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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선도마김정아

시장은 빛바랜 사진처럼 정겹다. 화려한 조명이나 매상을 올려준다는 시끄런 음악도 없다. 시장은 십여 년 전이나 똑같이 편안하게 느껴진다. 마른 생선들을 진열해놓은 건어물 가게와 호떡 파는 포장마차와 분식 가게들이 줄지어 있다. 그 가게들 앞에는 야채와 생선을 파는 아주머니들이 좌판을 펼치고 손님을 기다린다. 아주머니들이라고 하기엔 그렇고, 거의 칠순은 넘어 보이는 할머니들이다.

새댁이었을 때 나는 이 시장을 거의 매일 찾았다. 채소를 사고 생선을 샀다. 우리 아이들이 말을 배우기 시작할 때 과일과 생선의 이름을 알려 주던 곳이기도 하다. 이 시장은 장승포항이나 능포항에서 받아온 싱싱한 생선들을 싸게 팔기도 했다. 나는 이곳이 고향이 아니어서 낯선 것들이 많았다. 경상도 사투리는 외국어처럼 들렸고 여러 가지 생선들 중에는 이름을 알지도 못하는 것이 많았다. 요리법을 몰라 망설이면 생선 파는 할머니는 새댁이 이것도 모르냐며 자상하게 알려 주시곤 했다. 그러다 내가 집을 옮긴 후에는 자주 올 수 없었다.

그녀는 오늘도 생선을 다듬고 있었다. 내가 전에 자주 생선을 샀던 할머니다. 그녀는 상점이 없이 노상에서 생업을 이어간다. 생선이 담긴 대야와 도마가 누울 자리 그리고 그녀가 앉는 자리면 족하다. 싱싱한 생선을 싸게 파는 편이라 그녀 앞에는 항상 손님이 끊이질 않았다. 그녀는 한 손님에게 검은 비닐 봉투에 한 소쿠리의 생선을 담고 네댓 마리 정도를 더 넣어 주었다. 여전히 인심도 후하다. 나도 소쿠리에 담긴 생선을 달라고 했다. 그런데 나에게는 더 이상 덤을 주지 않고 봉투를 묶는 것이다. 나는 짐짓 농담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앞에 아줌마에게는 덤으로 많이 주시던데, 저도 주세요.”
그러자 할머니는 아무렇지도 않게 말한다.
“갸는 *짜쳐보인다 아이가.”
나는 가만히 서서 그녀가 생선을 다듬는 것을 바라보았다. 그냥 가면 손해 볼 것 같아 떠날 수가 없다. 그녀는 두툼한 도마에 생선을 놓고 무쇠 칼을 내려쳤다. 잘린 생선 대가리를 버리고 내장을 꺼낸 후 소금을 뿌렸다. 소금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새하얀 소금이 떨어진 도마는 유난히 시커멓게 보였다.

도마는 시장바닥의 삶을 고스란히 담고 있었다. 고등어처럼 검푸른 등을 하고 배는 갈치처럼 은빛을 내는 무쇠 칼이 날았다. 칼은 생선의 몸통을 관통할 때마다 도마에 꽂히고 있다. 칼날은 도마 깊숙이 핏물을 배이게 했다. 예전에 새겨진 칼자국은 진한 갈색으로 물들었다. 도마는 언제부터 세월의 칼날을 그대로 받아들이며 자신의 몸에 줄을 새기고 있었던 것일까. 그렇게 새겨진 세월은 생선의 내장을 꺼내고 있는 할머니의 손등을 거슬러 얼굴에까지 깊을 골을 새겼다. 주름진 그녀의 얼굴이 도마를 바라본다. 서로 닮은 둘은 온몸으로 자신들의 삶을 보여주고 있다.

이제는 가야할 시간이다. 못내 서운한 마음에 미적거리고 있는데 생선 내장이 긁어내어지는 순간 걸쭉한 핏물이 내 하얀 구두에 튀어 흘렀다. 얼른 가방을 뒤져 화장지를 찾아냈다. 다행이 깨끗이 닦아졌다. 신발이 비싼 값을 하나 보다. 언제 얼룩이 묻었냐는 듯 광택이 나고 있다. 그런 나의 모습을 살펴본다. 갖춰진 옷을 입고 가죽가방을 들고 있는 내 모습이 갑자기 낯설게 느껴진다. 예전의 나의 모습과는 많이 달라져 있다. 그래서 그녀는 덤을 주지 않은 것일까.

시작은 초라했다. 빚을 얻어 전세금을 마련하여 결혼한 남편과 나는 알뜰하게 살아야 했다. 지금은 물건의 가격보다는 질을 따져 살 정도는 되었지만 아직도 어렵게 살았던 때의 서글픔은 남았나 보다. 물건을 살 때면 하나라도 더 얻고 더 싸게 사려고 악착스러워진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살 수 없다는 생각이 세포 깊숙이 각인되어 있는 것처럼. 그러면서 힘든 삶은 알지도 못한다는 듯이 옷과 장신구로 광택을 내며 살고 있지 않은가. 하필 거의 평생을 시장 좌판에 앉아 생선을 파는 할머니에게 떼쟁이처럼 버티고 있다니.

북적이던 시장이 한산하다. 이제 파장할 때가 되었나 보다. 호떡 파는 아주머니는 주변을 정리하고 있다. 뒤집개를 닦고 어묵 국물을 통에 붓는다. 남은 호떡을 봉투에 싸더니 생선 파는 할머니에게 건넨다. 생선 파는 할머니도 남은 생선을 정리하다 웬 것이냐며 웃으신다. 힘들어 보이는 사람들에게 넉넉하게 베풀면서 호떡봉투에 황송해 한다. 나는 그 멋쩍은 미소에 눈물이 어리고 만다.

사람들은 쉽게 말한다. 힘들게 살아봤다고, 나도 고생해봤다고. 이런 말이 타인에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힘들게 사는 이에게 따뜻한 시선 한번 보낼 수 없고 거친 손 하나 어루만져줄 수 없다면. 그동안 내가 받아왔던 것들을 베풀기는커녕 더 받으려고만 했던 것 같다. 덤은 공짜가 아닌 셈이다. 내가 힘들 때 받았던 수많은 덤들이 생의 빚이었음을 생각한다.

시장 골목의 그림자가 길어진다. 생선도마를 씻는 투박한 손길에 가을 햇살이 스민다.

*짜치다 - ‘쪼들리다’의 경상도 방언

약력
전북 임실 출생, 수필가
전북대학교 통계학과 졸업
계룡수필문학회 회원
수필과 비평 신인상 수상

새거제신문  saegeoje@par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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