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다. 꽃 피는 사월이다. 정원엔 봄꽃 향연이 벌어지고 있다. 서두른 매화는 벌써 임무를 다하고 떠났고, 홍매와 자두가 꽃봉오리를 펴고 있다. 아직 잎도 올리지 못한 상태에서 꽃부터 피우겠다는 그들의 가상한 용기에 나는 어떤 시선을 줘야 할지 망설이고 있다. 성급함에 질책을 보내야 하는지, 그들에게 잠재되어 있는 능력을 가상히 여겨야 하는 건지 아직 판단이 서지 않는다. 또 묵은 줄기에 실한 꽃을 피운 꽃을 바라보면서 듬직하다 해야 할지, 현실에 안주해 있는 그들의 정체(停滯)를 탓해야 하는 것인지 쉽게 결론을 내리기가 어렵다. 여하튼 그들의 향연은 설렘이 있어서 좋다.

정원으로 나간다. 작년에 소담한 꽃을 올렸던 할미꽃은 이번에는 더 많은 촉수의 꽃대를 올렸다. 처음 구해다가 심었을 때는 하나의 꽃대만 겨우 올렸는데 이제는 족히 열다섯은 된다. 잎도 없이 올라온 꽃대에는 솜털이 부드럽고 보기만 해도 따뜻함이 절로 느껴진다. 아직 남아 있는 꽃샘추위는 이 털이면 능히 견딜 수 있을 것이다.

작년에 씨앗을 받아 싹을 내어 키운 할미꽃은 앙증맞게 처음으로 꽃대를 하나 올렸다. 그런데 변화가 있다. 이것은 묵은 것과는 다르게 잎도 함께 올리고 있다. 푸름 속에 같이 핀 할미꽃이 새로운 느낌을 전달한다. 숨이 차서 꽃대 올리기에 정신이 없는 묵은 것과는 다르게 잎과 함께 봄을 맞음으로 해서 새로운 분위기를 연출한다.

또 마당가에 있는 설유화는 꽃망울을 터뜨리기 시작했다. 자그마한 꽃잎이 만개도 못하고 봄바람에 날리면 어쩌나 마음이 불안하다. 저 작은 것들이 모여 하나의 덩어리를 이루어 하얀 카펫을 정원 끝에다 깔아 놓으면 봄의 여신들은 감탄을 연발하며 그들의 사랑을 키울 것이 뻔하다. 한 주일이 지나 설유화가 지기 시작하면 사람들은 아쉬움에 싸여 가슴을 조이겠지만, 나는 내년을 위해 전지(剪枝)를 시작해야 한다. 두 해 전에 줄기를 베어냈으니 이번에는 그루터기가 남지 않게 아예 밑둥치를 도려내야 계속 좋은 꽃을 볼 수 있으리라.

정치의 계절, 사월이 왔다. 우리는 한 주일 후면 새로운 일꾼을 뽑는 선택의 날을 맞이하게 된다. 한 표를 행사해야 하는 유권자인 우리들, 역시 많은 생각에 선뜻 마음의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그동안 피부로 느껴온 정치에 대한 불신이 너무 크기에 판단 역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정치의 계절만 되면 봄꽃 올라오듯 다급하게 고개를 내미는 정치 지망생들. 국민의 대다수가 못 믿을 부류이고, 신뢰성이 가지 않는 집단으로 맨 먼저 꼽는데도 많은 선량들이 그 속에 들어가지 못하여 안달이다. 더구나 한국 현대 정치사에서 요즈음처럼 기존 정치와 정치인들에게 불만의 소리가 큰 적도 없었다. 그럼에도 그들은 그 속에 들어가려고 줄을 서서 목을 매고 있다.

기존의 정치인들이 무더기로 싸잡아 욕을 먹는 애석한 경우도 있겠으나, 이번처럼 국민 앞에 부끄러운 적은 없었을 것이다. 그들에 대한 불신의 이유는 여러 가지다. 그리고 그 책임을 대개 정치인들에게 전가하고 있다. 물론 가장 막중한 책임은 그들 자신인 것만은 분명하다. 하지만 그 책임에서 유권자들도 자유롭지 못하다. 그들을 옳게 뽑지 못한 책임도 있지만, 아예 선거에도 참여하지 않고 뒤에서 불만만 늘어놓는 유권자들도 상당수 있다는 데 더 심각성이 있다.

이곳 거제에서는 기존의 정치인에 대한 불만은 하지 않아도 된다. 다행히 이곳에서는 모두 새내기이기에 그런 염려에서는 아주 자유롭다. 그러나 이런 때일수록 유권자의 책임은 막중하다. 새로운 인물을 내세울 때에 정확하고 올바른 판단이 서지 않으면 다시 과거의 늪에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새내기들의 능력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의 선택은 더 어렵다. 공증되지 않은 인물을 어떻게 판단할 것인가. 이것이 이번 선거에서 유권자들에게 주어진 과제이다. 새내기를 판단할 때에 가장 유념할 사항은 거제의 미래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고 있느냐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지역의 특성은 물론 올바른 민심도 파악하지 못한 채 상대 후보나 비방하면서 눈앞의 표만을 의식하는 후보는 신뢰성이 없다. 그런 데에 정열을 쏟기보다는 거제의 미래를 제시하고, 시민들의 발전 원동력을 한곳으로 모아 이끌고 갈 인물을 선택해야 한다.

인물의 됨됨이와 정책의 신뢰성도 꼼꼼히 챙겨야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지역의 발전을 위해 남다른 식견이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국회의원이 목표가 아니라 행복도시 거제가 목표인 사람을 뽑아야 한다.

이 봄에는 다른 때와 달리 새로 돋아나는 새싹을 유념해서 바라보고 싶다. 묵은 둥치를 잘라냈으니 다시 나오는 새싹 중에서 기를 것을 잘 선택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이 실하게 자라 묵은 것을 도려낸 아쉬움을 느끼지 않게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유권자 모두의 슬기로운 지혜와 참여가 그 어느 때보다도 요구된다 하겠다.

새거제신문  saegeoje@par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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