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회의 예산안 처리과정에서 드러난
‘원칙’과 ‘신뢰’ 사이의 아슬한 줄타기

본회의 예산안 처리과정에서 드러난 ‘원칙’과 ‘신뢰’ 사이의 아슬한 줄타기

정치인에게 ‘원칙’은 ‘신뢰’를 얻는 밑거름이다. 일관되게 지켜야 하는 기본적인 규칙이나 법칙을 일컫는 원칙은 소신과도 맞닿아 있다. 한 번 정한 원칙이 무너지게 되면 십중팔구 등을 돌리는 법. 믿음이 깨지는 건 시간문제다. 올 한 해 ‘농사’(의정활동)를 정리하는 정례회가 진행 중인 거제시의회에선 이런 원칙을 두고 설전이 오가는 장면이 연출됐다.

논란의 핵심은 새해 예산안이다. ‘삭감’과 ‘반영’에 얽힌 복잡 미묘한 시각차가 이번 예산안 처리과정에서 여실히 드러났다. 본질은 예산안을 1차적으로 다루는 각 상임위원회와 여기서 걸러진 부분을 최종적으로 판단하는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사이에 벌어진 사실상의 힘겨루기다.

지난 20일 제149회 거제시의회 2차 정례회(2차 본회의)가 열린 본회의장. 이날 회의는 앞서 집행부가 편성, 제출한 2012년도 세입·세출예산안 등 굵직한 안건을 심의 의결하는 자리였다.
본격적인 안건 처리에 앞서 김은동 의원이 5분 자유발언을 했고, 뒤이어 산업건설위원회가 다룬 ‘거제해양관광개발공사 자본금 출자 동의안’ 등 의안 2건이 해당 상임위 심사결과(각각 원안가결)대로 통과됐다.

이날의 하이라이트는 거제시 내년 살림살이가 고스란히 담긴 새해 예산안 처리. 박장섭 예결위원장의 심사결과 보고에 이어 의사봉을 잡은 황종명 의장이 의사진행에 나섰다. 문제는 여기서 부터다.
“예결위원장이 심사 보고한 대로 의결하고자 하는데 의원 여러분 이의 없습니까?”라는 말이 떨어지자마자 곧바로 한기수 의원(총무사회위원장)이 “이의 있습니다”며 손을 들었다. 자리로 돌아가 앉았던 박 위원장이 다시 단상에 오르자 한 의원의 날선 질문이 시작됐다.

총사위 심사를 거쳐 삭감한 예산(42억7000만원)이 예결위에서 대부분 되살아난 게 가장 큰 이유였다. 마이크를 잡은 한 의원은 “총사위에서 35건 42억7000만원을 삭감해 예결위에 올렸는데, 8건만 삭감되고 11건(36억4000만원)이 삭감 반려됐다”며 “결국 총사위가 삭감을 요구한 금액 중 5.7%만 삭감되고 나머지는 부결돼 상임위 심사결과를 존중하는 것에서 많이 벗어났다”고 이번 예결위의 예산안 계수조정 결과를 나무랐다.

한 의원은 또 “해양관광개발공사 출자금 20억은 의회 동의안이 결정되고 나서 총사위 심의를 할 수 있는 건데, 당초 편성 불가한 예산을 (집행부가) 편성했고 예결위에서도 심사할 수 없는 사안”이라며 삭감 요구가 부결된 이유를 따져 물었다.

답변에 나선 박 위원장은 “이번 예결위 구성에 총사위 소속 의원 4명이 포함됐는데 이 중 한명이라도 반대했다면 당초 안대로 삭감했을 것”이라며 “전체 예결위원 만장일치로 통과된 사안이고, 상임위 내용을 존중해 심사숙고한 결과”라고 말했다.

공사 출자금과 관련해서는 “사전 승인받지 않은 예산을 편성한데 대해 예결위에서 많은 질책을 가했다”면서도 “다만 이 20억은 운영자금이다. 지방재정법도 검토했고, 산건위에서 이미 충분히 다룬데다 총사위 소속 위원들의 뜻을 물어 결정한 것”이라고 예결위 심사 배경을 설명했다.

박 위원장의 대답을 들은 한 의원은 “일단 필요하다고 해서 절차를 무시한 걸 그대로 넘어간다면 의회 기능을 스스로 포기하는 격”이라고 꼬집은 뒤 다시 화살을 날렸다. 이번엔 둔덕 체육공원과 문예재단 이사장(권민호 시장) 기관운영업무추진비를 들고 나왔다.

한 의원은 “둔덕 체육공원도 감액을 요구했는데 (총사위) 의원 개인별 의견이 부정적이었고, 도시계획위원회 의견 또한 심의 보류돼 있는 상태여서 (삭감이 반려된 건) 우려스러운 부분”이라고 짚었다.
또 “문예재단 이사장 기관운영업무추진비가 1000만원인데 상임위 심사에서 이 돈의 사용은 어떻게 하느냐고 물으니 관례대로 상임이사(관장)가 썼다고 답하더라”며 문제가 있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그러자 박 위원장은 “둔덕 체육공원은 내용적인 설계상 보류이지 사업 자체를 보류시킨 건 아니다”고 도시계획위 시각을 풀어낸 뒤 “4, 5대 의회 때부터 이어진 사항이라 계속사업을 중단시킬 수 없었다”고 되받았다.
재단 이사장 업무추진비와 관련해서도 “한 해 지역 문화예술 관련 행사가 150여건 정도인데 개별 행사 격려금 등으로 지출하는데 이 정도 금액은 타당하다고 판단해 통과시켰다”고 예결위 결정에 문제가 없었다는 점을 강조했다.

상황이 이쯤 되자 한 의원이 ‘히든카드’를 꺼냈다. “이 내용(예결위 심사결과)에 대해 총사위원장으로 받아들이기 어렵다”며 정회를 요청한 것. 오전 11시 37분께 정회가 선포됐고, 본회의장 뒤편으로 자리를 옮긴 의원들끼리 논의에 들어갔다.

40분 가까이 의견 조율을 거친 의원들이 속속 자리로 돌아온 12시 13분께 회의가 속개됐다. 한 의원이 수정안을 발의했으나 의안 성립 요건(재적의원 1/5 이상 또는 10인 이상 찬성)을 갖추지 못해 본회의 상정이 불발됐다. 한 의원 외에 같은 당 유영수 의원만 수정안에 찬성한 걸로 알려져 필요충분조건인 3명을 채우지 못했기 때문.

이어 황 의장이 예산안 처리에 나서자 한 의원이 표결을 요구하는 바람에 한 차례 더 제동이 걸렸으나 이번에도 동의하는 의원이 1명에 그쳐 예결위 심사결과(수정가결)대로 통과됐다. 2012년도 기금운용계획안, 올 3회 추경예산안 등 나머지 안건들은 별다른 진통 없이 심의 의결됐으며, 12시 17분께 산회가 선포되면서 이날 본회의가 마무리됐다.

이동열 기자  coda23@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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