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평생을 거제 토박이로 살며 지난 1986년부터 20여 가구 40여명의 주민이 모여 사는 마을을 위해 궂은일 도맡으며 26년째 이장으로 봉직해온 분이 있다.

거제지역 362명의 이장님 중 최장기간 이장을 맡고 있는 허경식(70)씨다.

최장수 이장의 비결이 뭐냐는 질문에 허 이장은 “이장은 잘해야 본전이라는 말이 있는데 그래도 뭐 마을 사람들이 자꾸 시키니깐 아직까지 하고 있는 거죠”라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안다. 마을과 주민을 위한 사심 없는 봉사정신이 아니었다면, 그리고 태어나서 지금까지 한 자리에만 머물며 쌓아온 70평생의 애향심이 아니었다면 26년의 이장생활을 이어 오기란 불가능 했을 것이다.

이장의 공식적인 지위는 마을의 대표자, 지역민방위대장, 읍·면의 하부조직으로서 행정보조자 등이다.

하지만 실생활에서 이장들은 이에 그치지 않고 더욱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마을사람들을 하나로 모으며 경조사를 주도해 치르고 공동 청소도 이끌며 사소한 갈등은 중간 입장에서 잘 마무리될 수 있도록 중재하고 어려운 이웃 돌봄이 활동, 각종 민원 대행 등 그들의 활동들을 보면 열거하기도 힘들 정도다.

허 이장도 자신을 ‘마을의 심부름꾼’이라 소개 할 정도로 이장은 주민들의 진정한 대변인으로 묵묵히 일을 하는 사람이다.

지난 25일 찾은 황덕마을 어귀에는 대곡-황덕 간 연결도로(황덕도 연도교)’ 공사가 한창이었다. 지금도 도선이 왕래하는 황덕도지만 연도교가 설치되는 순간부터 많은 변화의 바람이 불어 올 것이다.

26년 동안 외지라는 이유로 제대로 된 복지혜택 조차 받지 못했던 황덕도 사람들의 설움과 애환을 허 이장은 함께해왔다.

허 이장이 처음 이장을 하게 된 계기는 건강이었다. 오랜 어부 생활로 건강이 악화돼 생업인 어부 일을 할 수 없게 되자 마을 주민들이 이장을 권유 했던 것이다.

지금이나 26년 전이나 황덕도는 20여 가구, 40여명의 주민으로 유지되고 있는 마을이다. 본섬인 황덕도 주민 19가구 30여명과 육지마을 4세대 10여명이 살고 있는 작은 어촌마을이장이 뭐 할게 있냐는 핀잔을 받기도 하지만 오히려 작은 마을이라 그리고 오지 마을의 이장이라 할 일은 더 많았다.

허 이장이 처음 이장을 맡은 1986년 이전부터 황덕마을 주민들은 오랜 숙원이 있었다. 첫 번째가 도선이고 두 번째가 식수공급 이었다. 황덕도는 섬주민이 많기 때문에 섬과 육지를 오가는 도선운영이 꼭 필요했고, 섬이라는 지리적특수성 때문에 식수공급이 원활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지금의 동력선은 ‘거제군’ 시절인 1988년에 마련했고 그 이전까지만 해도 무동력선을 마을주민들이 윤번제로 돌아가며 도선을 운항해야 했다. 무동력선 도선 시절에는 1년에 보리 300되를 마을 사람들이 십시일반 모아 사공인건비로 사용 했는데 여인들도 도선 사공 윤번에 동참해야 했다.

동력선을 운영하면서도 여러 어려움을 겪다 3년 전부터는 시에서 선장 수당보조를 지원해 정해진 시간 없이 일출과 일몰 사이 승객이 있으면 수시 운항하고 있고 그마저도 오는 2016년 연도교가 완공되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된다.

상수도 시설은 더욱 열악했다. 섬이라는 특성상 집집마다 우물을 파야 했고 그마저도 겨울 가뭄철에는 사용 할 수 없었다.

상수도가 연결되기 전에는 집집마다 우물이 있었는데도 식수가 부족해 칠천도에 지하수를 파고 바다 밑으로 관로를 매립해 식수를 사용 했는데 그마저도 농사철인 5월에서 8월까지는 사용 할 수 없었다. 칠천도에서 농사를 짓는 주민들의 반발 때문이다.

허 이장은 “지금 와서야 하는 이야기지만 마을주민들이 물을 사용 할 수 있게 하기 위해 5월에서 8월이면 어쩔 수 없이 새벽녘이면 몰래 지하수를 틀어 섬에 있는 물탱크를 채우곤 했다”며 지난날을 회상했다.

지난해부터 황덕마을은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2016년 완공될 예정인 대곡-황덕 간 연결도로(황덕도 연도교) 공사가 진행 중이기 때문이다. 황덕마을 사람들은 관광객을 유치할 방법을 모색 중이지만 이장님은 섬의 난개발을 우려도 있어 관광지 개발보다는 낚시마을을 운영을 더 원하고 있다.

허경식 이장님은 “이장하면서 힘든 일도 기쁜 일도 많았지만 그래도 내가 한 일에 자부심을 가졌고 또 행복했다”고 말한다.

이웃집 숟가락이 몇 개인지 훤히 알 만큼 친한 이웃 간의 정이 그리워지는 요즘 26년 이장님의 삶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많은 점을 시사하고 있다.

최대윤 기자  crow1129@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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