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안스님
/연등사 주지

출가 수행자에 대해 원효스님은 발심수행장(發心修行章)에서 “마음에 애착을 떠나보낸 이를 사문(沙門)이라 하고, 세속에 연연해하지 않는 것을 출가라 한다”고 했다.
출가수행을 뜻하는 사문을 달리 근식(勤息)이라고도 한다. 사문은 부지런히 선정(禪定)과 지혜를 닦아 모든 번뇌를 쉬는 이라는 뜻이다. 이 사문에는 네가지가 있다.

첫째, 승도사문(勝道沙門)이다. 도를 이겼다는 뜻으로 도를 닦아서 성취한 이를 말한다.
둘째, 시도사문(示導沙門), 본래는 도를 다 이루었지만 중생을 교화하기 위한 방편으로 도를 닦는 모습을 보여주는 이를 말한다.
셋째, 명도사문(命道沙門)이다. 부처님의 말씀을 자신의 생명처럼 생각하고 그대로 받아서 실천, 수행하는 이를 말한다.

넷째, 오도사문(汚道沙門)이다. 도를 더럽히는 사문. 즉, 사문의 도리를 어기며 함부로 살아가는 이를 말한다.
요즈음 정법인 경전대로 하지 않고 사주, 철학, 삼재, 부적 등 사법을 하는 그들이 여기에 속한다.

원효스님은 또 ‘세속에 연연하지 않는 것’을 출가라 했다. ‘연연한다’라는 것은 그냥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애착(愛着)을 가지고 그리워하는 것이다. 항상 그 생각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는 것이다. ‘갑돌이와 갑순이’라는 노래 속에 “갑돌이도 화가 나서 장가를 갔더래요. 그러나 감돌이 마음은 항상 갑순이 뿐이더래요.”라는 가사가 있다. 이것이 연연해하는 것이다. 장가가고 시집 갔으면 서로 생각을 하지 않든지 아니면 처음부터 죽기살기로 달려들던지 했어야 했다. 다른 곳으로 장가간 뒤에 갑순이 생각을 하는 것은 그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래서 마음으로 애틋하게 생각하는 것을 연연이라 하는 것이다.

출가 사문은 진정한 출가를 해야한다. 흔히들 출가라 하면 집을 떠나 머리를 깎고 승려가 되는 것을 연상하게 된다. 하지만 진정한 출가는 헛된 생각이나 부질 없는 말과 행동을 떠나 부처님의 말씀인 진리를 생각하고 진리에 계합하는 말과 행동을 하는 것을 가리킨다. 단순히 집만 벗어나는 출가, 머리를 깎고 승복만 걸치는 출가는 참다운 출가가 될 수 없다. 외형적으로의 출가가 아니라 불.조사(佛.祖師)의 바른 가르침을 통해 마음속까지 완전히 출가를 해야할 것이다.

고려시대 야운(野雲)스님은 자경문(自警文)에서 말씀하시기를, “마음에 애착이 없어야 사문(沙門)이라 하고, 새속을 그리워하지 않아야 출가(出家)”라고 했다. 이미 애착을 끊고 인간 세상에 대한 미련을 툭 털어버렸거늘, 어찌 세속사람들과 어울려서 놀겠는가. 세속을 그리워 하고 못 잊어하면 도철(??)이라 하나니, 도철에게는 본래부터 도심(道心)이 없기 때문이라 했다.

출가승과 속인(俗人)은 삶 자체가 다를 뿐만 아니라, 승(僧)과 속(俗)은 글자부터 다르다. 속은 사람(人)이 골짜기(谷)에 살고 있음을 취한 글자이다. 골짜기에 꼭 끼어살기 때문에 하늘 높은 줄만 알지 땅 넓은 줄을 모른다.
우리 아버지, 어머니, 내 자식, 우리 가정, 우리나라 등 우리만 생각할 줄 알지 다른 사람, 남의 집, 다른 나라는 돌아볼 줄 모르는 것이 속(俗)의 속성이다.

그러나 출가승의 본분은 다르다. 세상의 도리를 일찍 깨우친 사람이 출가승이다. 진리의 입장에서 보면, ‘나’ 또는 ‘우리’의 울타리를 치고 사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은 없다. 그 울타리는 치면 칠수록 고통을 가져오는 근본이 될 뿐이다. 이 도리를 일찍 깨달아서 애욕과 애착의 울타리를 벗어버리고 출가한 존재가 승려이다.
부처님의 가르침인 진리를 위해 살아가겠다는 신념으로 모든 것을 버리고 출가한 승려가 진리를 체득하기도 전에 세속의 일을 도모한다면 그처럼 큰 이율배반은 없을 것이다.

더욱이 00원장이나 00의원 등등의 자리는 내려놓아야 한다. 이러한 명예나 감투를 쓰는 것은 승려된 이의 할 짓이 아니다. 중의 벼슬은 닭벼슬보다 못하다는 말이 있지 않는가? ‘모난 돌이 정 맞는다’고 오래지 않아 분쟁의 한 가운데 서게 된다.
또 수도승의 본분을 버리고 산 속에 들어가면 무엇을 하는가? 대중들과 함께 도를 닦고 있으면 절로 빛이 나게 마련인데, 자기를 빛내어 보겠다고 자기만을 고집하며 산으로, 산으로 전전하면 중생제도는 언제 할 것인가?

말하자면, 승려는 승려노릇만 해야지, 세속에 있는 속인(俗人) 노릇을 해서는 안된다. 승려가 세속사람처럼 하려고 하면 승려의 근본인 수행은 흐지부지 되고 만다.
사랑하는 부모, 형제와 세상을 훌훌 털어버렸거늘 속인들이 추구하는 사람 노릇을 하고자 해서야 되겠는가? 이와 같이 애초부터 도에 관심이 없는 승려를 도철(??)이라 한다. 도철은 염소의 몸뚱이에 사람의 얼굴, 호랑이 이빨에 사람의 손톱을 가지고 있으며, 눈은 겨드랑이에 붙었고, 음성은 어린아이의 소리와 같다고 한다. 그러다가 마침내 배가 터져 죽는다고 한다.

이렇듯 승려의 본분에 관심이 없고, 속인 노릇에만 관심이 많은 승려를 도철이라 부른다. 애당초 도에는 관심이 없고, 먹을 욕심만 가득 차있기 때문이다.
혹, 도철의 마음을 갖고, 먹물 옷을 걸치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더 큰 악업을 쌓기 전에 사람 노릇하는 세속으로 돌아감이 나을 것이다. 시주의 은혜를 입고 부처님을 팔아서 짓는 업(業)의 과보는 너무도 무섭기 때문이다. 그리고 처음에는 발심이 제대로 되었는데, 차츰 마음이 풀어져 속인의 노릇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이가 있다면, 언제든지 불.보살님 전에 나아가 발심, 참회하고 새로 시작하면 된다.

그리하여 생사(生死)를 해탈(解脫)하고 말겠다믄 무상발심(無上發心)만 제대로 하면 누구든지 참다운 성직자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출가사문, 우리 모두는 처음 출가했을 때의 발심(發心)으로 돌아가 자기 스스로 단속하고 또 단속하자. 공연히 세속사람을 깊이 사귀어 사랑과 미움에 휩쓸리지 말며, 명리를 추구하고 탐욕을 부리면 그 끝이 어떠한지 헤아려 보자. 쓸데없이 세속사람과 사귀다보면 재물과 색이 따라붙게 되고, 재색(財色)이 붙게 되면, 참된 성직자의 생활을 10만8천리 밖으로 달아나게 된다.

통도사 극락암 상소굴에 머무셨던 경봉(鏡峰)스님은 수행자들에게 항상 이르시기를, “바보가 되거라. 사람 노릇하자면 일이 많다. 바보가 되는데서 참사람이 나온다”라고 하셨다.
부디 세속을 돌아보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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