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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춘을 맞으며서용태

입춘이다. 입춘은 기다림 끝에 얻은 선물 같은 것. 봄은 남쪽 바다를 건너 살며시 육지에 내려앉는다. 오늘을 기다려 상륙 채비를 마친 것이다. 지인이 구조라 언덕배기의 매화꽃을 카메라에 담아 메일로 보내왔다. 봄은 양지바른 언덕배기에 성큼 다가온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입춘대길 이다. 사진속의 매화나무는 수많은 꽃망울을 잉태하고 있다. 모진 풍상 이겨낸 당찬 꽃이다. 인고의 기다림 끝에 잉태한 봄소식에 가슴이 설렌다. 그동안 몸도 마음도 추위 앞에서 움츠려 들었다. 땅속에 몸을 숨긴 온갖 식물과 미물들도 죽은 듯 움직임이 없다. 비로소 남쪽 양지의 매화가 봉화를 올리니 아지랑이를 타고 봄은 그렇게 번져 가리니.

참으로 의미 깊은 말을 책에서 얻었다. ‘찬바람을 맞고 서있는 나목(裸木)은 추위를 견디는 것이 아니라 봄을 기다리는 것’이라고. 기다린다는 의미는 무턱대고 세월을 보내는 것이 아니다. 거기에는 빈틈없는 준비와 고통이 따르기 마련이다. 나는 오늘 무엇을 준비하며 기다려야하나. 정년 이후를 설계하고 준비해야할 사람이다. 그러나 무엇 하나 뚜렷이 손에 잡히는 게 없다. 아무런 준비가 되어 있지 않으니 불안을 느끼게 된다. 기우인지는 모르지만 이일로 여러 날을 고민한 적이 있다. 먼저 퇴직한 선배들의 후일담이 자꾸만 귓가에서 맴돌기 때문이다.

퇴직 이후에는 모든 게 석 달이라고 했다. 평소 낚시라든지, 등산, 여행 같은 것도 마찬가지라 한다. 직장생활 중에 어렵사리 시간을 얻어 그런 여가를 가질 때가 진정 즐거운 일임을 그때는 몰랐단다. 아무런 준비 없이 정년을 맞고 보니 말이 정년이지 나이가 너무 젊은 게 탈이었다. 마음과 몸이 정년을 거부하게 되니 현실 부적응이라는 문제를 낳는다는 것. 향후 십년의 공백을 생각하면 두렵다는 말들을 하고 있는 것이다.
어느 신문 지면에 실린 기사를 읽었다. 중년 초반에 명예퇴임을 맞이한 어느 직업군인의 이야기다.

오랜 군 생활에서 정년을 맞이하였지만 나이는 그렇게 많은 편이 아니었다. 재취업을 하기위하여 여러 회사를 방문하였으나 허사였다. 회사 측에서 돌아오는 말은 똑 같았다. 당신이 잘 할 수 있는 기술이 현재로서는 없지 않느냐는 것이었다. 그 사람은 큰 충격을 받았으나 좌절하지 않고 기술 습득에 나선 결과 전기분야 자격증 세 가지를 취득하여 당당히 입사에 성공하였다.

이 기사의 내용에서 많은 용기를 얻는다. 준비하며 기다린다는 지혜도 아울러 주고 있다. 정년은 누구에게나 찾아오지만 그 마음가짐은 천차만별일 것이다. 세월 앞에 어쩔 수 없이 밀려나간다고 생각하면 얼마나 불행하랴. 반대로 정년 이후엔 더 아름다운 삶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 상상을 해보면 어느 새 마음이 평화로워 진다.

신문지면을 통한 간접경험이기는 하지만, 정년 이후에도 가능성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음을 알았다. 용기 있는 도전이 전제 되는 일이기는 하다. 나처럼 그런 자신감이 결여된 사람이라면 낭만적 삶을 살아보면 어떨까. 낭만이 꼭 젊은 시절의 전유물일 수는 없는 것이다. 직장에서 갖지 못한 농사일 자체가 낭만적일 것이라는 생각을 갖게 한다. 수박, 참외를 길러놓고 원두막을 지어 객지에 있는 고향친구들을 불러 모을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밤이슬에 촉촉해진 참외와 수박을 따서 안주삼아 놓고, 하늘의 별을 보며 막걸리 잔을 기울이며 말이다. 온갖 풀벌레 소리 들으며 세상 살아온 이야기로 밤을 새면 어떨까. 고추, 상추 따다가 가는 길에 듬뿍 담아주며 다음날을 기약하면 사람 사는 감칠맛이 나지 않을까.

입춘 날 아침, 외투를 벗어버리고 출근을 한다. 바깥 분위기가 외투 착용과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직감이 들어서다. 안개가 잔뜩 끼었다. 포근하게 느껴진다. 벌써 뜰 앞 목련은 꽃눈이 굵어졌다. 지난겨울이 그리도 추웠기에 봄을 기다리는 마음이 더욱 간절했나보다. 모든 시름일랑 묻어버리고 입춘의 의미를 다시 한번 되새겨 본다. 그러면 제 이의 삶도 입춘처럼 찾아오리니.

△약력
거제대학 평생교육원 수필창작과정 수료
계룡수필문학회 회원
현 거제시 주민생활국장
수필과 비평 신인상 수상

새거제신문  saegeoje@par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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