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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유산(遺産)손영민 /본지 이사

소설 동의보감을 보노라면 경남 밀양의 천황산 얼음골이 소개된다. 오뉴월 삼복에는 얼음으로 덮여 있고 겨울에는 오히려 더운물이 흐른다는 신비의 계곡 얼음골, 서출 출신인 애송이 허준이 우리 풍토와 체질에 맞는 유일한 의학서를 편찬하여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구할 수 있도록 하기위해 스승 유의태가 스스로 자청하여 죽은 곳이 바로 천황산 얼음골이다.

당시 조선에는 국법으로 인체의 해부가 금지되어 있었다. 유의태는 병이 들어 생명이 다 되었음을 알고 허준에게 수시간 후 얼음골로 나오라고 명한 뒤 본인은 잰걸음으로 얼음골로 앞서갔다. 스승의 부름을 받고 얼음골에 당도한 허준의 앞에는 왕골자리에 반드시 누운 채 스스로 목숨을 끊은 스승 유의태의 사체 옆에 남겨진 유서가 황촛불에 빛나고 있었다.

“사람을 다루는 자가 신체의 내부를 모르고 생명을 지킬 수 없기에 병든 몸이나마 네게 주느니 네 정진의 계기로 삼으라.…”
유서를 펼쳐든 허준은 스승의 사체 앞에 꿇어 엎드려 통곡을 멈추지 못했고 스승의 높은 뜻을 받들기로 결심한다.
“의원의 길을 괴로워하거나, 병든 이 구하기를 게을리 하거나, 이를 빙자하여 돈이나 명예를 탐하거든 어떠한 벌이라도 달게 받을 것입니다.”라고 맹세한 허준은 스승이 미리 준비해 놓은 칼을 들고 스승이 밝혀준 황촛불을 빛삼아 스승의 배를 가르기 시작했다.

허준은 당시 의원으로서 최초로 인체내부를 눈으로 직접 확인하는 실험을 하게 된 것이다. 현대 한의학의 대표적인 참고서로서 으뜸을 차지하고 있는 ‘동의보감’ 은 서출 허준이 수년에 걸쳐 역작으로 만들어 전래 되어온 귀중한 의학서 이지만 몸을 내던지는 스승의 유산이 없었다면 ‘동의보감’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경남 밀양 출신으로 1968년 통일 혁명당 사건으로 무기징역형을 받고 20년 20일을 복역하다가 1988년 8월 15일 특별 가석방으로 출소하여, 이듬해인 1989년부터 2006년까지 성공회대학교 교수로 재직하다 정년퇴임한 신영복씨가 있다. 그는 이 같은 사실에 대하여 “스승과 제자가 서로를 처절하게 승계하는 현장에서 나는 배우고 가르치는 일의 엄정함 하나만으로 가슴 넘치는 감회를 금할 수 없다”고 했다.

유의태의 살신성인 이외에도 “청년들아 나를 딛고 오르거라” 던 노신(魯迅, 중국의 문학자,사상가), 필요하다면 내 무덤에 침을 뱉어라“ 던 박정희 전 대통령의 말이 제자나 후배를 뒤에 둔 세대들에게 새로운 의(義)를 생각케 한다.

우리는 자녀나 후배들에게 무엇을 남겨 줄 것인가 재물은 그리 중요하지 않은 소모품이요, 육신은 유의태와 같은 뜻 깊고 숭고한 몸체가 아니고 썩어 없어질 것이기에 죽어서 가죽이라도 남긴다는 호랑이 같은 짐승만도 못할까 보아 초라해 진다.
‘진정으로 우리 2세나 후배들이 나라에서 없어서는 아니 될 인물로 성장하기 위하여 무엇을 남길 것인가’ 하고 생각하다 보니 괜스런 시름이 머릿속을 감아 휘돈다.
그래도 미래에는 무언가 새로운 도약 및 결실을 가져다 줄 것이라는 막연한 믿음을 갖게 되다보니 새로운 각오가 생기고 새살이 돋는 기분이 들어 삶의 보람을 느낀다. 이제 며칠 후면 한가위 명절이다.

많은 사람들이 부모님이 계시는 고향을 찾거나 자식들을 만나러 먼 길을 마다않고 설레는 마음으로 떠난다.
이번 추석명절에 자녀들에게 무슨 이야기로 부모의 존재를 알리며 어떤 유산을 남길 것인가를 고민해 보시길 바란다.

새거제신문  saegeoje@par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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