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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행복을 꿈꾸며이상영 /옥포종합사회복지관장.거제대 외래교수

소한 추위로 기세등등했던 동장군이 새해 인사로 인한 훈훈함에 꼬리를 감춘 듯 싶다. 서로에게 복을 빌어주고, 선조의 고마움을 되새기고, 가족의 평화와 안녕을 기원하는 이 마음들이 세속적인 계산과 이기심으로 변질되지 않도록 함께 노력하는 한 해가 되기를 기원해 본다.

사실 '복 많이 받으세요'라는 인사에는 '너보다' 혹은 '나보다'라는 말이 빠져 있다. 시간이 흘러가면서 나보다 복을 더 받는 듯한 사람 때문에 배 아파하고, 너보다 열심히 살고 있는 내가 복을 누리지 못함에 화가 나는 시간이 찾아오는 것 같기 때문이다. 첫 마음을 유지하라고 가르치신 선조의 지혜를 되새기며, 기쁜 마음으로 복을 빌어 준 이 시간을 오래 오래 간직하기 위해 노력함이 절실하다.

'개구리가 되지 맙시다.'라는 소제목의 글을 읽은 적이 있다. 그 글에서는 개구리가 호숫가에서 혀로 날아다니는 파리를 잡아먹는 이야기를 하면서 개구리가 되지 말자고 말하고 있다. 사람은 도저히 흉내 낼 수 없는 개구리의 몸부림을 왜 따라하지 말자고 하는지 궁금한 마음으로 읽어보았다.

개구리가 날아다니는 파리를 잡아먹을 수 있는 것은 개구리의 눈에 움직이지 않는 다른 것들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었다. 개구리에게는 잔잔하게 움직이는 호수와 호수 주변을 아름답게 꾸미고 있는 들꽃들은 보이지 않았다. 자신이 잡아야 하는 파리만이 보이기 때문에 그랬다. 이쯤 되면 왜 개구리가 되지 말아야 하는지 알 수 있다.

우리들은 호수 주변의 아름다움을 볼 수 있는 능력이 있다. 그럼에도 애써 그 아름다움을 외면한 채 내가 보고 싶은 것, 내가 가지고 싶은 것에 눈을 고정하고 살아가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어쩌면 세상이 가르치는 경쟁이라는 구도는 그렇게 시선을 고정하도록 다그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남들보다 먼저 파리를 잡는 사람이 성공하는 것이고, 행복한 사람이라고 말하는 것 같다. 과연 그것이 행복일까?

예수님께서는 산상설교라는 가르침을 통해 행복에 대해서 말씀해 주고 있다.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행복하다."
사실 '가난'이라는 단어를 마음에 담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닌 것 같다. 가난은 왠지 궁핍함의 표현인 것 같고, 성공보다는 실패에 가까운 단어인 듯 보이기 때문이다. 그런 가난을 왜 예수님께서는 행복의 첫 자리에 놓으셨을까.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가난에는 자유로움이 있다.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고, 구속받지 않는 자유로움이다. 분명 방종이나 헛된 용기를 의미하지 않았으며 자신의 삶을 통해 이 자유를 온전히 보여주셨다. 불의에 타협하지 않고, 자유롭고 용기 있게 하느님의 뜻을 드러내셨다. 세상은 이런 예수님을 패배자로 만들기 위해 모함했고, 급기야 십자가 형벌을 통해 무너뜨리려 했다.

하지만 그 십자가 위에서 '내가 세상을 이겼다'하신 예수님께서는 지금도 신앙인들의 가슴에 승리자로, 구세주로 살아있다. 또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가난은 내어줌으로써 완성되었다. 당신의 살과 피를 내어줌으로써 완성하신 그분의 가난은 실패도 아니고, 궁핍함도 아닌. 행복으로 향하는 온전한 길이 되었다.

나눔으로써 행복해진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단지 용기가 없기 때문이다. 이거 아니면 모든 것이 끝날 것 같은 두려움이 그 용기를 앗아간 것이다. 하지만 지나간 세월 속에서 드러난 사실은 그 두려움이 아무것도 아니었음을 말해 준다. 오히려 용기 내지 못한 자신이 어리석게 느껴지곤 하는 일이 많다.

잠시 시선을 돌려 주변의 아름다움에 행복을 느껴 보고. 잠시 손을 놓고 자유로움을 느껴 볼 때 행복은 바로 우리 옆에서 우리가 고개를 돌려 바라보기를 기다리고 있다.

새거제신문  saegeoje@par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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