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세 장례지도사 제은정 씨

사등면 거제시추모의집. 거제시시설관리공단이 맡고 있는 이 시설은 총 2만3232구의 유골을 수용할 수 있으며 지난해 4월 준공돼 5월부터 유골을 안치해 지금까지 250여명의 영혼이 잠들어 있는 곳이다.

추모의집은 연중무휴로 추석, 설날 등 큰 명절에 더욱 바쁘다. 특히 올 추석엔 3기의 유골이 안치돼 유족들과 방문객들이 몰려들어 거제에서 가장 바쁜 추석을 보낸 곳 중 하나이다.

시설을 관리하는 직원은 모두 4명. 소장1명과 시설관리 2명, 그리고 장례지도사 제은정(여·24)씨다.

그녀는 올해 만 24세로 거제지역 최연소 여성 장례지도사로 꼽힌다. 2년전 경남 진주에서 일할 땐 지역 최연소 장례지도사로 매스컴에 소개됐었다.

은정씨가 장례문화에 관심을 보인 것은 고등학교 재학시절부터다. 간호사를 꿈꾸던 그녀는 고등학교 2학년 때 병원 중환자실에서 간호실습을 받았다. 여기서 처음시신을 접했는데 손이 떨리고 눈물이 날만큼 무서웠다고 한다. 점차 일이 반복되고 익숙해지자 ‘죽음’의 다음 단계인 ‘장례’까지 넘보게 됐다.

간호사의 꿈을 접고 본격적으로 장례문화를 배우기 위해 동부산업대학 장례풍습과(현 장례행정복지과)에 입학했다. 장례관련과가 전국적으로 매우 희귀하던 터에 고향 부산의 동부산업대학이 장례풍습과를 신설한 것은 그녀에게 큰 행운이었다.

하지만 그녀의 부모는 딸의 선택에 매우 반대했다. 시체를 만지고 오는 날이면 어머니는 딸에게 소금을 뿌리며 얼른 씻으라고 야단이었다.

은정씨는 2009년 외할머니의 임종을 회상하며 눈물을 글썽였다. 외할머니 역시 손녀의 직업을 탐탁지 않게 여겼지만 종내는 임종을 앞두고 “장례식을 은정이에게 맡겨 달라”고 유언을 남겼다. 당시 당직근무로 하루 늦게 장례식장을 찾은 은정씨는 고인의 시신조차 볼 수 없었다. 유언을 지키지 못하고 타인의 손에 할머니를 맡긴 것이 아직까지 죄송스럽다고 말하는 은정씨.

은정씨는 이제 시신을 만지지 않는다. 추모의 집은 거제 외부(주로 통영화장장)에서 화장된 유골을 안치하는 납골시설이기 때문.

그러나 고인이 보내는 마지막 절차가 진행되는 곳이기에 더욱 정성을 기한다. 유족들의 신경도 예민해진다. 모든 유족들이 눈높이 위치에 고인의 유골이 안치되길 원하지만 추모의 집에서는 형평성과 객관성을 고려해 유골이 시설에 인도되는 순서대로 봉안함(*방문객이 볼 수 있도록 유골함과 위패를 전시하는 유리장欌)의 위치가 정해진다. 최상단, 최하단에 유골이 안치되면 유족들이 불만을 나타내기 일쑤.

또 시설이 산에 자리 잡고 있어 벌레가 꼬이기 쉬운데 방문객들은 유골함에까지 벌레가 꼬일까 우려를 나타내 직원들은 완전 밀폐된 봉안함을 보여주며 안심시킨다.

여성으로서 겪는 어려움도 있다. 유족들이 어린나이의 은정씨를 못미더워할 뿐 아니라 동종업계인 상조회사직원들조차 부하직원 부리듯이 반말로 대하는 경우가 있어 여성 장례지도사의 한계를 절감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은정씨는 장례지도사의 길을 후회하지 않는다.
은정씨는 “장례문화가 전통에서 벗어나 최근에는 다양한 모습으로 변화하고 있다”며 “종래 무겁고, 엄숙하고, 우울했던 장례식장을 좀 더 온기가 도는 공간으로 바꾸기 위해선 여성의 힘이 절실하다”고 한다.

조행성 기자  oeko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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