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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영웅 ‘각시탈’ 거제에도 있었다광복 67주년, 거제의 일제침탈기를 돌아보다②

<광복 67주년이다. 올해는 광복절을 앞두고 다양한 이슈들이 쏟아졌다. 런던올림픽에선 일본과 맞붙은 남자축구와 여자배구에서 한 번씩 웃고 울었다. ‘독도는 우리땅’ 세레모니를 펼친 박종우 선수가 올림픽 정신에 위배된다는 이유로 동메달 시상에 참가하지 못했고, 이로 인해 전 국민적 반일감정이 격해진 가운데 한국축구협회가 일본에 사과하는 뉘앙스의 메일을 보내 질타를 받았다.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10일 독도를 방문한 후 일왕에게 국권침탈에 대한 사과를 요구해 국민들과 해외로부터 다양한 반응을 이끌어 냈다. 일제강점기의 민족영웅을 그려낸 KBS 드라마 ‘각시탈’은 종반부로 치달으며 20%가까운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어 국민들의 반일감정을 대변해 주고 있는 듯하다. 국권침탈의 치욕과 설움이 오늘날까지 생생히 전해져 오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지난주에 이어>
두 번째로 이어진 독립만세
만세운동은 한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음력 4월 6일 주종찬과 천주고 교도들이 중심이 돼 오전 11시경 옥포중앙에 있는 망덕봉에서 주민 200여명이 모여 대한독립만세를 제창하면서 10리 길인 아주장터를 향해 행진했다. 이 광경을 본 주민들도 길가에 나와 같이 만세를 불렀고, 아주시장에 나온 사람들도 함께 만세를 외쳤다.

일본헌병은 출동하지 못하고 지켜만 보다가 군중이 해산한 뒤 이튿날 저마다 생업에 종사하는 틈을 타 마을을 수색해 주종찬 외 10여명의 주동자들을 잡아갔다.

두 차례에 걸친 독립만세 운동으로 주종찬과 윤택근이 법정에 서게 됐는데 두 사람은 끝까지 지조를 굽히지 않고 초지일관 자주독립을 주장했다. 주종찬은 대구복심법원에 ‘다시 독립운동을 하겠느냐’는 판사의 심문에 손가락을 깨물어 일심(日心)이란 글을 써 판사에게 던져 재판이 중단되기도 했다. 그는 3년 선고를 받았고 출옥 후 복역 중에 당한 고문과 옥고로 인해 1927년 타계했다. 이주근은 서대문형무소에서, 윤택근, 이인수는 대구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문화침략에 허덕이는 거제도민들
기미년 독립운동 후 일본정부는 헌병경찰제를 사법경찰제로 바꾸고, 관리와 교원의 착검제도를 폐지하는 등 완화정책을 펴나가는 동시에 문화정책을 앞세워 모든 제도를 바꿔나갔다. 일본문화를 받아들이다 보니 소득은 없고 소비가 늘어 농토를 헐값에 파는 등 생활고는 깊어졌다.

천곡에 살던 이주목·옥상목과 아주의 윤택근·윤사인, 아양의 이공수·이정·이주근, 장승포의 지익강·김응수 등이 자기 향리에 강습회를 창설해 민중계몽에 나섰다. 힘과 재정이 필요했던 이들은 1921년 이운면 아양리에 부지 80평에 건평 40평의 현대식 건물인 청년회관을 건립하고 도내 분산돼 있던 모든 민중운동 세력을 규합해 ‘이청교육부’란 이름아래 사립학교를 건립했다.

또 이운청년회를 비롯해 기성, 연초, 둔덕, 사등, 동부, 하청, 지세포, 능포, 장승포, 유계 등 각 면·리에 청년회가 세워졌다. 1924년 2월엔 연합체인 거제청년연맹이 결성됐다.

8월 16일 광복 맞은 거제
1945년 8월 15일, 지금으로부터 67년 전, 일본이 태평양 전쟁에서 대패하고 항복을 선언함으로써 35년 만에 빼앗긴 나라를 되찾았다.

거제도는 이튿날인 16일에 해방소식이 들려왔다. 당시 대부분의 라디오는 일본인들이 가지고 있었고, 방송 상태도 좋지 못했다. 섬이었기에 구두로 전해줄 사람도 없었다. 일본사람들이 하나둘 떠날 준비 하는 것이 이상해 알아보니 일본이 전쟁에서 졌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18일에는 장승포초등학교에서 거제도민대회를 열어 일본인이 있던 거제경찰서를 비롯해 각 기관을 무난히 인수할 수 있었다. 그리고 떠나지 못한 일본인과 친일파에 대한 보복이 시작됐다. 유혈사태가 벌어졌고 일본인의 목에 새끼줄을 매어 끌고 다니기도 했다고 한다. 35년의 오욕과 설움, 배신감에 대한 분 풀이었다.

해방은 됐으나 정부가 수립되지 않던 때라 질서와 치안이 불안정했다. 주민들이 조직한 치안대가 일본의 재산을 관리했는데 이들은 공산주의에 흡수됐다. 인민위원회 일색으로 섬이 물들고 있을때 중국의 임시정부를 지지하는 민주진영의 정당이 결성돼 거제에도 민주 세력이 싹을 틔었고 인공파와 대립을 이뤘다.

다음은 거제에서 활동한 항일운동가들
이인수(이운면 아주리), 윤택근(가명 윤일/ 이운면 아주리), 이주근(이운면), 이주목(가명 이적/ 연초면), 주종찬(이운면 옥포리), 신대식(거제면 명진리), 옥영준(장승포읍 능포리), 권오진(연초면 다공리), 이공수(이운면 아양리), 이정(아양리), 윤사인(아주리), 이주훈(아양리), 반영기(연초면 천곡리), 옥상목(천곡리), 정규혁(천곡리), 양명(사등면), 신용기(하청면 창동리), 지한명(이운면)

《본 기사내용은 ‘거제시지’와 ‘거제이야기 100선(전갑생 저)’을 참고 및 발췌하였음을 알립니다.》

조행성 기자  saegeoje@par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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