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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한의 62년, 진실규명 서둘러야탐방 - 61주기 제2회 민간인 희생자 합동 위령제

구슬픈 범패가락이 연초면 천곡사의 푸른 하늘과 대지를 울렸다. 범패에 맞춰 무녀들은 영산작법과 천수바라, 태평무를 추며 구천의 영령들을 불러 위로했다. 고귀한 움직임을 지켜보던 노인들은 이내 눈을 감고 깊은 생각에 잠겼다.

60여년전 아버지와 삼촌, 형과 오빠들이 경찰과 공무원들에게 끌려가 다시는 집에 돌아오지 못했다. 얼마 후 목이 없거나 철사줄에 묶인 시신들이 거제도 해변에 밀려들었고 일부는 일본 대마도에서 발견됐다. 가족의 억울한 죽음 앞에 연좌제란 족쇄까지 씌어져 통한의 60년을 숨죽여 살아온 그들.

국민보도연맹사건 ‘민간인 희생자 거제유족회’는 지난 16일 연초면 천곡사에서 ‘제61주기 제2회 합동위령제’를 열었다.

이날 행사에는 100여명의 유족들이 모여 가족 잃은 슬픔을 함께 나눴고 지역 정치인들과 사회단체 관계자들이 참석해 유족들을 위로했다.

추모제에 앞서 천곡사 스님들의 범패(불교음악)에 맞춰 무녀들이 법무를 추며 구천의 영령들을 불러 자리에 앉도록 권하는 헌좌의식을 가졌다.

거제유족회 박우영 회장은 사건당시 아버지를 잃은 유족이면서 천곡사 주지 스님이기도 해 직접 부른 범패에 슬픔과 애환이 고스란히 묻어났다.

국민보도연맹은 1948년 대한민국 정부수립 이후 좌익세력의 사상 교화와 전향을 목적으로 결성됐으나 지역 할당제와 실적주의로 경찰과 공무원들은 좌익사상과 무관한 민간인들까지 폭력과 협박으로 강제 가입시켜 전국적으로 30만 명에 이르렀다. 한국전쟁 발발직후 정부는 보도연맹을 내부의 적으로 간주해 대학살을 자행했다.

거제지역 역시 최대피해지역의 하나로 거제유족회 경과보고에 따르면 1950년 7월 21일 보도연맹원 731명이 경찰서로 집결, 25, 26일 이틀에 걸쳐 400여명이 철사줄에 묶여 지심도 앞바다에 수장되고 8월말까지 총살, 수장 등 잔혹한 방법으로 학살이 계속됐다.

거제지역 유족들은 연좌제 때문에 희생자의 생사를 묻거나 시신을 찾는 등 눈에 띄는 어떠한 행동도 하지 못한 채 10여년을 숨죽이며 살다가 1960년 통영 유족들과 유족회를 결성, 피해 접수를 받기 시작했다. 그러나 군정기에 국가를 상대로 이렇다 할 활동을 벌이지 못한 유족회는 41년이 지난 2001년 8월에서야 거제유족회를 재결성했다.

2005년 5월 ‘과거사정리 기본법’이 국회를 통과 제정되고 그해 12월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가 발족돼 2006년 진실규명 신청서를 접수 받았다. 이 때 접수된 희생자는 700위에 이르고 이들을 대상으로 08, 09년 진실규명을 조사해 09년 7월 결론을 발표했다.

결론을 요약하면 “확인된 희생자는 최소 475명에서 최대 800여 명이며 대다수가 좌익활동경력이 전무하고 좌익사상과는 무관한 20~40대 농·어민이 대부분이다. 적법한 절차 없이 민간인을 집단학살한 것은 인도주의에 반한 것이며 헌법이 보장한 국민기본권의 생명권을 침해한 것”이라며 “국가는 △희생자와 유족들에게 공식적으로 사과하고 △가족 관계 등록부의 정정을 요구하며 △국가와 지자체는 희생자와 유족들을 위한 위령사업에 적극 지원하고 각 군지·시지 등 공공기록물에 진실규명 내용을 정확히 알리고 △군·경·공무원에게 전시 인권교육을 강화하고 초·중·고등학생들에게 평화인권교육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발표했다.

또 지난 6월 울산·청주·청원 지역 유족회가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일부 승소한 것에 힘입어 거제유족회 역시 소송을 준비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한국제노사이드 연구회 전갑생 씨는 민간인 희생자 조사보고에서 “전시하 국민의 기본권이 제한되는 시기였다하더라도 인민군에 협조했을거란 의심만으로 재판 절차없이 국민보도연맹등 민간인을 살해한 행위는 헌법에서 보장하고 있는 국민 생명권을 침해한 것이며 불법적 학살이었다”고 주장했다.

모든 행사가 마무리되고 유족들은 151명의 희생자 명단 앞에 아버지 등 그리운 가족의 이름을 울부짖으며 절을 올렸다.

한편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피학살자 전국유족연합회 유호상 상임대표는 군·경·공무원에 의해 희생된 민간인 위령제에 권민호 거제시장과 배영철 거제경찰서장이 참석하지 않은 것에 깊은 유감을 표했다.

조행성 기자  saegeoje@par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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