변호사회’의 초청으로 처음으로 히로시마에 가게 되었다. 민변과는 봄가을로 서로 교류하며 우의를 다져왔다는 게 당시 선배들의 설명이었다.

초봄이라 아직 벚꽃이 꽃망울이 맺힌 정도였지만 벚꽃에 대한 자랑과 자부심으로 열변을 토하던 노(老)변호사, 초라해 보일 정도로 검소한 젊은 변호사들의 모습은 지금도 희미하게나마 기억에 남아있다. 그러나, 10년 가까운 시간이 흐른 지금까지도 절대 잊지 못하는 것은 히로시마의 모습과 그 곳에 대한 일본인들의 자세다.

히로시마! 2차대전 막바지에 원자폭탄이 투하되었고, 일본패전의 계기가 된 곳이다. 전쟁의 상흔들이 도시 곳곳에 남아있었다. 심지어는 폭탄투하 당시의 모습 그대로 보존해 두고 있는 것도 많았다. 그런데 보여 지는 것은 전쟁의 처참함이었지만, 그 설명과 홍보의 내용은 자신들이 피해자임을 주장하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히로시마는 어느새 평화를 상징하는 도시가 되어 있었고, 그것을 관광자원으로 활용하고 있었다. 적어도 필자의 눈에는 침략자로서의 참회와 일본제국주의가 저지른 만행에 대한 자성(自省)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원폭투하로 무고한 시민들이 희생된 것은 슬픈 일이지만 원폭을 맞을 짓을 안했어야지...”
저녁 선술집 술자리에서 내뱉은 필자의 다소 무식한(?) 발언에 우리 일행은 물론이고 우리말에 능한 몇몇 일본변호사들도 잠시 침묵했다. 침묵의 의미는 각자마다 달라 서리라.

2차대전과 식민지배에 대한 일본의 태도에 대한 국제적인 비난이 어제오늘의 이야기도 아니며 그야말로 침이 마르도록 사과와 배상을 촉구했지만, 돌아오는 것은 이웃국가와의 끝없는 영토분쟁, 사과하는 시늉을 하고서는 돌아서면 바로 이어지는 야스쿠니신사 참배...매년 광복절 전후에 반복되는 외교적 풍경(!)이다.

최근 대통령의 전격적인 독도방문(외교적 득실은 깊이 생각해 봐야할 문제다.)과 그에 대한 일본의 억지대응, 긴 세월동안 이어지고 있는 위안부할머니들의 진정한 사과와 배상요구에 대한 무시, 소위 ‘말뚝테러’(물론 일부 일본 우익의 행위일 수도 있다.)같은 돌발적 행위와 망언들은 어쩌면 표면적인 모습일 수 있다.

히로시마를 평화와 전쟁피해의 상징으로 만들어 관광상품으로 이용하는 일본인들의 치밀함 앞에 우리는 감정과 분노로만 대응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혹여 축구 한일전의 승리와 같은 일회적인 이벤트, 스포츠스타나 한류스타들의 일본에서의 활약에만 흥분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것이 일본을 대하는 우리의 자화상이 아닌가하여 마음이 불편하다.

새거제신문  saegeoje@par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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