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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을 올바르게 대하는 법김한식 /호산나교회 담임목사

올바른 인간관계는 신앙생활을 하는 데 있어서 대단히 중요한 요소다. 만약 인간관계가 나쁘면 우리가 아무리 정성을 다해서 예배해도 하나님이 그 예배를 기쁘게 받으시지 않으며, 아무리 성령님을 간구해도 성령님께서 우리 가운데 임하시지 않는다. 그러므로 신앙생활에 있어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좋은 인간관계를 만드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런데 오늘날 사회는 어디를 가든지 잘못된 인간관계 때문에 필요 없는 긴장과 갈등을 유발시키고 있다. 심지어 이 잘못된 관계는 교회 안에까지 침투해서 교회를 약하게 만들고, 병들게 만들어서 교회의 성장을 방해하고 있다. 그렇다면 인간관계를 악하게 만드는 요소들 가운데 가장 기초적이고 근본적인 것이 있다면 그것이 무엇일까? 그것은 선입견 혹은 편견이다. 편견이란 어떤 사람을 평가할 때 그 사람의 종합적인 면을 살펴보고 평가하는 것이 아니고 어떤 특이한 한 가지 단면을 보고 그 사람 전체를 평가하는 것을 말한다. 그렇다면 우리로 하여금 타인에 대해서 편견을 가지게 하는 잘못된 평가 요소들 가운데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몇 가지만 예를 들어보기로 하자.
첫째는 사람의 외모만을 보고 평가하는 경우가 있다. 흔히 젊은이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말 가운데 “무식한 것은 용서 받을 수 있어도 못난 것은 용서받을 수 없다”는 말이 있다. 정말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어떻게 한 인격을 평가할 때 오직 외모만을 가지고 평가할 수 있는가? 둘째는 신분의 귀천만 보고 평가 하는 경우가 있다. 그래서 우리 속담에 “가난한 집 주인한테는 인사를 안 해도 정승집 개한테는 아는 체를 한다”는 말이 있다. 이 말은 신분의 귀천을 가지고 사람을 평가하는 것을 비판하는 말이다. 셋째는 나이의 고하만을 가지고 평가하는 경우가 있다. 물론 육신의 나이가 중요하지만 그러나 그것이 일반적인 평가 기준이 되어서는 안 된다. 정말 나이는 숫자에 불과한 것이다.

넷째는 성공의 정도만을 가지고 평가하는 경우가 있다. 그래서 성공한 자 앞에서는 한없이 작아지고, 반대로 자기보다 좀 부족한 사람 앞에서는 한 없이 교만하여서 상대방을 무시하고 깔보는 사람들이 있다. 다섯째는 부의 정도만을 가지고 평가하는 경우가 있다. 오늘 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남들보다 더 많이 가졌다는 사실 때문에 뻐기고 자만하며 또 과소평가하고 무시하는가? 야고보 사도는 우리를 향해 “너희는 이렇게 하지 말라”고 가르친다. 이렇게 평가하면 “정상적인 인간관계가 형성되어질 수 없다”고 말한다. 이런 세상은 예수님이 만드시고자 하셨던 세상이 아니다.

그렇다면 성경은 이러한 편견에 대해서 무엇이라고 말씀하시는가?
편견은 “비기독교적인 것이며, 예수 믿는 사람이 취할 행동이 아니라”고 말씀하신다.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믿음”과 “편견”은 서로 양립 할 수 없다. 왜냐하면 우리는 다 그리스도 안에서 한 가족들이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 그 어느 곳에서도 차별이나 편견이 있어서는 안되겠지만, 특히 교회 안에서는 더욱더 그렇다. 왜냐하면 교회는 그리스도의 피로 값 주고 산 한 가족이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편견은 그 어떤 이유에서도 정당화 될 수 없다.

야고보가 살던 시대는 로마가 그 사회를 지배했다. 그래서 식민지 백성은 로마 군사들에게 잘 보여야 출세할 수 있었다. 유력자들은 로마 군사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그들에게 아부하고 굽실거리면서 반대로 가난하고 없는 자들을 억압하고 착취하였다. 다시 말하면 자기가 잘 살아야 되겠다는 이유로 다른 사람에 대해 편견을 가지고 대했다는 말이다. 야고보는 이런 사람을 향해서 아주 강하게 책망하고 있다. 더 나아가 편견은 사랑을 방해하는 것이다. 우리가 편견을 갖지 말아야 할 가장 근본 이유 중에 하나가 바로 이 편견이 이웃을 사랑하라고 하신 하나님의 가장 큰 계명을 실천하는데 방해가 되기 때문이다.

간혹 어떤 사람들은 편견을 가지고 사람을 대하는 것이 무슨 큰 대수냐고 따지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바울은 그것은 “하나 되라고 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깨어버리기 때문”에 편견을 가지지 말라고 말씀했다. “교회 성장과 사랑의 관계”라는 연구 보고서에 의하면 일반적으로 교회가 성장하기 위해서는 “목사의 리더십”, “훌륭한 시설”, “좋은 위치”, “전도의 열정” 등이 다 필요하지만 제일 중요한 것은 바로 “교우들끼리 서로 편견 없이 얼마나 사랑하는가에 있다”고 보고했다.

그렇다면 인간관계에 있어서 가장 바람직한 태도는 어떤 태도인가? 첫째는 모든 사람들을 수용해 주어야 한다. 어떤 사람은 자기만 의로운 채, 자기만 하나님을 제일 잘 믿는 체 하면서, 모든 것을 자기 기준에서 판단하고 정죄 해 버리는 사람들이 있다. 그래서 자기하고 다르면 모든 것을 부정해 버린다. 그러나 이런 사람들은 “동의한다”고 하는 말과 “수용한다”고 하는 말의 의미를 잘 모르는 사람이다. 신앙이 성숙한 사람일수록 자기와 다른 종류의 삶에 대해 동의하지는 않지만 그러나 수용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둘째는 모든 사람의 가치를 높이 평가해 주어야 한다.

다시 말하면 이 말은 “그냥 받아주는 차원을 넘어서 상대방의 장점을 찾아서 그것을 칭찬해 주고 인정해 주라”는 말이다. “칭찬은 고래를 춤추게 한다”는 말이 있다. 짐승도 칭찬하면 춤추는데, 하물며 사람은 오죽하겠는가? 셋째는 다른 사람을 지지해 주어야 한다. 어떤 사람이 난처한 지경에 처하게 될 때 비난하거나 정죄하지 말고 오히려 그 사람에게 힘이 되어주고 세워주고 격려해 주라는 말이다.

한 해가 저물어 가고 있다. 그동안 좋지 못한 인간관계 때문에 서로 긴장하고 갈등한 사람들이 있으면 먼저 찾아가서 화해하고 용서함으로 구연을 멋지게 날려버리고 희망찬 새해를 맞이하는 우리가 되었으면 참 좋겠다.

새거제신문  saegeoje@par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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