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지 못할 그날’을 소재로 쓴 수필에서 당대 청소년의 문제가 그대로 나타났다. 학습자(대학생)들이 체험한 길지 않은 날들에서 ‘그날’은 대부분 수능시험 또는 대입과 관련된 것이었다. “하루종일 죽고싶단 생각이 들었다. 희망이 없는 미래의 내가 택할 길은...” 더 이상 읽고 싶지 않은, 섬뜩한 내용도 눈에 띄었다.

지난주 2012년 대입 수능이 끝났다. 책상의 족쇄에서 잠시 벗어난 고3들 위에 그 글이 겹쳐졌다. 그들은 거리의 자유를 만끽하면서도 “점수 때문에 콱 죽고싶다”는 비명을 질러대고 있었다. 누적된 스트레스가 미리 채점해 본 점수로 인해 더 쌓이는 모습인데, 절규처럼 노래도 불러댔다. 화를 노래로 푸는 방법은 물론 바람직하지만 문제는 노랫말이었다. “죽고 싶단 말밖에 난 할 수가 없어 너 없는 삶은 견딜 수 없어~” 한 학생의 절규같은 선창에 서너 명이 덩달아 복창을 했다. 노랫말이 귀에 거슬리기에 귀가하여 정보를 추적해 보니 ‘허각’이란 가수가 최근에 발표한 신곡이었다.

20대 가수의 탁월한 가창력이 연인간의 아픈 이별을 극대화시키고 있었다. 십대들이 이 노래에 열광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물론 나는 그 정답을 멋진 청년으로 평가받는 그 가수의 삶에 국한하고 싶다. 그는 중졸의 학력과 가난, 작은키라는 열악한 환경의 핸디캡을 재능과 노력을 발판으로 하여 성공을 이룬 인물이었다. 그가 만추의 계절에 들고 나온 곡명이 왜 ‘죽고 싶단 말밖에’로 정했을까. 나는 당장 이 제목을 바꿔주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가수가 노래 한 곡을 취입하기 위해 같은 노래를 보통 2,3천 번 연습을 한다고 한다. 작곡가의 마음이 흡족할 때까지 피나는 가창훈련이 있을 것이고, 히트를 하면 무대에서 수백, 수천 번을 불리어 질 것이다. 이때 가사의 내용을 진실이라고 믿어버린 잠재의식은 나중에 현실의 세계에다 그 내용을 정확히 투영한다. 심리학 용어 중에 '자기충족적 예언(self-fulfilling prophecy)'이란 것이 있다. 생각(말)대로 이루어진다는 뜻이다. 즉 자기가 하는 일이 성공할 것이라 믿고 그렇게 노력하는 사람은 정말 성공하고 '안될 것이 뻔하다'며 매사에 임하는 사람은 정말 실패하게 된다는 말이다.

이런 심리적인 '긍정성'의 바탕은 기질적인 문제와도 무관하지 않겠으나 잠재의식의 측면에서 더욱 설득력이 있다. ‘말이 씨가 된다’는 속담이 이에 해당한다. 어떤 말을 하게되면 그 말과 관계되는 생각을 지속적으로 하게되고 머릿속에 가득찬 생각들은 꼬리에서 꼬리를 물고 이어져 결국 현실화된다는 데, 이는 과학적으로도 증명이 된 이론이다.

가수를 언급한 김에, 그들의 삶과 노래를 살펴보자. 우선 부정적 자기예언의 경우에 배호가 있다. ‘0시의 이별’과 ‘마지막 잎새’를 불러 대유행을 시킨 그는 일찍 세상을 떠났는데 임종시간대가 0시쯤이었다고 한다. ‘낙엽따라 가버린 사랑’을 부른 차중락도 29세에 낙엽처럼 사라졌다. ‘간다 간다 나는 간다 너를 두고 나는 간다’를 열창하던 김정호는 20대 중반에 암으로, ‘떠나가 버렸네’의 김현식도 간경화로 떠났다. ‘서른 즈음에’를 부른 김광석도 서른 즈음에 자살을 했다. ‘이별’의 패티김 또한 작가 길옥윤과 이별했으며, 탤런트 신신애는 난데없이 ‘세상은 요지경’이란 노래로서 돈을 벌더니 얼마 못가 “여기도 짜가 저기도 짜가”들에게 사기 당해 빈털터리가 되었다. 60년대 말, “세상에 버림받고 사랑마저 물리친 몸 병들어(암투병) 쓰라린 가슴을 부여 앉고 나홀로 재생의 길을 걸으며 쓸쓸히” 간 권혜경의 경우도 노랫말을 실천하듯 외롭게 죽어갔다.

긍정의 경우는 듣기만 해도 기분이 좋다. ‘독도는 우리 땅’을 부른 정관태는 독도 명예군수가 되었으며 노사연은 ‘만남’을 부른 이후 노처녀에서 벗어났다. 1970년대 불붙은 ‘새마을 노래’의 에너지는 압권이었다. 새벽을 뚫고 청소차가 달리며 확성기를 틀어댔는데 아직도 기억 속에 생생한 그 흥겨운 합창은 성능좋은 시계처럼 제 시간에 터졌다. “잘 살아보세, 우리도 한번 잘 살아보세... 초가집도 없애고 마을길도 넓히며 푸른 동산 알뜰살뜰 가꾸세~” 온 국민의 잠재의식 속으로 쏟아져 들어오던 우렁찬 가락, 그것은 민족의 동질감과 정신적 체력을 강건하게 한 최고의 호소력이었다. 역사인물평가는 개인차가 있겠으나 노랫말의 의도는 맞아떨어졌고 위력은 경제발전이 입증했다. 1인당 국민소득 78달러, 전세계에서 아프리카 봉고 다음으로 가난했던 절대빈곤의 구렁텅이에서 오늘날 우리는 선진국 대열의 문턱까지 와 있지 않은가. 잠재의식의 힘이 그만큼 무서운 것이다.

가드너의 다중지능이론에 의하면 인간의 지능은 8가지(언어ㆍ음악ㆍ논리수학ㆍ공간ㆍ신체운동ㆍ인간친화ㆍ자기성찰ㆍ자연친화)가 혼재하여 작용함으로써 개인의 능력이 발휘된다. 수능은 이 중 단 2개(언어.논리수학)를 평가하는 도구에 불과하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수능 전후로 수험생 자살 기사를 목격했다. 이는 다양성과 가능성으로 열려있는 십대들의 특성을 무시하고 대학가는 길, 그 한길만이 최선이라 가르친 교육.사회 탓이다. 허각은 젊은 팬들을 위해 아니 자신을 위해, 그 노래를 부르지 말라.

새거제신문  saegeoje@par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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