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어느 불자님이 동창회에 참석하였던 이야기를 하는데, 듣다가는 혼자서 쓴웃음을 지었다. 그 불자님이 어쩌다가 동창회에 참석하였는데,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친구들이 많았었다는 것이다. 학창시절을 같이 보낸 동창생들은 시간이 웬만큼 흘러도 기억하여 반갑게 만날 수가 있을 것이다. 그런데, 얼굴도 모르는 동창생들은 늙어서 못 알아보는 것이 아니라 대부분은 성형수술을 하여서 못 알아본다는 것이다.

또한, 이름도 모르는 친구들은 졸업할 즈음에 전학을 왔던 새로운 친구들이 아니라 개명(改名)하여 이름을 바꾸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예쁜 모습으로 살고 싶어서 성형수술을 하거나 이름을 바꾼다는 것이 나쁘게만 볼 것은 없지만, 왠지 가면무도회를 연상하게 만드는 뭔가 어색하고 허망한 느낌을 주는 것도 사실이다. 순수했던 추억과 다정한 그리움을 소중히 기대하면서 동창회에 참석했던 그 불자님에게는 동창생들이 진솔한 모습보다는 위선적이고 가식적인 모습으로 보였을 수도 있다.

또한 참석했던 또 다른 친구들도 순수했던 학창시절이 그리웠거나 친구가 소중하다고 생각해서 참석하였다기 보다는 서로가 서로에게 필요한 그 무엇을 위해서 참석하였구나 라는 느낌을 받았다는 것이다.
요즈음 향우회도 동창회와 마찬가지로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고향(故鄕)을 소중하게 추억하면서 사랑하는 향인(鄕人)들의 모임이라기보다는 필요한 목적에 의하여 생긴 계(契)모임처럼 변해가고 있다.

예전에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한 고을에서 태어나 자라면서 살다가 그곳에서 생을 마치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신이 태어났던 고향을 아주 특별한 의미로 받아들이면서 살아왔다. 고향이라는 지역의 사회적인 환경(지리, 기후, 역사, 교육 등)에 일정하게 영향을 받으면서 자라다보면, 그 사람들에게는 그에 따라서 성향(性向)이 생겨나거나 삶의 지표(指標)가 형성되기도 한다.

고향은 우리에게 삶의 시작을 내주면서 마지막 돌아갈 곳으로도 인식하게 만든다. 고향은 우리들에게 ‘순수함’과 ‘소중함’ 그리고 ‘그리움’을 우리의 행복한 삶을 위해서 추구해야 될 최고의 덕목(德目)으로 가르치기도 하며, ‘평안함’을 전해주는 감성적인 느낌으로 다가온다. 계산된 이익을 추구하는 대상의 의미가 아닌 고향은 우리들의 애향심(愛鄕心)을 일깨우면서 일정한 사회적 책임의식과 도리를 갖게 만들기도 한다. 그러면서, 우리들에게 바른 사회 참여를 통한 자아완성의 길도 알게 만든다. 불가(佛家)에서는 수행자가 도(道)를 깨우쳐 견성(見性)을 하게 되면, ‘본래자리로 돌아갔다’라는 표현을 쓰기도 한다.

본래자리로 돌아가게 되면 일체의 번뇌와 고통을 여의게 되어, 깨우침의 열매와 같은 상락아정(常樂我淨)의 상태가 된다. 열반사덕(涅槃四德)인 상락아정은 불교인뿐만 아니라 모든 인류가 추구하는 삶의 최고의 목적이 된다. ‘본래자리’는 곧 ‘마음자리’를 말하는 것이며, 본성(本性) 또는 불성(佛性) 등으로 표현할 수 있다. ‘마음자리’는 마음의 고향과 같이 말할 수 있으며, 우리 삶의 근원지(根源地)이자 귀착점(歸着點)인 것이다. 또한, 부처님께서는 우리들에게 ‘심즉불(心卽佛)’- ‘마음이 곧 부처’라고 가르치셨다.

마음이 나온 자리가 부처의 자리가 되는 것이다. 만질 수도 없고, 볼 수도 없으며, 어떻게 규정하거나 표현할 수도 없는 마음의 고향을 찾는 것이 깨달음을 이룰 수 있는 길이 되며 부처가 되는 길이다. 부처가 된다는 것은 완전성을 회복하여 완전함을 이룬다는 것이다. 끊임없이 갈라지고 분열되는 현실세계의 모든 문제들을 하나로 화합하게 하는 것이 완전함을 이룰 수 있는 길이며, 마음의 고향을 찾는 것이다. 인간의 도리를 깨닫고 인간답게 사는 것이 마음의 고향을 찾아 가는 것이다.

‘본향(本鄕)을 떠나 떠도는 사람은 보금자리를 떠나 떠도는 새와 같으니라’라는 성경말씀에서 보면, 본향이란 단순히 육신이 태어난 지역적인 고향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고향을 뜻하는 것으로 느껴진다. 삶의 시작이요 끝이며, 우주의 알파에서 오메가와 같은 마음의 고향을 잃고 사는 사람은 진리의 보금자리에서 벗어나서 허망하게 됨을 가르치고 있다.

현대인들은 급속하게 변하는 물질문명 속에서 불안정한 생활환경과 혼란스러운 가치기준을 가지면서, 고향에 대한 의미와 느낌을 빛바랜 그림처럼 희미하게 느끼거나 무관심하게 대한다. 어쩌면 고향을 잃어버렸거나 아예 고향이 없는 것처럼 살아간다. 산부인과병원의 수술실이나 조산원이 자신의 고향쯤으로 생각하면서 기억하고 싶지 않은지도 모르겠다. 간혹 어떤 사람들은 ‘태어난 곳보다 살아가는 곳이 고향이다’라고 말을 하기도 하는데, 이것은 자조적이면서 임의적인 해석방법으로 여겨진다. 태어난 고향만을 강조하면 사람들을 편협한 지역이기주의자로 만들어가기 쉽다.

‘고향 까마귀’라는 말은 여느 까마귀라도 고향 까마귀가 더욱 반갑게 느껴진다는 것이다. ‘까마귀’보다는 ‘고향’이 주는 의미를 보다 대단하게 부여한 것 같다. 소중한 마음의 고향을 찾아야만 자신의 본성과 정체성을 깨닫게 되고, 보다 훌륭하고 아름다운 삶을 살 수 있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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