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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립던 고향은 아니더라강돈묵 /거제대 교수

재독작가 배정숙씨의 ‘고향을 잃어버린 사람들’을 보면, 두 가지를 생각하게 한다. 사십 년 전 간호사와 광부로 파독되어 고국으로 돌아오지 못하는 신세가 된 그들. 이제나저제나 고국으로 돌아갈 꿈에 젖어서 산다. 고국에서는 ‘독일마을’을 조성해준다 하여 기쁨으로 삶의 터전을 구했으나, 막상 구입한 땅에 찾아와 보니 도저히 집을 지을 수 없는 형편없는 임야이거나, 허가가 나지 않는 땅이라는 것이다.

‘독일마을’은 남해에 조성된 이후로 당진, 경주, 양평, 고성, 춘천 등지에서 시도되었으나 이루지 못하였고, 결국 재독 한국인들에게 상처만을 안겨주었다는 것이다. 군에서 나왔네, 시에서 나왔네, 토지주가 직접 나왔네, 하며 현지에 와서 교민을 우롱하더라는 그의 글을 읽으면서 우리가 이리도 못난 민족이었나 하고 되돌아보는 기회가 되었다.

이 경우는 우리 거제시와는 무관한 일이지만, 다음 이야기는 우리도 깊이 새겨봄 직한 이야기다. 사십여 년 동안 가슴에 묻고 살아온 고향땅. 마을소식 전해주던 공동우물, 아카시아나무, 탱자나무 울타리, 코스모스 핀 장독대, 썰매 타던 언덕배기, 명절날 윷놀이하던 이장님 댁 앞마당……. 하지만 모두 사라져버리고 거인 같이 우뚝 서 있는 아파트. 여기에 절망한 작가는 어쩔 수 없이 목청을 돋우어 외친다.

단 한 모퉁이만이라도 남겨두어 그리움으로 아팠던 가슴안고 고향을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그리도 그리워하던 옛 고향땅의 흔적이라도 보여줄 수 있었다면 좋았을 것을…….

고향에 찾아와도 그립던 고향은 아니더라고 눈물짓는 배정숙 작가의 슬픈 모습이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이는 고향을 찾는 사람들에 대한 배려로 그칠 문제는 아니다. 우리의 뿌리가 무엇인지 알아야 긴 생명력을 얻을 수 있다는 진리를 가슴에 새겨두고자 한다. 우리의 뿌리가 무엇이고, 그 혼이 배인 민족정신이 무엇인지 알아야 영원한 생명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눈앞의 발전만을 추구하다 보면 삶의 이유조차 상실하게 되는 경우를 초래할 수 있다.

우리는 삶의 흔적을 남기는 데에 얼마나 노력했던가. 거제에는 조상의 삶 흔적이 얼마나 남아 있는가. 개발도 좋지만, 어느 한 구석에는 우리의 삶의 모습을 간직해 두는 배려가 있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오래 된 골목길, 쉰내 나는 먹자골목, 어촌의 선술집, 옛집, 어구, 농기구……. 어느 하나 신경 써서 보존하지 않고 있다. 이제는 여유로운 마음을 추슬러 옛 것을 중히 여기는 우리의 마음가짐이 절실히 요구되는 때다.

새로운 것은 수시로 나타나고, 그 찬란한 출현 앞에 새로움의 의미는 끝없이 무너져 내릴 것이다. 하지만 옛것은 날이 갈수록 그 수가 줄고 마침내 없어지고 만다. 그래서 남아 있는 것은 무한의 가치를 가지게 된다. 우리의 혼이 배인 옛것을 보존하는 것은 현명하다. 그것은 관광자원이 되기도 하지만, 민족혼을 지키는 일이다.
요즈음 거제도에도 벽화가 제법 그려지고 있다. 대부분 거제팔경을 그려 넣는다. 우리의 그림보다 더 정확하고 변하지 않을 것은 자연 절경이다. 앞으로 수천 년이 지나도 거제팔경은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을 것이다. 굳이 이것을 벽화에 담을 일이 있을까. 사라져가는 문화를 그림으로 남기는 것이 더 바람직하지 않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벽화의 소재는 풍경은 아닌 성 싶다. 굳이 벽화를 그리려면 풍속화를 그리길 권하고 싶다. 풍속화에 해학이 곁들여지면 훨씬 더 멋스럽다. 이것은 지나가는 길손의 발걸음을 잡는데 충분한 효과가 있다. 우리의 조상들이 살았던 멋스러운 삶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너그러운 심성을 키우는 것도 좋은 일이다.

금산군 진악산 보덕사의 해우소(解憂所) 앞에는 ‘多不有時’라는 조그마한 현판이 있다. 이것은 많은 사람들의 발길을 잡는 것으로 회자되고 있다. ‘W.C'를 한자(漢字)로 적은 해학이 많은 사람들에게 보덕사를 기억하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우리 거제에서도 거리의 벽화를 제작하면서 해학이 곁들인 풍속화를 그린다면 사람들의 가슴에 오래 남는 추억꺼리를 제공할 것이고, 시민들의 심성에 신선한 바람을 일으키는 계기가 될 것이다.

이 아침, 옛 조상이 남긴 문화를 보존하고, 그 정신을 기리는 마음가짐이 문득 그립다. 조상의 얼이 담긴 문화가 전승되어 민족의 정신적 지주가 되기를 소망해 본다. 옛것의 가치를 올바로 인식하고, 조상의 혼이 삶에 흠뻑 배어 있는 민족. 고향에 찾아오니 정말 그립던 고향이더라는 뿌듯함을 느끼는 실향민. 외국에 나가 살든, 타향에 거주하든 우리의 가슴에 남아 있는 그립던 고향의 가치를 다시금 새길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새거제신문  saegeoje@par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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